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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
역차별․불공정…기업을 둘러싼 비뚤어진 법치
세계은행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법치주의 순위가 OECD 34개 회원국 중 27위로 최하위권에 머무른다. 우리나라 전과자를 누계하면 1100만 명에 이른다. 전 국민의 22%, 15세 이상으로 한정지어도 26.5%에 이르는 등 성인 넷 중의 하나는 전과자다. 누적 수치이기에 과도한 의미부여는 필요 없지만 내막을 살펴볼 필요는 있다.
일각에서는 누구나 법규를 위반할 정도로 국민 개개인에게 도덕이 부재하다고 언급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잉범죄화, 입법 만능주의 및 형벌 만능주의로 인해 전과자가 양산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식으로 법률에 명시되어 있지 않아 불법 합법의 경계가 모호한 사례가 많다. 여기에 더해 사안의 복잡성을 이분법적인 기준으로 재단해 버리는 과잉 처벌 등이 법치주의 국가라는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과잉범죄화, 형벌 만능주의의 대표적 사례는 기업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 규제입법 등을 들 수 있다. 기업의 경영판단이나 기업인의 경영활동에 대하여 모호한 법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이다.
기업은 잠재적 범죄집단이 아니다. 하지만 도리어 역차별을 받고 있다. 형법에 규정된 대로 형기 3분의 1을 채우면 가석방할 수 있다는 규정이 기업인에게는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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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두꺼비 진로의 창업 2세, 장진호씨가 중국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재계 24위까지 부상했던 진로는 무리한 사업다각화와 금융차입으로 외환위기를 맞아 공중분해되었다. 장전회장은 배임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국내에 귀국하지 못하고 캄보디아와 중국을 유랑했다. /사진=연합뉴스 |
기업경영에는 배임죄처럼 범죄 구성 요건이 모호해서 ‘걸면 걸리는’ 범죄 유형이 많다. 배임죄 유무를 가르는 기준인 ‘경영판단의 원칙’은 법률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 배임죄 유무는 기소 여부를 결정짓는 검사의 마음속에 있다. 참고로 최저임금법을 어기면 징역형이다. 벌금 또한 매긴다. 민사상 손해배상을 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형벌을 가하는 것이다. 벌금만으로도 충분한 처벌이지만, 법정구속을 통해 감방에 가둔다.
이와 관련하여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27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개최된 <기업활동에 대한 과잉범죄화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세미나에서 “무리한 검찰 수사, 경직된 법 집행이 피의자의 목숨을 앗아가는 사법치사의 문제까지 회자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기업을 잠재적 범죄 집단으로 낙인찍는 섣부른 검찰수사로 인해 경제치사가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권태신 원장은 ‘한국에서 기업한다는 것은 마치 교도소 담장 위를 걸어가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기업인에 대해 과도한 법 집행의 문제를 강조했다.
해외사례를 살펴보자. 독일에서 배임죄를 도입했지만 제한적인 법적용을 통해 실제로 처벌한 사례는 거의 없다. 미국에서는 기업인 경영행위를 존중하는 ‘경영판단의 원칙’을 판례법 상 원칙으로 확립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경우다.
임무를 배신했다는 뜻으로 가치판단 및 윤리적 문제에 속하는 배임죄는 CEO가 기업 자산을 싸게 팔아도 혹은 반대로 비싸게 팔아도 걸린다. 관건은 ‘비싸게’와 ‘싸게’를 판가름 짓는 기준은 그 가격을 지불하는 사람에 있는 것인데, 이는 CEO의 몫이라는 점이다.
배임죄의 극단적인 예를 가정해보자. 지금 일어나고 있는 기업의 경영판단에 대해 미래 어느 시점의 법정에서 배임죄를 적용해 보자.
2014년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서울 삼성동 한전부지 10조원 매입을 결정했다. 그런데 "10조는 비싼 가격이며 회사에 고의적으로 손실을 끼치려는 의도로 결정을 내렸다"는 판단을 2030년 법정에서 내리는 것이 배임죄의 원리다. 누군가의 과거 경영판단에 대해 이제 와서 돌이켜 보니 ‘죄를 지었다’며 처벌하려는 것이 배임죄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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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부 단독 이흥권 부장판사는 업무상 배임·횡령 혐의로 기소된 전 한국은행 직원 A(55)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사진=SBS뉴스 영상캡처 |
우리나라에 아직도 남아있는 별건 수사 관행 또한 문제다. 기업이 아무리 준법경영 원칙에 따라 투자를 하고 조심하더라도 언제 어떤 식으로 법률 리스크를 짊어질지 모르는 것이 2015년 대한민국 법치주의의 현실이다.
법치주의의 가장 큰 축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이요, 죄형법정주의 원칙에서도 명확성의 원칙이 손꼽힌다. 문제는 명확하지 않은 법을 적용하여 기업인을 처벌하고, 이후 무죄인 것으로 드러나면 그간 있었던 개인 및 법인에 대한 손해에 대해서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업에는 평판이 있고 그에 따른 낙인효과, 주식시장에서의 반응, 고객과의 거래 성사 등이 맞물려 있다. 기업인 개인의 형사처벌이나 벌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시장의 큰 처벌’을 수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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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27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개최된 <기업활동에 대한 과잉범죄화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세미나에서 “무리한 검찰 수사, 경직된 법 집행으로 인해 ‘한국에서 기업한다는 것은 마치 교도소 담장 위를 걸어가는 것과 같다’는 말이 돌고 있다”며 기업에 대한 검찰의 과잉처벌, 형벌 만능주의를 지적했다. /사진=한국경제연구원 |
기업인을 포함한 모든 국민은 위법한 부분에 대해서 법적 제재와 처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잘못한 것 이상으로 비난을 받아서는 안 된다. 역차별 및 공정함의 문제다.
지금은 사농공상의 시대가 아니다. 사농공을 아우르는 ‘상’의 시대며, 개인 법인 간의 거래와 시장경제가 삶의 풍요로움을 결정짓는 ‘장사꾼’의 시대다.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상’의 발목을 잡는 법의 과도한 처벌은 이제 멈춰져야 한다. 기업인도 국민 중 한사람이다.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