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금융위에 '이전기관 지정안' 제출…노조 "정당하지 않고 인정할 수 없는 회의"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강석훈 한국산업은행 회장 및 주요 경영진이 지난 27일 서울 모처에서 경영협의회를 열고 산은 본점 부산 이전 안을 의결해 금융위원회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산은 본점에서 경영협의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지만, 매일 아침 단행되고 있는 노조의 출근 저지 투쟁에 가로막혀 이들이 외부에서 이전 안을 의결했다는 후문이다. 노조는 이를 '위법 졸속 날치기 제출'로 규정하고, 금융위 앞에서 사측과 당국을 규탄하고 나섰다. 

   
▲ 산업은행 노조는 28일 오전 금융위원회 정문 앞에서 강석훈 산은 회장 및 경영진 등 사측과 금융위를 규탄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사진=류준현 기자


산은 노조는 28일 오전 금융위 정문 앞에서 강 회장 및 경영진 등 사측과 금융위를 규탄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현준 산은 노조위원장은 "어제 사측은 본점이 아닌 외부 호텔에서 경영협의회를 실시했다"며 "본인들도 정당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라고 포문을 열었다.

산은 노조에 따르면 사측은 전날 오전 10시께 본점에서 경영협의회를 개최할 계획이었지만, 반대 투쟁에 나선 노조를 피해 마포 일대 한 호텔에서 회의를 열고 안건을 처리했다. 노사협의 없이 사측이 단독으로 부산 이전을 위한 내부 방침을 작성해 당국에 제출한 것이다.

노조는 사측의 행보에 '날치기 통과'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지방 이전 대상 기관 여부를 최종 심의·의결하는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산은의 지방 이전 관련 절차 안내'에 따르면, 산은 회장은 내부 노사 협의를 거쳐 이전 규모·범위·시기 등 지방 이전 기관 방침을 마련해야 한다. 

노조 측은 사측이 일방적으로 이전 안을 의결한 만큼, 관련 내용은 '원천무효'라며, 강 회장의 절차적 정당성을 문제 삼고 있다. 앞서 노조는 '노사 공동 이전 타당성 검토 태스크포스(TF) 수락', '노사 협의 없이 이전 공공기관 지정 방안 제출 금지' 등을 요구했으나, 사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노조의 지방 이전 반대가 '직원·기관 이기주의'로 비춰진다는 일각의 추측을 강력 반발했다. 

그는 "(산은은) 자산 300조 이상의 대은행이다. 그리고 국가위기가 왔을 때 산업은행이 앞장서 그 위기를 극복하고, 앞으로 미래산업 및 낙후된 산업을 지키자는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며 "아무런 논의 없이 대통령 공약사항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지금 우리 직원들이 매도되고 있고, 산은 부산 이전이 논의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과거 1차공공기관 이전 당시 산은이 제외된 배경도 꼬집었다. 김 위원장은 "1차공공기관 이전할 때 왜 산은이 제외됐나. 산은은 시장형 정책금융기관이다"며 "시장에서 수익을 거양해야 정책자금으로 지원하고, 그 정책자금을 받은 기업들은 우리 국가경제를 살리고, 우리 국민들이 그것을 바탕으로 먹고 살 수 있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주요 금융기관들이 서울에 몰리는 점도 상기시켰다. 그는 "지방은행들을 제외하고 어느 금융기관이 지방에 배치해 있나. 외국계 금융기관들도 생각해보라"며 "금융산업은 네트워크산업이다. 사람과 시스템이 움직이는 산업이다"고 주장했다. 또 국가균형발전에 대한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그 해답이 '산은 이전'이 되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은 국책은행장의 역할론을 강조하며 비판을 이어갔다. 박 위원장은 "비록 조직 구성원들의 의사를 묻지 않고 대통령이 임명한 낙하산 회장이라 하더라도 (강 회장이) 집안의 가장이 됐으면, 외풍으로부터 식구를 막아주고 기재부에서 인력지원 한 명이라도 더 받아오는 등 가장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또 "산업은행, 금융위가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카드 중 하나다. 금융위기 때도, 코로나 때도, 그리고 레고랜드사태 때도 해결책은 산업은행 카드였다"며 "정책도 절차도 무시하고 국회도 패싱하면서 (이전을) 추진하는 것은 명백한 배임행위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산업은행 강석훈 회장이 제출한 이전 안을 즉각 반려할 것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김형선 금융노조 수석부위원장(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산은 홈페이지에 명시된 세 가지 역할 △미래혁신성장 선도 △기업과 산업의 경쟁력 강화 주도 △녹색·사회적 금융 강화를 거론하며, 부산 이전을 반대했다. 

김 수석부위원장은 "대한민국 금융산업을 주도하겠다는 산은의 입장, 서울에 있을 때 제대로 수행되겠는가, 부산으로 이전했을 때 제대로 수행되겠는가"라며 "부산으로 이전시켜서 고작 산업은행이 하나의 지방은행이 된다면 산업은행이 대한민국 금융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꼬집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이전 반대를 고수하고 있는 배진교 정의당 의원도 참석해 화력을 더했다. 배 의원은 "윤석열 정부가 국토균형발전을 명분으로 산업은행의 '묻지마 부산 이전론'을 강행하고 있다"며 "정부의 목표는 오로지 총선을 앞두고 올해 안에 이전을 마치겠다는 것이다. 마치 '가덕도 신공항 시즌2'를 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배 의원은 △현행법상 위법 △금융산업의 집적도 △산은 직원들의 의견 묵살 △대통령 후보시절 발언의 역행 등을 들어 이전 안이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대전의 한 지역간담회에서 발언한 '공공기관 이전 등 정부가 주도하는 방식으로는 국가균형발전이 안 된다', '공공주도형으로는 균형발전과 지역주민들이 실질적인 이익을 느끼지 못한다' 등을 거론하며, 정부가 이전 안을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배 의원은 "대전의 윤석열과 부산의 윤석열이 왜 이렇게 다른가. 이것이야말로 총선용 표몰이 정책이 아니면 달리 무엇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라며 "정부가 지금처럼 묻지마식으로 산업은행의 지방 이전을 추진한다면, 이는 대한민국 금융산업에 대한 자해행위가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국토균형발전이라는 형식적 목표도 제대로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며 "산업은행 지방 이전의 강행추진을 당장 중단하고 금융위원회는 산업은행 경영진의 부산 이전 내부결의를 폐기, 돌려보낼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말했다.
  
한편 산은이 전날 의결안을 금융위에 제출함에 따라, 금융위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금융위는 산은 의결안을 토대로 '이전기관 지정안'을 만들어 국토교통부에 제출할 방침이다. 이후 국토부 검토와 균발위 심의·의결을 거쳐 국토부 장관이 승인·고시하면 이전이 순차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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