항공빅딜 후 대한항공·아시아나 각각 1조9천억대 예치…'수퍼갑' 지위 활용 논란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국적 대형 항공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항공빅딜' 이후 여유자금을 한국산업은행의 금고에 대거 예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아시아나의 저비용항공사(LCC) 계열사인 에어부산과 에어서울도 이 시기를 기점으로 여유자금을 산은에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 지원을 받고 있는 국적선사 HMM에 이어 항공업계가 '수퍼 갑'인 산은의 입김에 못 이겨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자금을 예치해 '꺾기' 논란이 제기된다. 

   
▲ 국적 대형 항공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항공빅딜' 이후 여유자금을 한국산업은행의 금고에 대거 예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아시아나의 저비용항공사(LCC) 계열사인 에어부산과 에어서울도 이 시기를 기점으로 여유자금을 산은에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14일 국회 정무위워회 소속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부산 남구을)이 산은으로부터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올해 상반기 기준 수시입출금식예금(MMDA)을 비롯해 정기예금, 퇴직신탁 등의 용도로 산은에 1조 9671억원의 자금을 예치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나도 주요 예금상품에 1조 9163억원을 예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항공사 계열사인 에어부산과 에어서울은 퇴직연금 용도로 각각 71억원, 101억원을 넣어두고 있다. 

문제는 여유자금을 예치한 시점이다. 항공업계가 산은에 예치한 자금은 지난 2020년 11월 정부가 산은을 통한 두 국적 대형 항공사의 통합 발표 이후 급증했다. 2020년 2분기 3309억원에 불과하던 대한항공의 산은 예금은 이듬해 1분기 1조 7494억원으로 5배 이상 급증했다. 

아시아나도 예치금이 2020년 3분기 3924억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1분기에는 1조 1303억원으로 3배 가량 늘었다. 에어부산과 에어서울은 두 국적사의 통합 방침이 발표되기 전까지 산은에 맡긴 자금이 전무했다. 하지만 통합 움직임이 본격화된 지난해 3분기부터 퇴직연금 등을 산은에 예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사들은 일반 운영자금도 산은에 몰아준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의 신주 인수를 위한 정책자금 약 8000억원을 제외하고도 1조원 이상의 운영자금을 산은에 예치했다. 아시아나도 대한항공과의 통합 관련 자금 9000억원 외 회사 운영 자금 약 1조원을 산은에 맡긴 것으로 나타났다. 

항공업계의 '예금 몰아주기'를 두고 일각에서는 업계가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을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산은이 정책자금을 지원하고 있고, 이들 항공사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특수관계자'인 까닭이다. 

대표적으로 산은은 대한항공의 지주사인 한진칼의 지분 외에도 사외이사 추천권을 갖고 있다. 이른바 '수퍼 갑'의 지위에 못 이겨, 이들 기업이 부득이 계열사 자금까지 동원해 산은에 맡겼어야 했을 것이라는 평가다. 금융권에서 통용되는 '꺾기 논란'이 제기되는 이유다.  

꺾기는 은행이 대출을 내어주는 조건으로 일정 금액을 강제로 예금에 맡기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이나 개인이 대출을 신청할 때 예금이나 대출금 일부를 유보시켜 정기예금이나 적금을 들게 하거나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행위도 이에 포함된다. 

박 의원은 "정책자금을 집행하는 산은이 '수퍼 갑'의 입장에서 어려운 기업을 대상으로 교묘히 법망을 피해가는 '꺾기' 영업행태를 보이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 "경기침체와 자금압박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 국책금융기관으로서 책임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산은 관계자는 "이런 예금들은 구속성있는 예금에 해당되지 않으며, 각 회사의 내부적인 의사결정에 따른 여유자금 운영이다"고 짧게 해명했다.

앞서 채권단 지원을 받고 있는 국적선사 HMM도 꺾기 희생양으로 거론된 바 있다.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HMM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여유자금 4조 308억원 중 67.4%에 달하는 약 2조 7174억원을 산은의 초저금리 상품에 맡긴 바 있다. 정기예금이 2조 316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수시입출식예금 1조 2634억원, 특정금전신탁(MMT) 3798억원, 환매조건부채권(RP) 770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자금 예치에 따른 금융소득은 지난해 1~9월 약 27억원에 그쳤다. 사실상 0%대의 금리를 제공하는 금융상품에 자금이 배정된 까닭이다. 

강 의원은 지난해 산은 국정감사에서 "HMM 자금관리 처리기준에 있어서 나중에 관리단에 승인을 받고 관리단이 집행하도록 되어 있다"며 도덕적해이(모럴해저드)를 지적한 바 있다. 채권단 관리를 받고 있는 HMM은 집행되는 일체의 자금을 산은에서 파견나간 자금관리단을 경유해 승인받아야 하는 만큼, HMM이 불가피한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강 의원은 당시 이동걸 전 산은 회장에게 "산은이 HMM의 여유자금 운용 금융상품 대부분을 저리 예금 등에 묶어두고 운용하고 있는 것은 구조조정을 겪고 있는 회사의 여유자금에 대한 비효율적 운용"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이 전 회장은 "HMM은 단기자금을 운용하기 때문에 금리가 낮다"고 해명한 바 있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