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지호 기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의 자사주 처분에 대해 가처분 소송을 내면서 진흙탕 싸움이 연출되고 있다.
11일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자사주 처분을 불법 행위라고 규정하면서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가처분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지난 9일 합병 주주총회 결의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데다 자사주 처분에까지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나선 것.
일각에서는 이번 소송을 계기로 엘리엇이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단기 시세차익을 노릴 가능성도 아직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11일이후 엘리엇의 행보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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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물산./사진=연합뉴스 |
이날 삼성물산은 다음 달 17일 열리는 주총에 참석할 주주를 확정하기 위해 주주명부를 폐쇄한다. 때문에 11일 이후 엘리엇이 소유지분을 대거 매각한다면 엘리엇의 지분매입과 법적대응 등은 단기 차익을 노린 ‘노이즈 마케팅’에 불과한 것이 된다.
지난 2003년 소버린자산운용도 SK 14.99%를 확보해 최대주주가 된 뒤 기존 경영진을 압박하는 등 1조원의 차익을 얻고는 한국을 유유히 떠난 전례가 있다. 소버린 역시 SK가 자사주 583만주를 하나은행과 신한은행, 산업은행 등 국내 금융권에 총 1744억원에 매각하자 의결권 침해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가 기각된 바 있다. 이런 점을 예상한 듯 삼성물산의 주가는 매물 출회 우려에 이날 오전 6%대로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엘리엇이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다는 분석도 여전하다. 외국인과 소액주주가 엘리엇 측에 연대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어느 정도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어서다. 다만, 이 경우에도 엘리엇이 7월 17일 임시주총과 8월 6일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기일 사이에 엘리엇이 투자금을 회수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합병무산과 합병비율 재조정 등을 이끌어낸다 해도 지분율이 7.12%에 불과해 실익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사례를 볼 때도 엘리엇은 아르헨티나 부실 국채를 인수한 뒤 아르헨티나 정부에 소송을 걸어 2001년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빠뜨렸다. 또 미국의 생활용품 업체인 P&G가 독일 헤어용품 전문기업인 웰라를 인수할 때 대주주에 비해 소액주주의 지분 매입 단가가 낮은 것을 문제 삼아 1년여간 소송전을 벌인 끝에 소액주주의 매입가를 약 12% 끌어올린 전력이 있다.
국내 법원에 신청한 가처분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론스타와 같이 ISD(투자자-국가 간 소송) 독소조항을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ISD 독소조항은 투자자가 특정국가의 법령이나 정부 정책 때문에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면서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다. 엘리엇이 ISD를 제기한다면 소송의 주무대는 미국으로 바뀌기 때문에 한국에 불리해진다. 엘리엇은 아르헨티나를 디폴트에 빠뜨릴 때도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라진성 키움증권 연구원은 “엘리엇의 행보는 아직 짐작할 수 없지만 일단 법원의 판결을 보고 최대한 우호지분을 끌어들이는 게 삼성의 대비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에 큰 문제가 없고 장기적으로도 합병이 주주에 유리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부사장은 “건설업 종목의 저평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건설회사들이 그렇게 주가순자산배율(PBR)이 낮다는 것은 시장에서 미래가치를 안 좋게 보고 있는 것이다”며 “한미약품처럼 신약으로 인한 성장성이 급속하게 부각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한 지주회사 혜택을 볼 수 있고 바이오 산업도 할 수 있는 합병이 삼성물산 소액주주에도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합병을 안 한다고 주가가 올라갈 상황이 아니라면 합병을 통해 주가가 오르는 것이 주주에도 좋은 일이다. 합병비율 역시 주가조작을 통한 것이 아니라면 반대할 명분이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