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메르스 전사’를 자처하고 나섰지만 방역당국과 서울시 25개 자치구, 환자와 갈등을 빚는 등 곳곳에서 엇박자를 내고 있다.

박원순 시장은 지난 4일 늦은 밤 긴급브리핑을 통해 정부의 메르스 대응을 문제 삼으며 “서울시 모든 행정력을 총동원해 메르스를 지키고 시민 안전을 지키겠다”며 서울메르스대책본부장을 자처하고 나섰다.

이 자리에서 박 시장은 사전 확인없이 ‘메르스 의사’로 알려진 35번째 환자의 동선과 접촉자 수를 구체적으로 발표하면서 환자와 진실 공방이 불거지기도 했다. '메르스 의사'로 낙인 찍힌 35번 환자는 '인격살인'을 당했다며 억울해 했다. 현재 위독한 상태로 알려진 35번 환자의 가족들은 '서울시 발표로 인해 환자의 스트레스가 가중돼 면역력이 약해졌다'며 박 시장의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 박원순 메르스 '정보통제'…뿔난 자치구 "서울시 못 믿겠다". 서울시가 지난친 정보통제로 자치구와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허술한 메르스 대응책으로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8일에는 서울시 홈페이지에는 박원순 시장의 명의로 '메르스대응관련 자가격리통지서 발부계획' 문서와 함께 자가격리 대상자 신상정보가 포함된 엑셀파일이 공개됐다. 파일에는 지난달 30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35번 환자가 들른 재건축조합 총회에 있던 150여명의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등이 그대로 노출됐다가 하루가 지난 9일 오전에야 삭제 처리했다. 서울시는 "담당자가 실수로 비공개 설정을 하지 않아 일시적으로 문서가 공개됐다"고 해명했다.

이 같은 실수에 대해 일부에서는 "'환자는 물론 격리자의 개인정보를 철저히 보호하겠다'고 강조하던 서울시가 시민들의 신상을 유출했다"는 비난이 일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 4일 박 시장의 긴급 브리핑 이후 '120 다산콜센터'와 '메르스 핫라인'에 의심 증상을 묻는 시민들의 전화가 폭주했다. 하지만 정작 서울시는 메르스와의 전쟁을 선포한지 6일이 지나서야 자치구 보건소 25곳, 시립병원 8곳, 국립·공공병원 2곳 등에 진료소를 설치하고 진료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 와중에 서울시 산하 서울의료원의 진료부장은 소속 의사 90명에게 '메르스 환자를 받지 말라'는 메일을 보낸 것으로 밝혀져 또 다시 논란을 빚었다. 박원순 시장은 개인정보 유출과 메르스 환자 거부 지침 발송에 대해 사과의 뜻을 표했다.

사과는 했지만 ‘메르스와 전쟁’을 선포한 박원순 시장의 공언과 달리 문제는 계속되고 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다산콜센터에서는 서울시메르스대책본부의 전화번호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15일 다산콜센터로 전화를 걸었던 한 제보자에 따르면 서울시메르스대책본부를 찾았더니 상담원이 질병관리본부 전화번호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제보자는 메르스 관련 신고를 하려니 서울시메르스대책본부를 재차 알려 달라고 하자 이번에는 서울시 생활보건과의 전화번호를 알려주겠다고 답했다. 서울시메르스대책본부 번호를 계속 묻자 확인 후 연락을 주겠다고 답했다. 또 다른 상담원은 일반인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줘도 되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고까지 했다.

제보자는 “15일은 박원순 시장이 메르스 방역에 서울시가 직접 나서겠다고 기자회견까지 한 날이었다. 그런데 최일선에서는 제대로 교육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터트렸다.

   
▲ 박원순 메르스 '정보 통제'…뿔난 자치구 "서울시 못 믿겠다". 박원순 시장이 35번 환자의 동선을 공개하면서 가든파이브을 찾는 손님이 대폭 줄었다. /사진=연합뉴스TV 영상캡처
더욱 큰 문제는 서울시가 25개 자치구와 메르스 대책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시가 메르스 확진환자에 대한 정보공개 기준없이 ‘브리핑 일원화’를 명분으로 자치구의 손발을 묶으면서 사실상 서울시가 원하는 정보만 공개하는 등 ‘정보통제’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이는 메르스와 전쟁을 선포하면서 중앙정부의 ‘정보독점’을 비난했던 서울시가 자치구 앞에선 정보를 통제하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서울시가 정보통제 논란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자치구는 한 두곳이 아니다.

17일 서울시가 정보통제 논란을 빚은 자치구는 관악구다. 발단은 서울시가 자의적으로 메르스 137번 확진환자의 이동경로를 공개하지 않은데서 비롯됐다. 삼성서울병원 응급환자 이송요원인 137번 환자는 메르스 증상 이후에도 9일간 정상 근무해 잠재적 슈퍼전파자로 지목됐다.

하지만 서울시는 지난 15일 브리핑에서 “137번 환자가 지난 5일 오후 아들의 치료를 위해 보호자 자격으로 보라매병원 응급실을 방문했다”는 내용만 공개했다. 이에 환자의 거주지인 관악구는 같은 날 오후 SNS를 통해 “137번 환자가 지하철 2ㆍ3호선을 타고 출퇴근했다”는 동선을 추가 공개했다. 관악구의 공개에 서울시는 16일 뒤늦게 137번 환자의 동선을 상세히 밝혔다.

애초 박 시장이 메르스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35번 확진환자의 이동경로와 시간을 구체적으로 공개한 것과 대비된다.

동작구는 99번 확진환자의 동선을 발표하려다 서울시의 정보통제로 묵살됐다. 지난달 27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입원한 장모를 간호하다 메르스에 감염된 99번 환자는 한국전력 남부지사 협력업체 직원이다. 거주지는 경기도 용인이지만 생활권이 서울 사당동 일대로 지역 주민으로 전파가 우려됐다. 당시 서울시는 브리핑 일원화를 내세우면서 관련 자료만 건네받은 뒤 공개하지 않았다.

금천구도 지난 9일에 서울시가 공개하지 않았던 93번 확진환자(중국 동포)를 발표하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메르스중앙대책본부의 정보공개 원칙을 맨 먼저 깬 서울시가 자치구와는 메르스 관련 정보공개 기준조차 없어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정보공개를 요구하고 나섰던 서울시가 되레 자치구의 정보를 통제하고 있는 꼴이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