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15차례 9.19 남북군사합의 어겨…무인기로 P-73 침투까지
양무진 “역사의 후퇴·평화비전 역행”…맞대응보다 대비태세 지적
클링너 “韓방어력 저하 불러…추가도발 대응 선택지 확보 차원”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한 무인기가 서울 상공을 침범하면서 결국 9.19 남북군사합의가 존폐 기로에 섰다. 지난해 10월 여당 정치인들이 9.19 합의 폐기 주장을 제기한 바 있었지만 당장 실행에 옮기지 않았던 대통령실이 지난달 26일 북한 무인기 침투로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4일 9.19 군사합의 효력정지를 검토하라고 국가안보실에 지시했다.

군은 5일 북한 무인기 1대가 대통령실이 위치한 서울 용산구 일대 비행금지구역(P-73)까지 침투했다고 밝혔다. 이는 당초 주장을 번복한 것으로 합동참모본부 전비태세검열실 점검에서 드러났다고 했다. 국가정보원은 같은 날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북한 무인기가 대통령실을 촬영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P-73은 용산 대통령실과 국방부 청사를 중심으로 하는 반경 3.7㎞ 구역으로, 용산뿐 아니라 서초·동작·중구 일부를 포함한다. 군 관계자는 “서울에 진입한 적(북한)의 소형 무인기 1대로 추정되는 항적이 비행금지구역 북쪽 끝 일부를 지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9.19 군사합의는 2018년 9월 19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남북정상회담 결과 평양공동선언에 이은 부속 합의로 체결됐으며,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시키기 위한 내용을 골자로 한다. 

구체적으로 군사분계선으로부터 5㎞ 안에서 포사격, 야외기동훈련을 하지 못하고, 공중에서도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동서로 각각 40㎞와 20㎞ 이내의 비행을 금지하고, 15㎞ 이내 무인기 금지, 25㎞ 이내 기구를 날리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 등을 정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이미 15차례 9.19 합의를 어겼다. 특히 지난해 10월 이후 북한은 동해와 서해 북방한계선 북쪽 해상완충구역에 수차례 포사격을 감행했다. 한미연합훈련을 빌미삼아 포사격을 하면서 “적의 도발에 사사건건 계산해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12월 5일 하루에만 동서해상에 230여발이 넘는 포사격을 하면서 해상완충구역을 침범한 일도 있다.

북한의 도발은 무인기로 P-73을 침범하는 사태로 흘렀다. 군과 국정원은 이번에 침범한 북한 무인기가 모두 5대라고 밝혔는데, 군은 이 중 단 한 대도 격추시키지 못했다. 2017년 북한 무인기의 경북 성주 주한미군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사드) 기지 촬영 도발 이후 우리군이 국지방공레이더를 배치한 덕분에 이번에 북한 무인기 일부를 탐지하는데 성공했지만 사격에는 실패한 것이다.

지난 2014년에도 북한 무인기 3대가 잇따라 발견된 적이 있고, 2017년 북한 무인기가 남한 영공을 침범한 일이 있는데도 이번에 또다시 침범한 북한 무인기 5대를 격추시키거나 포획하지 못했으니 우리군의 무인기 대응체계 구축은 실패한 셈이다. 군은 뒤늦게 지난 연말 아파치·코브라 헬기 드론건 등을 사용하는 무인기 대응훈련을 연이어 벌였다. 

   
▲ 북한 노동신문이 1일 첨단무장장비인 600㎜ 초대형 방사포들이 12월 3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 정원에서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전원회의에 증정됐다고 보도했다. 2023.1.1./사진=뉴스1

전문가들은 북한의 무인기 침투에 대해 대북정책에 대한 국내여론 분열 의도를 갖고 있으며, 재래식 국지도발 가능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소형 무인기라도 폭탄이나 생화학무기 등을 실어 남한지역에서 자폭할 경우 우리국민의 심각한 피해를 낳을 수 있는 만큼 GPS 재밍을 이용해 추락시키거나 화기 등으로 반드시 격추해야 한다.

결국 군의 북한 무인기 대응 실패 이후 윤 대통령의 9.19 합의 효력정지 검토 지시가 나왔고, 통일부는 9.19 합의 효력정지에 따른 대북확성기 및 대북전단 살포 재개가 가능한지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북관계발전법 24조에 따라 금지돼 있는 북한에 대한 확성기 방송, 시각 매개물(전광판) 게시, 전단 살포의 재개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또 남북관계발전법 23조는 ‘대통령이 남북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다고 판단할 경우 남북합의서 효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북확성기나 대북전단은 북한이 민감해하는 심리전 수단으로 알려져 있어서 확성기 방송 등 재개 가능성 자체가 북한에 대한 압박 메시지가 될 수 있다. 또 9.19 합의 효력이 정지될 경우 완충구역에서 중단돼있던 한미 공군의 정찰 활동 및 우리군의 해안포 사격훈련 등도 재개할 수 있다. 반면, 우리가 먼저 남북합의를 파기하는 행위로 인해 북한에 도발 명분을 주게 되고, 결국 북한을 기습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는 남한이 안게 될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 맞대응하기보다 대비태세에 주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정부가 남북합의 준수를 강조함으로써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겠다는 메시지 발신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반대로 9.19 합의가 우리군의 군사활동을 제한해 방어력을 저하시켰다는 평가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대북확성기 및 대북전단 살포 재개는 역사의 후퇴이자 평화비전의 역행”이라면서 “북한의 변화, 남북관계 정상화, 북한 비핵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양 교수는 “북한 군인들이 지도자의 존엄 모독에 대해 강경 대응할 수밖에 없어 우리측의 피해를 예상할 수밖에 없고, 특히 확성기와 전단 내용은 주민들에게 전달되지 않으며, 오히려 북한 당국이 대남 적개심 고조 및 체제결속에 이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중앙정보국(CIA) 출신인 브루스 클링너 헤리지티재단 선임연구원은 윤 대통령의 9.19 합의 효력정지 검토 지시에 대해 9.19 합의가 북한 도발을 막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고 미국의소리 방송이 6일 전했다. 

클링너 연구원은 “9.19 합의에 대해 긴장완화와 확전 위험성 방지 등 긍정적인 평가도 할 수 있지만 전방지역에서 훈련 및 정찰 등 한국측 군사활동을 제한해 억제력과 방어력 저하를 가져왔다”면서 “윤 대통령의 9.19 합의 효력정지 시사는 향후 북한의 추가 도발에 대한 대응 선택지를 확보하는 차원”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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