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고 쫓기는 한‧중‧일 디스플레이 삼국지
한·중에 밀린 일본 뒤늦게 투자했지만 좌절
[미디어펜=조우현 기자]한국산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기술을 따라잡기 일본 정부와 기업들이 의기투합해 설립했던 JOLED가 파산 수순을 밟게 되면서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의 경쟁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의 디스플레이 기술력을 턱밑까지 쫓아온 중국의 입지를 견제할 만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진단에서다. 이에 최근 삼성디스플레이는 4조1000억 원의 투자를 감행하며 주도권 굳히기에 승부수를 던졌다.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7일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에서 전시된 디스플레이 제품을 보며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4일 전자 업계에 따르면 JOLED는 지난 달 27일 일본 도쿄지방재판소(지방법원)에 파산 보호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채 총액은 337억 엔(한화 약 3300억 원)이다.

업계에서는 JOLED의 파산 신청을 두고 이미 경쟁력을 잃은 상태에서 회생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전문가들은 다른 산업과 비교해 디스플레이 산업의 주도권 변화는 훨씬 역동적이어서 초기 미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한국과 대만으로 넘어갔던 주도권이 가까운 미래에 중국으로 이전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업계에서는 삼성디스플레이가 최근 8.6세대 IT용 OLED 투자를 감행한 것에 대해 "다자경쟁에서 양강 구도로 변화하면서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경쟁구도에서 선제적 투자를 통해 시장 지배력을 지키기 위한 초강수"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쫓고 쫓기는 한‧중‧일 디스플레이 삼국지

삼성은 디스플레이 사업 초기부터 과감한 투자로 사업의 승기를 잡아왔다.

LCD를 가장 먼저 상용화한 나라는 일본이었다. 일본은 브라운관 산업에서 쌓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최초로 LCD 상용화에 성공, 초기 디스플레이 시장을 주도했다.

LCD 수요가 증가하면서 일본이 주도해온 LCD 시장에 1995년 삼성과 LG가 뛰어들었고, 1999년 하반기부터는 대만 업체들도 진출해 아시아 3국간 생산 경쟁이 본격화됐다.

하지만 일본은 당시 차세대 분야인 5세대 LCD 투자를 머뭇거리며 결과적으로 시장 주도권을 잃게 됐다. 

한국은 2001년 당시 가장 앞선 기술인 5세대 LCD에 대한 과감하고 선제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그 결과 2004년 처음으로 일본을 뛰어 넘고 세계 LCD 시장 1위 자리에 올라섰다. 

이후 지속적인 기술개발과 6세대, 7세대, 8세대 LCD, OLED에 대한 투자 확대로 2004년부터 2020년까지 17년간 세계 1위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다시 바뀌고 있다. 한국의 뒤를 중국이 쫓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2021년 세계 시장 점유율 41.5%로 세계 1위 국가로 등극했다. 중국이 세계 1위에 오를 수 있었던 요인은 세계 LCD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면서부터다.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은 총 투자비의 10% 자금만 보유하고 있어도 공장을 건설할 수 있다. 중국 1위 디스플레이 기업인 BOE는 2018년 10.5세대 LCD B9 공장의 총 투자비 56억 달러 중 10%인 5억6000만 달러를 투입해 세계 최대 LCD 공장을 세웠다.

삼성디스플레이는 LCD 치킨게임으로 약화된 대형 사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2022년 LCD 생산을 중단하고 자발광 기술인 QD-OLED로 기술 패러다임을 완전히 전환했다. LG디스플레이 역시 지난해 12월 TV용 LCD 패널 국내 생산을 종료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은 비록 중국에 디스플레이 세계 1위 자리를 넘겨줬지만 프리미엄 기술인 OLED 분야에서는 지난해 세계 시장 71%(중국 28%)를 기록, 여전히 압도적인 1위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최근 중국은 중앙·지방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OLED 분야에서도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과 기술 격차도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 한·중에 밀린 일본 뒤늦게 투자했지만 좌절

삼성이 2007년 10월 10일 천안사업장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9월부터 천안의 A1라인에서 세계 최초로 OLED를 양산하고 있다고 발표하던 순간 가장 놀란 이들은 디스플레이 전통 강호 일본이었다.

