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온라인뉴스팀 ] 삼성물산이 자사주를 처분하는 강수를 두면서 본격적으로 경영권 방어에 나섰다.

전일 삼성물산은 이사회를 열어 자사주 5.76%를 KCC에 넘기기로 했다. 자사주 처분 결정은 사외이사 4명의 전원 합의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제일모직의 2대 주주(10.18%)인 KCC를 '백기사'로 내세운 것이다.

삼성물산은 이날 장 마감 이후 자사주 899만주를 시간외 매매 방식으로 처분했다. 자사주 처분 결정은 사외이사들의 합의에 따른 것으로 확인됐다. 11일 오후 3시까지 KCC 보유 지분으로 전환되면 의결권 없는 자사주의 의결권이 살아나게 된다.

이로써 삼성물산의 우호지분은 기존 13.99%에다 지난 8일 KCC가 매입한 0.2%, KCC에 처분한 자사주 5.76%를 더해 도합 19.95%로 늘어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며 주총결의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엘리엇)의 지분은 7.12%다. 엘리엇은 냉각기간 5거래일 규정에 따라 11일까지 지분 추가 취득이 제한된다.

따라서 삼성물산 우호지분과 엘리엇의 지분 격차는 6.87%포인트에서 최대 12.83%포인트로 벌어진다. 그만큼 합병이 성사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삼성물산이 이처럼 자사주 처분에 나선 것은 경영권 방어 차원의 총력전으로 해석된다. 지난 4일 엘리엇이 경영 참가 목적의 지분 보유 사실을 공시하며 공격을 개시한 직후만 해도 자사주 처분에 대한 언급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이 국민연금 등 주요 주주에게 합병 반대 제안서를 보내고 현물배당 및 중간배당을 요구하는 주주제안서를 발송하는가 하면 급기야 법원에 가처분 신청까지 제기하자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절박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백기사를 등장시켜 자사주를 처분함으로써 경영권을 지켜낸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2003년 SK그룹과 소버린의 경영권 분쟁이다. SK는 2003년 12월 자사주 4.5%를 1744억원에 시간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하나·신한·산업은행에 매각했다. 삼성물산의 자사주 처분과 거의 비슷한 구조다.

국내 금융권이 백기사로 나서면서 우호세력을 결집시켰고, 소버린이 나흘 뒤 법원에 의결권 침해금지 가처분을 냈지만 기각됐다.

최근에는 NC소프트 사례가 있다. 지난 2월 NC소프트는 넥슨의 경영참여에 대응하기 위해 자사주 195만주를 우호세력인 넷마블에 매각했다.

NC소프트가 넷마블 지분을 인수해 주식 스왑형태로 진행한 계약이었다.업계의 한 관계자는 "자사주 처분은 해외에서도 경영권 방어를 위해 종종 등장하는 사례"라고 말했다.

삼성물산이 국내 대형건설사들의 PBR(주가순자산비율)을 구체적 지표로 제시하며 반격을 개시한 데 이어 자사주까지 처분한 것은 엘리엇을 제외하고 26.85%(9일 장 마감 기준)에 달하는 외국인 지분의 의결권 향방을 짚어내기 어렵다는 불확실성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