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4월이라더니, 잔인한 6월이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첫 사망자가 발생한 이달 1일을 전후해 한 달 가까이 한국사회는 이 중동 독감과 전쟁 중이다. 물어보자. 당신은 메르스 바이러스가 그렇게 무서운가? 진정 두려운 건 메르스 공포를 확산시키는 이 나라 언론이 아닐까? 신문-종편-대형포털-좌파언론의 과잉보도가 사회혼란과 함께 정부 흔들기 그리고 경기침체라는 자살골로 이어진다는 걸 우리는 거의 매일같이 확인한다. 대통령의 방미 연기에 따른 외교 차질과 한반도 안전문제도 그 여파다. 언론 망국(亡國)의 소리가 나오는 현 상황에서 미디어펜은 ‘선동언론, 이대로 좋은가?’시리즈를 상-중-하로 나눠 싣는다. 책임있는 언론의 길을 위한 모색이다. <편집자 주> |
‘선동언론, 이대론 좋은가?’시리즈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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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우석 문화평론가 |
“과도한 공포가 키우는 메르스 불황” 1등 신문 조선일보의 목요일 18일자 머리기사인데, 한 달 가까운 ‘메르스 융단폭격’과 겁주기 보도에 비해 한결 분위기가 바뀌었다. 연일 정부 대응을 꾸짖던 사설도 이날 따라 한 꼭지도 찾아볼 수 없다. 다음은 기사 내용의 일부다.
“메르스 사태에 따른 주요 유통업체의 매출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09년 신종 플루나 지난해 세월호 때보다도 충격이 더 큰 것으로 파악됐다. 대형마트 1위 이마트는 매출이 작년 동기 대비 8.8% 감소했다.”
원인제공을 한 건 누구인데, 이제 와서 딴소리일까? 그런 의문이 절로 나오지만, 막상 지면은 변한 게 없다. 이날 신문은 1~5면과 함께 사회면 전체를 메르스로 도배했다. 이틑날 19일에도 변함없었다. 1면 머리기사가 ‘10일간의 방역공백…매뉴얼이 없었다’. 다시 정부 때리기로 돌아섰고, 사설은 두 개가 청와대와 총리를 각각 꾸짖는 걸로 채웠다.
18일 조선닷컴에 실린 장황한 메르스 기사 아래에 이런 독자 댓글이 눈에 띈다.“과도한 공포감을 조장하고 확대시킨 주범이 바로 당신들 언론들이란 걸 반성은 안하나? 사스나 신종플루보다 전염력이나 치사율이 훨씬 낮은 중동 감기몸살을 에볼라급으로 호들갑을 떨어대고 …”
자유경제원은 그 전날 긴급 현안 세미나를 가졌다. 결론은 대한민국이 선동에 특별히 취약하며, 원인제공을 하는 건 언론이란 지적이다. 맞는 말이다. 반복해 말하지만, 지난 1~2년 새 ‘전매체의 선동언론화’가 완성됐고 언론망국론이 나올만 하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메르스 공포는 ‘작은 광우병’인데, 7년 전 광우병 당시보다 상황이 안 좋다. 일테면 지금 청와대와 대통령 흔들기는 한경오(한겨레-경향-오마이뉴스)와 조중동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여기에 종편과 대형포털이 나서 바람을 잡으니 상황은 걷잡을 수 없으니 정부는 적극적 통치행위를 포기해야 할 판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시야를 좀 넓혀봐야 한다. 선동언론은 이미 반세기 전부터 우리의 체질이었다. 그걸 외면하면 안된다. 그리고 그 고약한 체질을 바꿔놓으려 했던 게 국민교육헌장의 구절대로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는 기풍의 박정희 정부였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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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범정부 메르스 대책지원본부 상황실에서 열린 메르스 대응 추진상황 점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
반세기 전 형성된 권력과 언론의 엇나가는 관계
“시체여! 너는 오래 전에 이미 죽었다. 죽어서 썩어가고 있었다. 넋 없는 시체여! 반민족적, 비민주적, 민족적 민주주의여! 썩고 있던 네 주검의 악취는 사쿠라의 향기가 되어…….”
51년 전 박정희가 추진한 한일국교정상화를 반대하는 대학가 시위가 대단했다. 1964년 5월 서울 시내 9개 대학교 학생 3,000명의 시위 때 발표된 ‘민족적 민주주의 조사(弔辭)를 쓴 것은 훗날의 시인 김지하였다. 이들은 뭘 몰랐다. 대한민국이 쇄국이냐, 개방이냐로 갈라지는 분기점이란 걸 알 리 없이 그럴싸한 명분에 매달렸다.
