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연말 유동성 이슈에 일시적 고금리, 금리 정상화 수순"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주요 시중은행의 1년 미만 정기예금 상품 금리가 연 5%대에서 연 3% 후반대까지 추락했다. 금융당국의 예금금리 인상 자제 발언, 은행채 발행 재개, 금리인상 기대감 반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예금금리가 정상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지난 연말 유동성비율규제를 맞추기 위해 일부 은행들이 일시적으로 수신금리를 대폭 올렸다가 정상화한 것도 한 몫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개 은행의 대표 정기예금 상품의 최고금리는 연 3.93~4.30%로 집계됐다. 상품별로 △우리은행 WON플러스예금 연 4.31% △하나은행 하나의정기예금 연 4.30% △신한은행 쏠편한 정기예금 4.20% △국민은행 KB Star 정기예금 3.98% △농협은행 NH왈츠회전예금II 3.93% 등이다. 

   
▲ 주요 시중은행의 1년 미만 정기예금 상품 금리가 연 5%대에서 연 3% 후반대까지 추락했다. 금융당국의 예금금리 인상 자제 발언, 은행채 발행 재개, 금리인상 기대감 반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예금금리가 정상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지난 연말 유동성비율규제를 맞추기 위해 일부 은행들이 일시적으로 수신금리를 대폭 올렸다가 정상화한 것도 한 몫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사진=김상문 기자


지난달 13일 이들 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연 4.79~4.93%선으로 하단금리를 놓고 볼 때 약 0.86%포인트(p) 추락했다. 직전 영업일인 지난 6일과 견주면 약 0.07~0.20%p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금리하락 배경을 두고 해석하는 의견도 분분하다. 우선 금융당국의 금리인상 자제 발언이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애초 은행권은 한국은행의 연이은 기준금리 인상에도 예금금리를 인상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해 6월 취임 직후 "은행들의 예대금리차를 용납하지 않겠다"며 이자장사를 경고했다. 

이에 다급해진 은행들은 예금금리를 경쟁적으로 올렸고, 이로 인해 주택담보대출의 준거금리인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금리가 동반 상승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또 저축은행보다 예금금리가 더 높은 기현상을 빚으면서 저축은행의 건전성도 위태해졌다. 

이에 당국은 또다시 "지나친 금리 경쟁을 자제하라"는 메시지를 냈다. 입장이 180도 바뀐 것이다.

한 관계자는 "금융채 금리 상승은 신규 대출자만 고통받지만, 코픽스가 오르면 기 대출자 금리도 가파르게 오를 수밖에 없다"며 "당시 은행들은 이미 (예금) 유치경쟁이 붙어 고금리가 형성됐었고 예금도 조달해야 했기에 (당국의 자제 발언이) 반가운 조치는 아니었다. 그런데 당국이 내리라 하니 은행들이 눈치보면서 다시 조금씩 내리다 저금리를 띄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당국이 (은행권에) 과열경쟁을 자제하라는 발언을 내놓으면서 은행에 좋은 리스크가 된 것이기도 하다"며 "은행 간 경쟁을 안 해야 겠다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예금금리가 조금씩 내려간 것"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은행채 발행 재개로 은행들의 자금조달수단이 다양해지면서 예금 의존현상을 벗어난 것도 조금이나마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올해 기준금리 추가 인상 폭이 적을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감도 한 몫한다. 오는 13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연 0.25%p 인상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연중 금리가 점진적으로 하락세에 접어들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설명이다. 

은행은 1년 이상 장기 예금을 가입한 고객에게 많은 이자비용을 제공해야 하는 만큼, 당분간 높은 금리를 제공할 유인이 없다는 입장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기준금리가 연 1.5%에서 연 3.5%까지 오르는 건 가팔랐는데, 연 3.5%에서 연 4.5%까지 오르는 건 무리이고, 연 4%가 마지노선이라는 시장저항도 있다"며 "(올해는) 사실상 연 0.5% 오른다는 것인데, 결국 금리가 내려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미국 연준(Fed)의 파월 의장이 '기준금리를 연 7%대로 가야 한다'는 식의 발언을 추가로 한다면 예금금리가 다시 반등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은행들이 지난 연말 유동성비율규제를 준수하기 위해 예금금리를 경쟁적으로 인상했다는 분석을 유력하게 제기하고 있다. 은행들이 유동성비율을 고시해야 하는 데다 IR도 분기별로 하고 있는 만큼, 이를 준수하는 데 예민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많은 은행들이 유동성비율을 연말까지 맞춰야 하는 자체적 이슈가 있었다"며 "오는 3월에는 다시 공격적 스탠스로 예금금리를 (높게) 가져갔다가 4월에 다시 조절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은행권의 이례적인 수신금리 인상 이후 급격한 하락까지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예금금리의 정상화'로 평가하고 있다.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대출금리와는 다르게 봐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대출은 원천이 되는 금융채가 기준금리에 연동되는 탓에 금리인상 시그널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반면 예금은 예적금에만 국한되지 않고, 요구불예금 유치와 금융채(은행채) 발행 등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금리인상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예금금리가 4%대로 내려왔는데 대출금리 (상단)는 8%대를 향한다'며 이자장사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데, 이는 억지에 가깝다"며 "대체로 실대출금리가 연 5~6%대, 예금금리가 연 4%대로 예대금리차가 적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예대금리차가 있어야 금융사들이 마진으로 주주환원, 공헌사업도 할 수 있는 만큼, 예금금리는 현 수준이 정상적이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예금금리도 낮아지는 가운데, 투자자들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은행권에서는 그럼에도 정기예금 가입을 최선의 방책으로 꼽고 있다. 지난해 수준의 상당한 금리인상은 없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고금리는 지속될 수 있는 만큼 가입기간을 2~3년으로 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전문가들은 올 상반기까지 금리가 오르고 하반기부터 금리가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당국 개입이 끝나고 시장논리로 가면 정기예금은 이(현재)보다 낮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상반기 중 장기적으로 묶어둘 수 있는 자금이 있다면 최소 2~3년 장기 정기예금에 예치하는 게 좋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해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해 말 818조 436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말 대비 163조 5007억원 폭증했다. 지난해 10월에만 49조 411억원의 뭉칫돈이 이들 은행에 유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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