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금리 인상 자제, LCR 유예, 대외위기 진정…채권시장 안정세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실리콘밸리은행(SVB), 크레딧스위스(CS), 도이체방크 등 글로벌 주요 은행의 유동성 연쇄 위기로 국내 은행권에 위기감이 드리우는 가운데, 최근 대출금리가 하락하는 현상을 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당국의 수신금리 인상 자제 요청,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완화 등에 힘입어 은행들이 급하게 자금을 조달할 필요성이 사라진 데다, 글로벌 은행들의 파산위기가 진정세를 보이면서 채권시장이 안정적인 상황이라는 평가다. 

   
▲ 실리콘밸리은행(SVB), 크레딧스위스(CS), 도이체방크 등 글로벌 주요 은행의 유동성 연쇄 위기로 국내 은행권에 위기감이 드리우는 가운데, 최근 대출금리가 하락하는 현상을 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사진=김상문 기자


29일 금융권과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 등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주택담보대출 고정(혼합형)금리는 연 3.66~5.82%를 형성하고 있다. 높은 기준금리에도 불구, 최저 3%대 금리를 제공하는 은행들이 하나둘 나와  눈길을 끈다. 이들 중 국민은행이 최저 3.66%의 금리를 제공해 주요 은행 중 최저를 기록했고, 농협은행도 최저 3.92%에 불과했다. 

주담대 고정금리 상품은 금융채 5년물(신용등급 AAA 기준)을 기반으로 하는데, 최근 채권금리 하락세에 힘입어 은행들의 금리도 자연스레 하향 조정되는 모습이다. 5년물 금리는 지난 24일 연 3.830%로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는데, 이를 기점으로 조금씩 상향 조정되면서 지난 28일 연 3.913%를 기록했다. 이달 초 금리가 4.564%(2일)에 육박했던 점을 고려하면 큰 폭의 하락세다.

이들 은행의 전세자금대출 금리도 채권금리 하락세에 힘입어 최저 3%대를 보이고 있다. 5대 은행의 전세대출 금리는 보증서 제공기관에 따라 이날 연 3.45~6.49%(하나은행은 1년물 기준)에 형성돼 있다. 특히 국민은행과 농협은행이 주담대에 이어 전세대출에서도 각각 최저 연 3.45% 연 3.91%의 금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전세대출은 금융채 2년물(AAA)을 기반으로 하는데 5년물과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2년물 금리는 지난 24일 연 3.635%를 기록해 연중 최저치를 기록한 지난 2월 3일(3.568%)에 이어 두 번째로 낮았다. 지난 28일 금리는 5년물과 함께 오름세를 보여 3.708%를 기록했다. 

신용대출 금리는 금융채 6개월물(AAA) 기준 연 4.76~6.54%를 기록하고 있다. 농협은행이 연 4.76%부터 대출을 내어줘 비교군 중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주요 은행들의 금리는 여전히 5~7% 이내에서 대출을 내어주고 있다. 

금융채 6개월물 금리는 지난 28일 3.598%를 기록하며 3.5%대에 재진입했다. 6개월 물 금리는 연중 최저치를 기록한 지난 2월 7일(3.532%) 이후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다 이달 중순께부터 다시 하향 조정되고 있다.   

주요 대출상품 금리가 하락하는 데 대해 은행권에서는 대내외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덕분으로 평가하고 있다. 우선 당국이 은행권의 수신금리 인상을 방지하면서 대출금리 인상에 제동을 건 상태다. 

아울러 지난 27일 한시적으로 취했던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등 유동성 규제 완화 조치를 올해 6월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은행들이 금융(은행)채 발행 등으로 비율을 끌어올려야 하지만, 당국이 이를 유예함에 따라 당장 은행으로선 자금 조달부담을 덜게 됐다. 

LCR은 금융기관 건전성 규제 중 하나로, 향후 1개월간 순현금 유출액에 대한 현금 등 고유동성자산 비율이다. 당국 규정대로라면 국내 은행들은 이 비율을 100%를 상회해야 하지만, 코로나19를 계기로 시중 유동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한시적으로 85%까지 낮춘 바 있다. 

대외적으로는 SVB와 CS 등 해외 은행들의 이슈가 빠르게 진정되고 있고, 국내 은행들도 '신종코코본드(신종자본증권)'를 조기상환(콜옵션 행사)하기로 결정하면서 외국인들의 불안을 잠재우고 있다는 평가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당국 요청으로 수신금리를 인상하지 못하고 있는데, 지난 27일 당국이 LCR를 유예해줘 은행채 발행이나 자금조달에 대한 부담을 덜게 됐다"고 말했다.

또 "제일 무서운 것은 해외투자자들이 국내에 투자했던 채권을 팔고 도망가는 것"이라며 "미국 정부의 예금자보호 조치, UBS의 CS 인수 등으로 은행 연쇄부도 가능성을 조기에 차단했고, 국내 금융권도 코코본드 콜옵션을 정상적으로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시장에 안정적인 시그널을 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국내 은행들이 리테일 기반의 영업을 펼치는 점도 긍정적 요소라고 평가했다.

은행권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지만 미국 유럽이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고, 국내 은행들도 투자자들의 불안심리를 빠르게 잠재우면서 채권금리가 안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미국의 긴축완화 가능성을 계기로, 은행권의 대출금리가 추가 인하될 지는 미지수다. 한 관계자는 "물가가 많이 올랐는데 낮은 대출금리나 시장금리가 유지되면 물가를 못잡는다"며 "아직 대내외적으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이슈가 있어서 (금리가)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관망하기 어렵다. 불확실성이 많이 남아 있다"고 전했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