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윤석열 대통령이 ‘전술핵 배치’ 혹은 ‘자체 핵보유’를 언급하면서 역대 대통령들이 사용하지 않은 강경 발언을 내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정부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즉각 선을 그었고, 야당은 비판에 나섰다. 하지만 미국의 안보전문가 일각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현실적인 고민”이라는 평가를 내놓아 눈길을 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외교부와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북핵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이란 단서를 붙이면서 “여기 대한민국에 전술핵 배치를 한다든지 우리가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은 한미 간에 미국 핵자산 정보를 우리가 공유하고, 공동 기획, 공동 실행하는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며 “그것은 우리 안보를 미국이 지켜주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 안보이익의 공통 이해관계가 일치한다고 본다. 그런 차원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북한은 비용이 적게 드는 공격에만 치중하고 있고, 방어시스템 구비는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가 공격을 당하면 100배, 1000배로 때릴 수 있는 대량응징보복(KMPR) 능력을 확고하게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강경 발언은 지난달 26일 북한 무인기 침범 이후 계속 나오고 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전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확전 각오 태세로 대응하라”고 했다. 이로부터 사흘 뒤 국방과학연구소(ADD)를 방문해선 “압도적으로 우월한 전쟁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1일 국가위기관리센터 방문 때엔 “일전을 불사한다는 결기로 적의 도발을 응징하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4일 “북한이 또다시 영토를 침범하는 9.19 남북군사합의 효력정지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최근 북한 핵·미사일 위협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사실이 윤 대통령의 강경 발언이 나온 배경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미 ‘남한을 타격 목표로 한 선제공격’ 가능성을 언급했고, 7차 핵실험도 예고돼 있다. 북한은 지난해 최소 33차례에 걸쳐 70여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또 방사포와 무인기로 군사분계선(MDL)을 침범하는 등 모두 15차례 9.19 남북군사합의를 어겼다. 특히 12월 31일과 1월 1일 사상초유 연말연시 연이틀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하지만 미국은 즉각 백악관부터 나서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하며 윤 대통령의 핵보유 발언에 선을 그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12일(현지시간) 관련 질문에 “미국과 조 바이든 대통령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고, 이는 변하지 않았다”면서 또 “한국정부가 핵무기를 추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미가 공동으로 확장억제 역량 강화를 논의하고 있다.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미 국무부도 13일(현지시간) “미국과 한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계속 추구하고 있다”고 했으며, 미 국방부는 “미국의 정책은 핵 비확산의 관점에서 비핵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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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외교부·국방부에 대한 연두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1.11./사진=대통령실 |
대통령실은 12일 윤 대통령의 핵보유 발언으로 파장이 확산되지 않게 진화에 나선 모습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북핵 위협이 갈수록 고도화하는 상황에서 국민을 지키겠다는 국군 통수권자의 의지, 각오 등을 더욱 분명히 한 것”이라면서 “안보라는 것은 늘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은 “대통령의 입이 안보 리스크”라고 비판하는 등 윤 대통령의 핵보유 발언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삼아온 대북 대응 기조를 흔들고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야당은 윤 대통령이 외교부와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일본의 반격능력 보유를 용인하는 듯한 발언에 대해서도 “방치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업무보고에서 “일본도 머리 위로 IRBM이 날아다니니까 방위비 증액하고 반격 개념이라는 것을 국방계획에 넣기로 하지 않았나. 그것을 누가 뭐라고 하겠나. 평화헌법을 채택한 나라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하지만 머리 위로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핵이 올 수 있는데 그것을 막기 쉽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안보 전문가 일각에서 윤 대통령의 핵보유 가능성 발언에 대해 “현실적인 고민일 것”이라며 찬성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15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따르면, 아더 왈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국제관계학 교수는 한국의 자체 핵무장에 찬성한다고 밝히고, “핵무장을 하려면 동시에 일본 등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과 더욱 긴밀한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했다.
다릴 프레스 미 다트머스대학 국제안보연구소 교수도 “한국이 독자 핵능력 보유를 선택할 경우 외교적 노력이 중요하다. 한국정부가 동맹국들에 한반도 비핵화를 원하지만 북한의 불법적인 행동 때문에 이런 정책을 채택한 것이라고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핵자강론을 주도하고 있는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검토해야 한다. NPT 탈퇴 검토만으로도 강력한 대북·대중 메시지가 될 것”이라면서 “(이제) 완전한 비핵화보다 완전한 북핵억제가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센터장은 이어 “그리고 미국과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을 추진해 NPT 체제 속에서 평화적 핵이용과 관련한 재처리 권한을 확보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하면 미국이 호주의 핵잠수함 개발을 지원한 것처럼 한국도 미국으로부터 핵잠 개발 지원을 받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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