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소정 외교안보팀장 |
1945년 6월 미국은 도쿄의 황궁을 폭격했다. 이외에도 일본의 주요도시들이 깨진 기와 더미에 뒤덮혔을 무렵인 1945년 7월 포츠담회의에서 트루먼, 처칠, 장제스는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선언에 서명했다. 그래도 일본은 마지막 결전을 준비했고, 같은 해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3일 간격으로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이로써 그해 8월 15일 일황은 항복을 선언했다. 1946년 일본에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지휘하는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주둔할 때 평화헌법이 탄생했다. 이 평화헌법 제9조에 따라 일본이 군대를 유지할 권리와 일본이 전쟁을 일으킬 주권이 박탈됐다. 1951년 미일 간 체결된 평화조약과 안보조약에 따라 오키나와에 거대한 미군기지 건립이 추진됐고, 미국이 일본의 안보를 담당하는 대신 일본은 국가의 모든 에너지를 산업성장에 쏟아부을 수 있었다. 더구나 일본의 기업들은 한국전쟁을 기회로 미군에게 필요한 물자들을 비싼 가격에 공급했으며, 일본경제가 수직 상승하는 계기가 됐다.
이런 역사를 갖고 있는 일본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직접적인 이유로 들어 반격능력 보유를 공식화했다. 일본정부는 16일 오후 임시각의(우리의 국무회의)를 열고 적 미사일 발사 거점 등을 공격할 수 있는 반격능력 보유를 명기하고, 방위력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국가안전보장전략, 국가방위전략, 방위력정비계획의 3대 안보문서 개정을 의결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서 지켜왔던 ‘평화헌법’과 전수방위 원칙을 무력화시킨 것으로 지금까지 ‘방패’만 보유해온 자위대에 ‘창’을 쥐어준 것이다.
▲ 윤석열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2022.11.13./사진=대통령실 |
미국은 백악관 발로 즉각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강화하고 방어하기 위한 담대하고 역사적인 조치”라며 일본의 안보문서 개정을 환영했다. 특히 안보문서에 담긴 방위비 증액에 대해 미일동맹을 강화하고 현대화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일 양국의 군사협력 절차를 규정한 ‘미일 공동대처계획’이 개정될 것이라는 언론보도도 나왔다.
앞으로 대만과 한반도 유사시에 일본 자위대가 어떤 역할로 미군을 지원할지가 쟁점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우리정부는 안보문서에 담긴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 “즉각 삭제하라”며 항의하면서도 일본의 안보문서 개정 자체를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외교부는 “한반도를 대상으로 하는 반격능력 행사 때 사전에 긴밀한 협의 및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일본 방위성 관계자는 “일본이 북한을 반격할 때 한국의 허가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 상황이다. 한국은 헌법상 북한을 우리영토로 보고 있지만, 일본은 유엔 회원국인 북한을 한국과 별개인 주권국가로 본다. 이와 관련해선 미국도 한국 입장을 인정한 적이 없는 만큼 자위대의 한반도 반격에 대한 국민 우려는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통령실은 “한미일 협력 틀에서 논의가 가능하다”고 말했고, 외교부는 “우리 입장을 일본도 인지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모두 일본의 선의에 기대하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다는 말로 들린다. 특히 일본이 반격능력을 갖기 위해 안보문서를 개정하면서 독도 영유권 주장을 포함시킨 것은 여전히 한일 협력에 역행하는 것이다. 이런데도 ‘한미일 협력’만 되풀이하는 윤석열정부의 설명은 턱없이 부족하다.
▲인용한 자료
<근대 일본>(이안 부루마, 을유문화사)
<외교의 시대>(윤영관, 미지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