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꼴찌 아동 행복지수 끌어올린다”
“OECD 꼴찌 아동 만족도, 10년내 OECD 평균으로 올린다”
며칠 전 국내 대다수 언론을 장식했던 기사 제목이다. 보건복지부의 ‘제1차 아동정책 기본계획’ 발표를 다룬 기사다. 우리 아이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불행하다는 식의 어법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일부단체에서야 늘 나오는 것이지만 이번에는 그런 것도 아니다.
보수 언론도 다르지 않다. ‘아동의 삶 만족도 OECD 꼴찌 한국 오명 벗는다는데…’, ‘아동이 행복한 나라 만들려면’ 등 칼럼과 사설을 통해 한 술 더 뜨고 있다. 보건복지부 계획의 부족함은 비판해도 우리 아이들이 가장 불행하다는 주장은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정부에서 우리 아이들이 가장 불행하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우리 아이들이 세계에서 가장 불행하다는 데는 정부와 반정부단체, 보수-진보 언론 사이에 이견이 없는 모양이다.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룬 풍족한 시대를 누리는 대한민국 아이들이 세계에서 가장 불행하다는 말은 좀 의심이 갈 법도 한데 너무나 당연한 기정사실인 것 같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우리나라 청소년 아동들이 OECD 꼴찌라는 ‘삶의 만족도’ 척도를 살펴보자. 이 척도는 원래 학령기 아동의 건강행태(Health behavior of school-aged children, 이하 HBSC)를 연구하는 WHO 조사에서 사용된 105가지 문항 중 하나다.
WHO는 HBSC 연구를 1983년부터 8차례 수행했다. 원래는 WHO 유럽 위원회를 중심으로 시작된 연구였는데 현재는 미국, 캐나다 등도 참여하고 있다. 물론 대한민국은 조사가 30여 년 진행되는 동안 참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삶의 만족도 척도에 대한 국제비교 연구에 참여한 적이 없으니 당연히 OECD 국가와의 국제 순위비교는 불가능하다. 조사 시기와 방법,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전혀 다른 맥락에서 문항만 가져다가 별도 조사를 해 놓고 마치 국제비교를 한 것인양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설사 같은 문항을 썼으니 비교가 가능하다는 강변을 한다 해도 WHO가 사용한 105가지 항목 중 하나만 떼어놓고 최하위 운운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105가지 항목을 모두 조사해 분석하다면 우리나라 아동의 삶이 적어도 OECD 최하위는 아닐 것은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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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ECD 꼴찌라는 ‘삶의 만족도’ 척도는 원래 학령기 아동의 건강행태(Health behavior of school-aged children, 이하 HBSC)를 연구하는 WHO 조사에서 사용된 105가지 문항 중 하나다. WHO는 HBSC 연구를 1983년부터 8차례 수행했지만 대한민국은 조사가 30여 년 진행되는 동안 참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삶의 만족도 척도에 대한 국제비교 연구에 참여한 적이 없으니 당연히 OECD 국가와의 국제 순위비교는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전혀 다른 맥락에서 문항만 가져다가 별도 조사를 해 놓고 마치 국제비교를 한 것인양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
보건복지부가 또 OECD 최하위로 꼽은 주관적 행복지수는 어떨까? 마찬가지다. 아동 행복지수 역시 ‘유니세프 행복지수’니 ‘OECD 최하위’니 하면서 해마다 언론을 장식하지만 국제기구에서 국제비교 연구를 한 것이 아니다.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와 방정환재단이 자체 조사한 점수를 기존 해외 조사와 비교했는데, 이 역시 조사방법과 시기 등이 일정치가 않아 국제비교로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조사다.
또 한 발 양보해서 유니세프의 검증된 도구를 사용했다는 점 하나로 그 결과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WHO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섯 영역 중 한 가지 영역만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으니 우리 아이들의 행복지수가 최하위라는 것은 날조에 가까운 얘기다.
유니세프의 아동·청소년 행복지수는 ‘물질적 행복’, ‘보건과 안전’, ‘교육’, ‘가족과 친구관계’, ‘행동과 생활양식’, ‘주관적 행복’의 여섯 영역으로 구성되는데, 오히려 ‘교육’과 ‘행동과 생활양식’ 지수는 최상위다. 행동과 생활양식은 OECD 1위, 교육은 아일랜드에 이어 2위다. 보건과 안전도 스웨덴, 핀란드에 이어 3위, 물질적 행복도 핀란드, 오스트리아에 이어 3위다.
이쯤 되면 우리나라 아동은 유니세프 기준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축에 속한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얘기다. 혹은 가장 행복한 여건 속에서 그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는 정도의 표현이 더 맞겠다.
문제는 반정부 단체에서나 할 법한 호도가 정부와 보수 언론에도 연일 오르내린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이런 주장이 ‘사실’과는 다르지만 사회 일반의 ‘인식’과는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입시 경쟁을 당사자나 학부모로 경험해보거나 최소한 옆에서 지켜본 적은 있는 대부분의 국민은 ‘입시경쟁교육으로 우리 아이들이 불행하다’는 구호를 쉽게 사실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런 입시교육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평등의 천국이라는 핀란드에도 전체 학생은 아니지만 일부 학생의 입시경쟁은 분명히 존재하며, 인도나 중국에서도 입시 스트레스로 자살하는 학생은 나온다. 이런 식으로 살펴보면 우리나라 청소년들만 불행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실은 확인하지 않고 그저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그런 느낌’에 의존하는 사이에 ‘입시경쟁교육이 아이들을 불행하게 한다’는 전교조와 좌파단체들의 주장이 기정사실을 넘어 부정할 수 없는 도그마가 돼버렸다. 행태는 전제왕정과 전체주의 독재에 가까운 정치인들이 문짝을 탁자로 쓰고, 낡은 구두를 신고, 진보를 입에 올리면 서민의 편인 것‘처럼 보여’ 당선되는 현상과 다름 아니다.
그래도 최소한 정부나 언론만큼은 사실을 명확히 했어야 하는데, 정부는 새로운 발전계획을 위한 근거를 확보하기에 급급했다. 정부가 WHO ‘삶의 만족도’ 척도를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년 전부터다. 1차 아동정책 기본계획 발표를 불과 6개월 앞두고 처음으로 이를 인용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언론은 어렵게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손쉽게 보도자료를 인용해 사회비판적인 기사를 생산할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공교롭게도 평소에는 서로 상충되는 어른들의 이해관계마저 맞아떨어진 것이다.
주관적 삶의 행복에 대한 인식이 최하위인 것도 정부도, TV도, 인터넷도, 교사도 모두 ‘너희는 불행하다’고 가르치기 때문이 아닐까. 아직 자아가 완전히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이 온통 둘러봐도 자신들이 세계에서 가장 불행하다는 목소리만 들리는데 긍정적인 마음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제 조사 지표를 근거로 말하면 우리 아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불행하기는커녕 꽤나 행복한 축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우리 아이들이 세계에서 가장 불행하다는 주장은 사실인 것 같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자녀에게 ‘너희는 불행하다’고 외치는 어른들만 가득한 사회에서 살고 있으니 말이다. /박남규 교육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