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백지현 기자] 미국과 중국간 기술패권 경쟁심화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등 전 세계의 ‘지정학적 위험’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금융부문 역시 지정학적 위험에 노출돼 ‘금융의 무기화’ 현상이 현재보다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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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강남구 빗썸 강남센터 전광판에 비트코인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
이윤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지정학적 위험의 증대가 금융부문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최근 지정학적 위험의 증대로 금융의 무기화 가능성이 한층 높아질 것이며, 역설적으로 금융의 무기화 현상이 심화될수록 무기의 위력을 오히려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자원이나 반도체 등과 같은 핵심 품목들에 대해 자국 또는 우방국들에게는 접근성을 높이고, 적대국에 대해서는 접근성을 제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금융서비스도 이와 같은 규제들이 적용될 것이란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비자나 마스터카드가 러시아 국민들에게 카드사용 제한조치를 취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이 연구위원은 지적한다.
금융의 무기화 현상은 기축통화인 미 달러화 중심의 국제금융시스템에서 미국 또는 유엔의 금융제재를 통해 이미 오랜 시간 적용돼 왔다. 다만 이 연구위원은 “최근 지적학적 위험의 증대로 이 같은 금융의 무기화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질 것”이라며 “근본적으로 간과해선 안되는 사실은 금융의 무기화 현상이 심화되면 될수록 역설적으로 무기의 위력은 오히려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미국과 같은 특정 국가가 주도하는 금융 시스템하에선 지정학적 위험 증대로 금융시스템 이용에 제한이 가해질 가능성도 높아 어떤 국가가 해당 시스템을 주도하는 국가와 대립할 경우 이용제한에 대비한 ‘출구전략’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단적인 사례로는 러시아의 보유 미 국채 처분을 통한 미 달러화 의존도 축소를 들 수 있다. 러시아의 미국채 보유 규모는 2018년 1월 1000억달러 이상이었지만, 불과 3개월 만인 4월에는 489억달러로 급감했다. 현재는 20억달러에도 못 미치는 등 2014년부터 지속적으로 미 달러화 의존도를 축소시켜왔다.
또한 중국과 러시아, 이란 등 미국과 적대적인 국가들도 위안화국제결제시스템(CIPS)이나 러시아금융통신시스템(SPFS) 등 자체적인 결제시스템을 구축해 미 달러화에 의존하지 않는 결제시스템 사용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이처럼 지정학적 위험의 증대는 새로운 결제수단에 대한 수요를 증대시키고 있으며, 특히 코로나19를 계기로 확산된 비대면 방식의 디지털 금융서비스는 이런 수요를 충족시킬 것으로 분석된다.
이 연구위원은 “결제수단의 국지화를 추진하기 위해 디지털 금융서비스들이 적극 활용되고 개발될 가능성이 높다”며 “가상자산 관련 금융서비스들은 그 중에서도 가장 성장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다만 가상자산 등 디지털 금융 수단들이 내재하고 있는 위험성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이 선임위원은 주장한다. 가령, 가상자산 거래의 추적을 어렵게 만들어 자금세탁을 보다 용이하게 만들어 주는 이른바 ‘믹서(mixer)’의 확산 등은 가상자산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부여와 실질적인 자금세탁 또는 테러자금조달의 통로로 악용될 위험성이 있다.
이 같은 변화에 대한 관련 대비책도 절실하다. 지정학적 위험의 증대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으며,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균열을 가져와 기축통화로서의 미 달러화의 지위가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연구위원은 “중대한 변화의 실현 가능성에 대비해 한국은행의 외환 보유액과 연기금들의 해외 투자자산의 통화 구성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며 “가상자산 등 새로운 디지털 결제수단이 등장하게 되면 기존 법정화폐를 대체할 가능성이 높은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와의 공존 가능성 및 공존 시 역할분담 등에 대해서도 충분한 논의와 규제방안들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백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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