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은행권 기업대출 잔액 1156조…"건전성·상환능력 관리해야"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올 들어 시중은행 기업대출이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레고랜드 사태로 최근 회사채 시장이 위축된 데다, 정부도 채권발행 대신 은행 대출을 권장하면서 기업들이 은행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연내 추가 금리인상 리스크가 상존한 가운데 대출 증가에 따른 기업들의 이자부담이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1일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업대출 잔액은 약 1155조 5000억원으로 전달보다 9조 4000억원 증가했다. 올 들어 9개월 연속 상승세로, 지난 2009년 관련 통계 속보치 작성 이후 동월 기준 가장 큰 폭의 상승세다. 회사채 시장이 위축되면서 기업들의 대출 수요가 몰린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 올 들어 시중은행 기업대출이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레고랜드 사태로 최근 회사채 시장이 위축된 데다, 정부도 채권발행 대신 은행 대출을 권장하면서 기업들이 은행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연내 추가 금리인상 리스크가 상존한 가운데 대출 증가에 따른 기업들의 이자부담이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김상문 기자


대출 부문별로 대기업 대출은 4조 7000억원 늘어난 207조 2000억원을 기록해 역시 9월 기준 최대 증가폭을 보였다. 중소기업대출도 4조 7000억원 증가한 948조 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자영업자·소상공인이 주로 이용하는 개인사업자대출은 1조 8000억원 늘어난 442조 1000억원을 기록했다. 

기업대출 급증세는 10월에도 이어졌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대출잔액은 지난달 27일 현재 703조 7512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연말 635조 8878억원에 견줘 약 67조 8634억원 불어났다. 

신용등급 'AAA'의 한전채가 대거 시장에 풀렸고, 레고랜드 사태까지 겹쳐 채권시장이 급랭하자, 기업들이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은행으로 몰렸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올 상반기 14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한 한국전력은 회사채를 대거 발행해 시중금리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금융당국은 최근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상향조정 조치를 6개월 미뤘다. 또 예대율 규제비율을 은행 105%, 저축은행 110%로 각각 6개월 이상 완화했다. 은행채 발행 수요를 낮추는 한편, 기업들이 원활히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유동성 공급 조치다. 

기업들로선 채권 대신 은행 대출로 긴급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됐지만, 금리 상승 리스크에 따른 이자부담 증가는 우려 요인이다. 국제금융협회(IIF)가 최근 발표한 '세계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비금융 기업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은 올해 2분기 117.9%를 기록했다. 비교국 35곳 중 홍콩 279.8%, 싱가포르 161.9%, 중국 157.1%에 이어 네 번째로 높다. 

IIF는 보고서에서 "저금리 덕에 많은 기업이 저렴한 대출로 연명해왔다"면서도 "앞으로 대출 비용이 오르면서 부도가 잇따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올해 2분기 기업부채 증가속도는 6.2%p로 베트남 7.3%p에 이어 두 번째로 가팔랐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기업대출 부실징후 및 대응방안' 제하의 보고서를 통해 기업대출 부실징후로 △코로나19 이후 대출 급증 △대출 상환능력 악화 △높은 변동금리 비중 △부동산 등 취약업종으로의 대출 쏠림 △제2금융권 등 비은행기관을 통한 대출 비중 증가 등을 꼽았다. 

전경련 분석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 10년간(2009~2019년)은 기업대출이 연평균 4.1%의 증가세를 보인 반면, 최근(2019년 말~2022년 상반기) 연평균 증가율은 12.9%에 달했다. 

이에 전경련은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할 필요성이 있다고 시사했다. 미국의 공격적 금리 인상으로 우리나라도 금리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급속도로 악화된 기업들의 자금사정을 고려해 금리 인상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시중에 유동성이 풍부해졌다가 금리가 인상되면서 기업들이 자금난, 신용경색 등을 겪었다"며 "현재는 그때보다 금리가 더욱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어, 기업들이 불어나는 상환부담을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금리인상 속도 조절, 세부담 경감뿐만 아니라 유사시 기업 유동성 지원을 위한 컨틴전시 플랜도 사전에 강구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계속되는 금리상승기에 기업들이 대출에 의존해 자금을 조달하다보니 이자부담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며 "대출 건전성과 상환능력을 관리해 연쇄 충격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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