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임창규 기자]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국내 자산운용업계에서는 일단 삼성그룹의 계획대로 합병이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에 더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국내 자산운용사들은 삼성물산 지분을 최대 10% 가까이 보유한 것으로 추정돼 이런 인식이 주총 표 대결에서 어떤 방향으로 작용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성창훈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CIO)은 17일 "현재까지 정황으로 봤을 때는 삼성그룹에 유리한 것으로 판단돼 합병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본다"며 "엘리엇의 도전은 노이즈(잡음)로만 끝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을 통해 신사업을 잘 벌여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합병 법인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이번 합병안에 찬성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손동식 미래자산운용 주식운용부분 대표는 "제일모직 주식을 같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삼성물산 요소만을 놓고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합병 계획이 무산됐을 때 제일모직의 주가 하락이 예견된다는 점에서 섣불리 합병 반대 의견을 내기는 곤란하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받아들여진다.

국내 가치 투자의 전문가로 손꼽히는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부사장은 앞서 양사 합병 취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찬성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허 부사장은 "삼성물산이 지주회사가 되면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며 "자산 가치로만 보면 합병 비율이 안 맞지만 시장이 평가했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한다"고 언급했다.

다만 아직 적지 않은 운용사는 내달 주총까지 한 달가량의 시간이 남은 만큼 주가 추이를 지켜보면서 신중히 찬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고객의 자산을 대신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로서 투자자 이익의 관점에서 판단할 것"이라며 "의결권 행사 방향은 내부 통제 기구와 펀드 매니저 등이 참석하는 의결권위원회에서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국내 자산운용사들은 대체로 글로벌 의결권 자문 기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의 의견서 내용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ISS가 7월 초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대한 견해를 표명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최근 파이낸셜타임스가 엘리엇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칼럼을 싣는 등 해외 여론은 삼성 측에 다소 불리하게 전개되는 상황이다.

성 본부장은 "ISS의 의견은 국내 사정을 잘 알 수 없는 해외 투자가들은 많이 참고하지만 국내 기관들은 자체 연구·운용 인력을 보유하고 있어서 ISS의 의견을 거의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손 대표도 "참고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ISS 결정을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국내 의결권 자문 기관인 서스틴베스트는 지난 9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안은 삼성물산의 일반주주 지분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며 이번 안건에 반대할 것을 권고하는 의견서를 국내 자산운용사들에 발송한 바 있다.

반면 대신경제연구소 지배구조연구실은 "합병과정에서 법규 위반 사항이 없을 뿐 아니라 일부 논란에도 합병시점 및 밸류에이션(평가가치) 문제가 크지 않아 이번 합병 건에 대해서 찬성 의견을 표한다"고 엇갈린 견해를 내놨다.

올해 3월말을 기준으로 삼성물산 주식을 보유 중인 국내 자산운용사는 한국투신운용, 삼성자산운용, KB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 트러스톤자산운용, 교보악사, NH-CA자산운용, 하나UBS자산운용, 신영자산운용, 키움자산운용 등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