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준 포스코 회장도 만족한 '철이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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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왼쪽) 백남준 작가의 '철이 철철-TV깔대기,TV나무' (사진오른쪽) 김택기 작가의 '로보트 태권 브이 시리즈'. /사진=미디어펜 고이란 기자 |
[미디어펜=고이란 기자] 포스코센터 문을 열고 들어가면 첫 번째로 보이는 것이 백남준의 ‘철이철철-TV깔대기, TV나무’라는 작품이다. 천장까지 높이 솟은 철제 기둥 끝에 작은 TV들이 나무의 열매처럼 줄줄이 매달려 있다.
1995년 포스코 미술관이 갤러리로 문을 열었을 때 백남준 작가가 “포항제철은 철 만드는 회사이니 철이 철철 넘쳐나라”라는 의미로 작품을 만든 것이다.
이 작품에서 포스코미술관 개관 20주년과 이전 기념전 <철이철철-사천왕에서 로보트 태권브이까지>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백남준 선생이 직접 자필로 쓴 글씨체까지 그대로 말이다.
전시의 시작은 ‘세상을 지키는 철’이다. 김택기 작가가 강철로 만든 '로보트 태권 브이 시리즈' 가 출입구에서 관람객을 반긴다. 악당을 물리치던 로보트 태권 브이가 콘트라베이스와 색소폰을 들고 연주하는 모습은 경쾌하면서도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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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코미술관에서 열리는 '철이철철' 첫번째 파트 '철, 역사가 되다' 전시장 모습. 철조십이지신상(사진 위쪽)과 철조사천왕(사진 아래쪽)이 전시장을 지키고 있다. 작품들 모두 개인소장품이며 고려시대에 철로 만들어진 유물이다. /사진=미디어펜 고이란 기자 |
본격적으로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면 고려시대 유물인 철조사천왕상과 뜨거운 쇳물이 쏟아져 나오는 영상이 전시회장 안으로 이끈다. 전시의 첫 번째 파트인 ‘철 역사가 되다’는 경쾌한 인트로와 달리 묵직하고 웅장하다. 이영상은 실제로 포항 제철소에서 촬영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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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하 포스코미술관 큐레이터 |
전시에 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강정하 큐레이터를 만났다.
Q1. 전시장에 고대유물까지 등장한 배경은?
처음 전시를 진행했을 때는 철을 이용해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현대작가들을 찾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다른 미술관에서도 많이 해왔고 어떻게 하면 다르게 보일 수 있을까라는 고민 끝에 철로 만들어진 고대유물까지 분야를 넓혔다. 또 한 공간에서 디자인작가와 현대작가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철 예술이 되다’ ‘철 생활이 되다’ 파트에서 그 부분까지 신경 썼다. 최종적으로 모두 17인의 작가를 섭외했다.
Q2. ‘철’을 주제로 한 작품들 설치가 힘들지 않았나?
우선 유물이 있다 보니 기존에 해왔던 전시들과 비교해 보험비용이 많이 들었다. 또 김병호 작가의 작품은 500kg이 넘기 때문에 운반도 쉽지 않았고 균형 있게 전시장에 매달아 놓는 것도 어려웠다. 김종구 작가의 ‘하얀방’도 시간이 많이 걸렸고 공들인 작품이다. 2층에서 지하 1층으로 미술관 이전을 하면서 전보다 진입로 문도 커지고 전시장 높이도 3m이상으로 높아져 이번 전시와 딱 들어맞았다.
Q3. 분야가 많아 작품이나 작가 섭외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미술관이 포스코 소속기관이라는 점 때문에 대외적인 활동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대부분 좋게 생각하고 출품해주시는 것 같다. 포스코 간판이 주는 신뢰감과 우직스러운 면 때문이 아닐까.
Q4. 가장 인기 많은 작품은?
이번 전시는 관람객들의 사진촬영이 불가하다. 유일하게 기념촬영을 할 수 있는 작품이 있는데 바로 박승모 작가의 ‘연기’라는 작품이다. 관람객이 작품 뒤로 들어가 사진을 찍으면 흑백영화 속 한 장면처럼 숲속을 거니는 주인공이 된다. 권오준 회장님도 전시장을 방문했는데 함께 온 외국인 바이어분들이 특히 좋아하셨다.
Q5. 전시 준비를 마치고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메르스가 가장 크다. 처음 전시 시작했을 때는 학생단체 등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다. 사회공헌 파트에서 소외계층 아이들을 초청하는 일정도 있었는데 모두 취소됐다. 아이들 대상으로 토요일에 하는 연계교육도 반응이 좋았지만 현재 연기된 상태다.
Q6.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는?
우리 미술관은 일반인 관람객들도 찾지만 포스코 직원들도 중요한 고객이다. 한번은 특수강파트에서 단체로 온 적이 있는데 예술가들은 어떻게 철을 활용했는지 살펴보다 보면 재료적인 부분이나 업무적인 부문의 아이디어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제철소에서 방문하는 직원들도 “내가 이거 만드는 사람이에요”라며 자부심도 갖는다. 회사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는 시기인 만큼 미술관이 분위기 쇄신의 역할을 맡아 직원들에게 힘을 줬으면 한다. 또 일반인들도 “철 만드는 포스코가 이런 전시도 하는구나”라고 더 친근하고 가깝게 느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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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코미술관 '철이철철' 전시회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작품들을 구경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고이란 기자 |
전시장 양쪽으로는 ‘철 예술이 되다’ 파트로 현대작가의 작품들이 줄지어있다. 대표적인 작가 김종구의 ‘하얀 방’은 작가가 방 안쪽 흰 바닥에 철가루로 글자를 쌓아올렸다. 이 글자를 다른 각도에서 파도 혹은 산맥으로 변한다. 글자 높낮이의 차이가 주는 효과다. 관람객들은 직접 방에 들어가 작품에 설치된 cctv를 통해 자신의 발도 작품과 함께 비춰볼 수 있다.
마지막 ‘철 생활이 되다’ 파트를 둘러보다보면 김경환 작가의 ‘의자의 진화’ 시리즈가 눈에 띈다. 차가운 금속을 따뜻한 가죽이나 나무 느낌으로 표현해 흥미롭다. 작가는 수 만번 철을 두드려 가죽의 푹신한 질감을 불어넣고 산성 용액으로 부식시켜 가죽의 색을 띄게 했다. 작가의 작품은 사람이 실제로 앉을 수도 있다. 사용감이 더해질수록 가죽에 멋이 더해지듯이 작품도 더 깊어진다고 한다. 아쉽지만 전시장에서는 눈으로만 볼 수 있다.
전시장에는 일반인 관람객들도 있었다. 아이들과 미술관을 찾은 김순영(서울시.40)씨는 “큰 아이가 미술에 관심이 있어 찾게 됐다”며 “철이 이렇게 섬세한 작품으로도 쓰인다니 새로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엄마와 함께 온 백승우(7)군은 “철사로 만든 숲이 제일 인상 깊었다”며 “사람이 숲을 걸어가는 것처럼 보여 신기했다”고 말했다.
철이 시대를 뛰어넘어 예술 소재로 변화되고 확장되는 모습을 조망할 수 있는 '철이철철' 은 서울 포스코센터 지하1층 포스코미술관에서 다음달 7일까지 계속된다. 이후 7월 17일부터 8월 13일 까지 경북 포항에서 설치가 어려운 몇 작품을 제외하고 전시를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