그들은 민주주의 만세와 함께 나라 문을 걸어 잠그고 살자는 민족주의 쇄국 타령 외엔 보이는 게 없었는데, 눈여겨 볼 점은 당시 언론의 태도다. 그때 벌써 선동언론이 시작됐다는 걸 알만한 이들은 안다.
일테면 거의 모든 매체는 학생 시위에 호의적인 지면을 만들어 뿌렸다. 한일국교 정상화의 큰 맥락을 파악하고 균형 잡는 신문은 드물었다. 당시 시위를 보도한 신문들의 제목이 이렇다. “대학가 휩쓴 뜨거운 바람”, “플래카드에 나부낀 애국심”, “지성의 격랑 정가를 뒤덮다”, “몽둥이·최루탄 세례가 웬 말이냐. …분노의 행진”.
어떠신지? 지금 메르스 괴담과 똑 같다. 그 며칠 뒤인 6월 3일 박정희는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 유명한 6.3사태는 불행했던 현대 한국정치의 엇나가는 구조를 함축한 원형질이다.(이명박 대통령이 6.3세대의 한 명이라고 자처를 하니 지금 70대 이하 거의 모두가 반 권력의 정서를 가지고 있다.) 이후 정치가 내출혈로 치달았다.
결정적으로 권력 대 언론 사이의 갈등이 첫 모습을 드러냈다. 학생, 언론, 야당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박정희에게 형성됐던 것도 당연하지 않을까? 그는 사석에서 “접장(교수)과 학생들 그리고 기자 때문에 나라가 안 된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우리나라 신문은 지난 18년간 선의이건 악의이건 너무나 많이 국민들을 자극했고 선동적인 언사를 써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국가사회에 유익한 일을 해왔다고 단언할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당시 대통령은 선동언론-대학가와 정면승부를 했다. 박정희정부는 날뛰는 언론에 사회적 의무를 부과하려고 했는데, 언론은 그걸 재갈 물리기로 받아들였다. 한국기자협회도 그 파동 직후 만들어졌다. 당시 대표적 기자인 동아일보 주필 천관우의 경우 1969년 당시 “서서 죽을지언정 무릎 꿇지 않겠다”는 비장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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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4일 방영된 KBS-2TV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코너는 ‘무늬만 공영방송’임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메르스를 주제로 정부를 때리고, 반국가를 외치는 건 방송 아닌 선동이고, 풍자가 아닌 탈선이다. /사진=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 영상캡처 |
권력 때리고 산업화의 가치 부인해야 후련한 반골 기질
권력을 손가락질하는 게 비판정신이라고 여겼고, 언론인의 독립성이라고 봤다. 그게 1970년대 언론자유운동으로 번져갔고, 1987년 체제 이후 지금가지 언론노조운동으로 치달았다.
지금도 언론사는 권력 감시와 자본 견제를 무슨 금과옥조처럼 되새기는데, 그게 짧은 생각이고, 낡은 패러다임에 불과하다. 사실 권력을 쥔 대통령이란 누구이던가? 그 사회에 비전을 선포하는 사람이다. 일테면 반세기 전 박정희가 내세웠던 비전은 조국근대화와 가난 탈출로 요약된다. 하지만 언론과 지식인들은 그런 전략적 목표의 큰 그림을 보길 거부했다.
그 고약한 풍토를 강력하게 찍어누른 채 박정희는 경제개발에 성공했지만, 이후 상처는 덧나고 있다. 언론은 변화된 세상에 더 끈질기게 살아남아 권력 이상의 권력으로 발돋움했다. 이제 가늠되시는가? 그게 지금의 선동언론이다.
명분을 앞세우고 윤리·도덕적 단죄를 능사로 하는 언론, 그 앞에 절절 매는 약체 정부…. 선동언론의 뿌리는 의외로 깊으며, 권력을 무조건 때리고 산업화의 가치를 부인하는 반골 기질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종북좌파+민족주의정서’까지 파고 들면 일이 왕창 커진다. 그게 지금의 우려스러운 언론 구조다. 필자가 며칠 전 언급한대로 메르스뻥 앞에서 국민적 공포를 조장하던 그들은 진정한 공포 대상인 북핵 앞에선 막상 “왜 철 지난 안보장사를 하느냐”는 식의 기사를 마구 써댄다.
그리고 그게 다시 대형 포털을 장식한다. 눈먼 네티즌들은 미국과 한국정부가 웃긴다고 킬킬 대며 냉소를 하는 악순환의 구조까지 드디어 완성됐다. 이거 정말 만만치 않다. 뿌리 깊은 선동언론, 요즘은 전매체로 확산된 선동언론의 양상을 분석하는 건 다음 회에 별도로 다룬다. /조우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