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인상 자제 요청에 금리 조정, 상품 마케팅도 자제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6연속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한 가운데, 유동자금을 흡수해야 할 시중은행권이 예금상품 금리 인상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심지어 연 5%대의 금리를 제공한다던 일부 예금 금리는 최근 4%대로 내려왔다. 경쟁적으로 내놓던 우대금리 관련 마케팅도 자취를 감췄다. 

금융권의 과도한 수신금리 인상 경쟁이 자칫 금융시장 안정의 교란이 될 수 있다는 당국의 지적에 따른 것인데, 사실상 은행들이 눈치보기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6연속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한 가운데, 유동자금을 흡수해야 할 시중은행권이 예금상품 금리 인상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심지어 연 5%대의 금리를 제공한다던 일부 예금 금리는 최근 4%대로 내려왔다./사진=김상문 기자


29일 금융권과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에 따르면 우리은행 대표상품으로 꼽히는 'WON플러스 예금'은 1년 만기에 연 4.98%의 금리를 제공한다. 이 상품은 지난 13일 주요 시중은행 정기예금 상품 중 가장 먼저 1년 만기에 연 5.18%의 금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화제였다. 하지만 다음날 금리가 연 4.98%로 내려간 후 유지되고 있다. 

이 상품은 시장금리(은행채 기준)를 토대로 정책금리를 반영해 매일 적용금리가 달라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12개월 만기 은행채(AAA) 금리가 4%대로 안정화되면서 예금금리도 조정된 모습이다. 

KB국민은행의 대표상품인 'KB STAR 정기예금'의 1년 만기 기준금리는 전날 연 4.7%까지 떨어졌다. 이 상품은 매주 시장금리를 반영하고 있는데, 지난 14일 첫 연 5%대로 올라섰다가 최근 0.3%p 하락했다. 

NH농협은행은 대표 상품인 'NH올원e예금'의 1년 만기 금리를 연 5% 대에 제공하고 있지만 우대조건이 변경됐다. 당초 농협은행은 기본금리만 연 5.1%를 제공했지만, 현재는 기본금리를 연 4.8%로 하향 조정하고, 공백(0.3%p)을 특별우대 금리로 메웠다. 

신한은행의 '쏠편한 정기예금'은 1년 만기 금리를 연 최대 4.95%로 설정한 후 지금까지 변동이 없다.  

하나은행이 판매 중인 '하나의 정기예금'은 1년 만기시 연 5.0%의 금리를 제공하고 있다. 사실상 만기를 채웠을 때 연 5%대 금리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상품이다. 

한은의 거듭된 금리 인상에도 불구, 은행들의 수신금리 인상이 지지부진한 건 금융당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은행권은 △대내외 금리인상 △기업대출 확대를 위한 자금조달 △은행채 발행 중단에 따른 자금조달 등을 이유로 수신금리를 공격적으로 올려 왔다. 

특히 은행들이 금리상승기에 예대금리차(예금과 대출금리 간 격차) 확대로 마진을 많이 남긴다는 비판까지 가세하면서, 은행들은 기준금리를 발표하기도 전에 선제적으로 예금금리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당국의 개입에 가까운 직접적 발언에 은행들이 금리인상 홍보와 마케팅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수차례에 걸쳐 수신금리 인상 자제를 요청했다. 그는 지난 9일 20개 은행장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은행으로 자금이 쏠려 제2금융권 등에서 유동성 부족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말한 데 이어, 지난 14일에도 은행권에 자금조달 경쟁 자제를 당부했다. 

예금금리 인상 경쟁이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의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키면, 저축은행이 대출금리를 끌어올릴 수밖에 없어 취약차주의 대출금리 부담으로 이어지는 까닭이다. 

지난 25일에는 "금융권의 과도한 자금확보 경쟁은 금융시장 안정에 교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업권간, 업권내 과당 경쟁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지난 24일 한은의 베이비스텝(한 번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 이후 예금금리 인상을 알린 곳은 인터넷은행인 케이뱅크가 유일하다.

당국이 규제 아닌 규제를 단행하면서, 금융소비자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대출금리는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오르는 실정인데, 당국 개입으로 '빚 없는 금리 노마드족'의 혜택이 줄어드는 까닭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한은이 금리를 인상하면 은행들이 수신금리 인상을 조정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은행들이 인상시기를 눈치보고 있다"며 "(당국 발언 때문에) 현재로선 어느 은행도 선뜻 금리를 인상한다고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12월 초에도 금리인상 마케팅은 조용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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