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지적 거인' 복거일 선생의 지식 탐구에는 끝이 없다. 소설과 시, 수필 등의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면서도 칼럼과 강연 등으로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방대한 지적 여정은 문학과 역사를 뛰어넘는다. 우주와 행성탐구 등 과학탐구 분야에서도 당대 최고의 고수다. 복거일 선생은 이 시대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창달하고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시장경제 학파의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고 있다.
암 투병 중에도 중단되지 않는 그의 창작과 세상사에 대한 관심은 지금 '세계사 인물기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디어펜은 자유경제원에서 연재 중인 복거일 선생의 <세계사 인물기행>을 소개한다. 독자들은 복거일 선생의 정신적 세계를 마음껏 유영하면서 지적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이 연재는 자유경제원 사이트에서도 볼 수 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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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거일 소설가 |
요즘 '20 대 80’이란 표현이 많이 쓰인다. 20%가량 되는 소수가 어떤 결과의 80%가량 되는 부분을 불러오거나 누린다는 얘기다. 예컨대, 어떤 집단에서 20%의 구성원들이 말썽의 80%를 피우고, 상위 20%가 총소득의 80%를 누린다는 식이다. 이런 표현이 우리 사회에서 유행하게 된 것은 독일 저널리스트 두 사람이 쓴 『세계화의 덫』이란 책이 널리 읽힌 뒤부터였다.
그 책에서 저자들은 “앞으로 세계화가 진전되면, 20%의 사람들 이 좋은 일자리들을 누리기 위해서 80%의 사람들이 좋지 못한 일자리들을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는 식의 주장들을 폈다. 물론 이런 주장은 그저 소수와 다수의 대비일 뿐이고 원래의 '20대 80’이란 표현에 담긴 뜻을 제대로 품지 않는다.
'20대 80’의 현상은 우리 둘레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것을 감안해서 행동한다. 이 현상에 처음 주목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였던 빌프레도 파레토(Villfredo Pareto, 1843~1923)였다.
그는 통계의 분석을 통해서 '고객의 20%가 매출액의 80%를 차지하고, 부품들의 20%가 비용의 80%를 차지한다.’는 것과 같은 현상들이 늘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그의 그런 발견은 '파레토의 법칙’ 또는 '20/80의 법칙’이라고 불린다.
여기서 지적돼야 할 것은 이 법칙은 엄격한 법칙이 아니라 통계에서 얻어진 경향을 가리킨다는 점이다. 그래서 '20대 80’은 때로 '30대 70’이나 '10대 90’이 될 수 있다. 농구 팀을 예로 들면, 한두 명의 스타플레이어에 의존하는 팀에선 20%의 선수들이 득점의 80%를 차지하고, 선수들의 기량이 고른 팀에선 30%의 선수들이 득점의 70%를 차지할 수 있다. 이 법칙은 흥미로울 뿐 만 아니라 실제적 도움이 되기도 한다. 모험사업(Venture business)은 일반 사업보다 성공할 확률이 낮다.
따라서 모험사업에 투자하는 사업가들은 20%의 사업들에게서 수익의 80%를 얻기 기대하는 것보다는 10%의 사업들에서 수익의 90%를 얻기를 기대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다. 파레토는 원래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했고 공학자로 일했다.
그가 경제학을 연구하게 된 것은 1891년 경제학자 레옹 왈라스(Leon Walras, 1834~1910)를 만난 것이 계가가 됐다, 1893년에 왈라스가 스위스 로잔 대학의 경제학 교수 자리에서 은퇴하자, 파레토는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그때 이미 45세였지만, 그는 경제학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 연구들을 속속 내놓았다. 일반시민들이 파레토라는 이름을 대하는 경우는 대체로 경제에 관한 글들에서 '파레토 개선(Pareto improvement)'이나 ’파레토 최적(Pareto optimum)'과 같은 개념들을 만나는 경우일 터이다.
이들 개념들은 그의 주요한 업적인 '최적 자원분배 이론’에서 나온 것들인데, 그리 어지 않으면서도 쓸모가 커서, 경제학에 별다른 소양이 없는 사람들도 배워둘 만하다. 정부의 정책들이나 조치들은 모두 사회적 자원을 재배치힌다. 그런 자원의 재배치는 물론 여러 시민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정부의 정책들이나 조치들을 평가하려면, 개인들의 효용들을 비교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그런 개인 효용 비교에 필요한 이론적 바탕은 아직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서, 그것은 심리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들을 안고 있다. 파레토는 그런 어려움을 비켜가는 길을 발견했다. 어떤 조치로 영향을 받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도 전보다 처지가 나빠지지 않았고 적어도 한 사람은 처지가 나아졌을 때, 그 조치는 분명히 정당화 된다. 그런 조치가 바로 '파레토 개선’이며, 그런 개선이 나오는 조치들만을 찾으면, 개인 효용 비교가 안은 문제들을 비켜갈 수 있다,
자연히, 자원의 배치가 아주 잘되어서 파레토 개선이 나올 수 없는 상태는 '파레토 최적’이라 불린다. 파레토 개선의 대표적 예는 개인들 사이의 자발적 거래다.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은 당사자들이 모두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자발적 거래들로 이루어진 시장은 개인들의 효용을 늘리는 데 아주 효율적이다. 시장 경제가 명령 경제보다 우수한 사정의 한 측면이 바로 거기 있다.
뛰어난 수학자였던 파레토는 경제학에 수학적 바탕을 마련하는 일에 주력했다. 그래서 그는 왈라스 및 미국 경제학자 어빙 피셔(Irving Fisher, 1867~1947)와 함께 현대 경제학의 바탕을 마련한 선구자들로 꼽힌다. 그리고 여러 주제들에 걸친 그의 개척적 연구들은 많은 경제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애석하게도, 그의 그런 업적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경제학자들 가운데 그에게 빚을 졌다고 밝힌 이는 드물었다. 그런 까닭들 가운데 가장 큰 것은 그가 스위스에서 활동한 이탈리아 학자여서, 그의 업적이 경제학의 주무대였던 영국과 미국에 잘 알려지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는 만년에 민주주의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고 전체주의를 선호하는 태도를 보였다. 파시즘이 그의 이론들을 사용했고, 그가 죽기 직전에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권에 의해 상원의원으로 임명됐다는 사실은 그의 명성에 타격이 되었다. 애석한 일이다. /복거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