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총액제·서민금융' 압박…은행권 뒤늦게 금리인하 행렬
[미디어펜=류준현, 백지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금융당국이 은행을 '공공재'라며 연일 강공을 펼치는 가운데, 여야 정치권도 경쟁적으로 은행권을 옥죄는 법안과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은 은행의 공공성을 명문화하는 법안을 발의한 데 이어, 대출자의 이자 상환 부담을 덜어주는 '이자총액제'와 '금리할인'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야당에서도 은행권을 겨냥해 서민금융 공급액을 기존보다 두 배 늘리는 법안이 발의됐다. 

   
▲ 윤석열 대통령과 금융당국이 은행을 '공공재'라며 연일 강공을 펼치는 가운데, 여야 정치권도 경쟁적으로 은행권을 옥죄는 법안과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사진=각사 제공


최근 이자장사 논란에 휩싸이면서 사회공헌과 금리인하에 나선 은행권은 정부와 정치권의 움직임에 당혹스러워 하는 모습이다.

22일 금융권과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부산 동래구)은 지난 16일 은행의 공공성을 명문화하는 내용의 '은행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국회에 발의했다. 

개정안은 은행법 제1조에 '은행의 공공성'을 명문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 1조는 "은행의 건전한 운영을 도모하고 자금중개기능의 효율성을 높이며 예금자를 보호하고 신용질서를 유지함으로써 금융시장의 안정과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기재돼 있다. 

이 중 '금융시장의 안정'을 '금융시장의 안정을 추구하고, 은행의 공공성을 확보함으로써'로 개정하는 게 주요 골자다.

김 의원은 개정안 발의 배경에 대해 "최근 코로나19 확산에 이은 고금리로 자영업자, 소상공인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은 금리상승기 예대금리차로 막대한 이자수익을 거두고 1조원대 성과급 보상까지 이뤄졌다"며 "은행은 과거 외환위기 당시 구제금융 비용을 전 국민이 부담하는 등 공공재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업시간 제한, 점포 폐쇄 등의 사례와 같이 사회적 책임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은행은 정부 인가 없이 할 수 없는 '신용창출'의 특권이 있고, 일반기업 채권자와 달리 예금자, 즉 국민을 채권자 집단으로 하고 있다"며 "국가경제 순환의 핵심기능인 자금공급을 담당하고 있어서, '공공성'이 있다는 것은 모든 학자가 동의하고 있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법안 발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구두적으로 당국의 규제를 요청하고 나섰다. 전날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 의원은 '은행 공공성 강화'의 핵심은 '금융 비용부담 완화'를 위한 것이라며, 이자상환 부담 완화를 위한 '단위기간 이자총액제'와 성실상환 대출자(차주) '금리할인' 등을 당국에 제안했다.

이자총액제는 이자상환 기간을 6개월, 1년 단위로 구분해 특정 월에 상환을 못해도 단위 기간 내로 상환하면, 연체 없이 상환한 것으로 인정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대출자의 상황에 따라 상환이 어려워지면 유예기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자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와 함께 이자비용을 줄이기 위해, 추가 금리할인 적용 사유를 다양화해야 한다는 입장도 내비쳤다. 김 의원은 "기업에 대해 최대 3%까지 성실상환에 대한 금리인하를 하는 것처럼, 수년간 성실 상환한 가계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금리할인을 적용해줘야 한다"며 방안을 제안했다. 

같은 당 이채익 의원은 지난 20일 은행권의 금리변동을 금지하는 은행법 제30조의3을 신설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은행권이 판매하는 고정금리 대출상품의 금리변동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신 국가의 외환유동성 위기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 국한해 금리를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해당 법안은 현행 '가계용 은행여신거래기본약관'의 맹점을 건드린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과 고객이 고정금리로 대출계약을 체결했더라도 국가경제 상황에 따라 은행이 금리를 변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까닭이다. 

야당에서도 은행을 압박하는 법안이 나왔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의원은 지난 21일 서민금융상품의 은행 출연금을 현행보다 2배 확대하는 '서민금융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서민금융진흥원의 '서민금융 보완계정'에 출연하는 은행권의 출연비율을 현행 0.03%에서 0.06%로 2배 인상하는 게 주요 골자로, 5대 시중은행과 산업은행, 기업은행, 수협은행 등이 적용 대상이다. 

김 의원은 은행권의 출연금을 높이는 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연간 출연금이 약 2200억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은행판 '횡재세법'도 거론된다. 민병덕 더민주 의원은 은행으로부터 초과이득세를 걷는 법인세법 개정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은행의 소득금액이 직전 3개 사업연도 평균 소득금액을 초과할 경우, 초과분에 법인세를 부과하자는 게 개정안의 주요 내용이다. 

앞서 우원식 더민주 의원(기본사회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은 지난 14일 "윤 대통령이 은행 수익을 국민과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라고 이야기한 것은 민주당의 횡재세 논의에 화답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금리 상승기 은행의 예대마진과 화석연료 가격 폭등에 따른 거대 에너지기업의 이윤을 횡재세로 걷어 국민 기본적 생활 보장 재원으로 쓰는 것은 매우 정의로운 조세 정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정치권 압박에 은행권 금리인하 경쟁

정부에 이어 여야 의원까지 옥죄기에 합류하면서, 주요 은행들은 부랴부랴 대출금리 인하에 나서고 있다. 최근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최저 4%대까지 내려왔다. 

KB국민은행은 오는 28일부터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금리를 최대 0.55%포인트(p) 낮춘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고금리와 경기둔화로 금융소비자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있는 상황에서 실효성 있는 지원을 위해 지난 12월과 1월에 이어 추가로 금리 인하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국민은행은 지난해 12월 말 가계대출 금리를 최대 0.75%포인트 낮춘 데 이어 지난달에도 주담대와 전세대출 금리를 각각 최대 1.05%p, 1.30%p 내렸다. 

우리은행도 전날부터 주담대 신잔액 코픽스 기준 6개월 변동금리를 0.45%p, 주담대 5년 변동금리를 0.20%p씩 각각 내렸다. 인터넷은행인 카카오뱅크도 신용대출과 마이너스 통장 금리를 최대 0.70%p 인하했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NH농협은행도 조만간 대출금리 인하 행렬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권의 금리인하 노력에도 여야 의원들이 '은행 때리기'를 정쟁수단으로 삼고 있고, 국민 여론도 악화되고 있어 당분간 업계를 향한 사회적 비판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에 은행권에서는 최대한 몸을 사리면서도 불만을 내뿜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대통령의 '은행은 공공재' 발언 이후 정치권에서 경쟁적으로 은행의 이자수익을 문제삼고 있다"며 "구제금융을 받지도 않은 은행들이 왜 기본 수익모델인 '이자장사'에서 규제돼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부담 증가로 은행이 수익을 올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연체율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 은행권 건전성 강화가 중요해진 시점"이라고 우려했다.

최근 국내 은행권의 이자이익 비중이 90%에 달해 비이자이익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비이자부문으로 사업을 확장하려 해도 금소법(금융소비자보호법)이나 금산분리와 같은 각종 금융 규제 때문에 시도조차 못 하고 있다"며 "단순 예·적금부터 방카슈랑스까지 은행이 상품 하나를 판매하려면 당국에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하는 실정인데, 비이자이익 비중이 낮다고 지적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