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지호 기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에 반발하고 나선 가운데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 계열 상장사들의 지분을 대량 보유한 국민연금은 그간 삼성 계열사의 합병 사안에서 엇갈린 행보를 보였다. 옛 제일모직은 2013년 패션사업부를 떼어내 삼성SDI에 흡수 합병됐다. 국민연금은 옛 제일모직이 패션사업부를 떼어낼 때 지분 11.16%(585만여주)를 보유한 제일모직의 단일 최대주주였다.
당시 제일모직은 합병 반대 주주들을 대상으로 주당 8만9298원에 주식을 사주겠다는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신청을 받았다. 일부 주주와는 반대로 국민연금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당시 시장 주가가 매수청구권 행사 가격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에 국민연금이 주식매수청구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했다면 손실을 피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제일모직이 패션사업부를 떼어내고서 주가가 하락하는 바람에 삼성SDI와 제일모직 간 합병 비율은 1대 0.4425로 정해졌다. 제일모직 주당 가격이 6만7162원으로, 삼성SDI 15만원의 절반을 밑도는 수준에서 합병이 결정된 것이다.
당시 일부 주주들이 "제일모직이 패션사업부를 떼어내자 주가가 하락해 주주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자 삼성은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 가격과 시장 가격을 따져 결정한 만큼 문제가 없다며 일축했다.
옛 삼성에버랜드가 사명을 바꿔 상장한 지금의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합병에서도 국민연금은 문제에 봉착했다.일부 주주들은 "삼성물산의 주가가 극도로 저평가된 상태에서 합병 결정이 내려져 삼성물산 주주의 이익이 훼손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 측은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주총까지 시간이 많이 남은 만큼 좀 더 지켜본 뒤 결정을 내리겠다는 의도다. 다만 국민연금은 합병에 찬성 혹은 반대와 매수청구권 행사 어느 쪽도 결정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합병에 찬성할 경우 삼성물산의 소액주주를 비롯한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합병에 반대하거나 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미국 헤지펀드의 편을 들어 국내기업 보호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 시도 때처럼 주총에서 기권 후 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자칫 합병 무산이후 주가가 급락할 가능성이 있다. 매수청구권을 행사할 명분도 없다. 삼성물산의 주가는 10일 종가 기준 7만5000원에 달한다. 이는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인 5만7000원보다 30%이상 높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안건에 대해 필요하면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열어 결론을 내리겠다.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국민연금의 가치증대 방향에 맞는 쪽을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