소니, 엡손, 산요 등 일본의 내로라하는 업체들도 일찌감치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OLED'를 점 찍고 연구개발에 몰두했지만 기술 장벽과 투자비용이라는 장애물에 부딪혀 상용화를 포기한 터라 일본이 받은 충격은 더 컸다.

한국‧중국에 뒤쳐진 OLED 경쟁력을 단숨에 뒤집고자 2015년 일본은 소니, 파나소닉, 재팬디스플레이(JDI) 등 일본 기업과 민관공통투자펀드(INCJ)가 합작한 OLED 전문기업 'JOLED'를 설립했다.

JOLED는 한국 업체들의 기술보다 효율 면에서 뛰어난 '잉크젯프린팅' 기술을 내세우며 승부수를 던졌지만, 일본 유일의 OLED 생산업체이자 '일본 디스플레이 산업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불렸던 JOLED가 결국 문을 닫게 됐다.

JOLED는 삼성과 LG가 유기물을 증착해 OLED 패널을 제조하는 방식과 달리 잉크젯 프린팅 방식을 시도했다. 잉크젯 프린팅 방식은 일반적인 제조 방식으로는 생산 속도가 빠르고, 재료 사용량도 적어 효율적인 기술이지만 JOLED는 기술 완성도와 품질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적자 난에 시달렸다.

JOLED의 파산 신청은 디스플레이 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문가들은 JOLED의 실패 원인을 일본 디스플레이 업계가 기술 및 경영전략에서 모두 실기한 결과로 분석하고 있다. 

일본 닛케이아시아는 JOLED의 파산은 쇠락한 일본 디스플레이 산업의 현주소를 그대로 대변한다고 보도했다. 

일본이 LCD 산업에서 삼성‧LG디스플레이에 압도당한 뒤 번번이 투자 시기를 놓쳐왔고 2015년 이후 중소형 OLED 투자 국면에서도 조단위 투자금을 감당하지 못해 제대로 양산 라인을 꾸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거 LCD 시장의 최강자였던 일본은 JOLED의 파산으로 회생의 기회를 또 잃었다. 기술과 가격 경쟁력에서 한국과 중국에 뒤처지면서 투자 동력을 상실하고 결국 OLED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일본의 2021년 시장 점유율은 1.9%로 사실상 시장 퇴출 수준이다.


◇ 주도권 이동 빠른 디스플레이…선제 투자만이 살 길

일본 디스플레이 산업의 패착은 두 번의 투자 실기에 있다.

대형 LCD 라인 투자 시기를 놓치면서 평판 디스플레이 시장의 호황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고 초기 OLED 상용화 과정에서 적극적인 투자를 포기하면서,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도 OLED 산업에서 경쟁력을 상실했다. 

최근 JOLED의 파산 신청은 이미 경쟁력을 잃은 상태에서 회생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전문가들은 다른 산업과 비교해 디스플레이 산업의 주도권 변화는 훨씬 역동적이어서 초기 미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한국과 대만으로 넘어갔던 주도권이 가까운 미래에 중국으로 이전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업계에서는 삼성디스플레이의 이번 8.6세대 IT용 OLED 투자는 "다자경쟁에서 양강구도로 변화하면서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경쟁구도에서 선제적 투자를 통해 시장 지배력을 지키기 위한 초강수"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삼성은 디스플레이 사업 초기부터 과감한 투자로 사업의 승기를 잡아왔다.

40인치 대형 LCD TV 시장이 열릴 것으로 확신했던 삼성은 2003년 8월 경쟁사와 달리 6세대를 건너뛰고 바로 7세대 LCD 투자를 결정했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그 결과 전체 LCD 시장과 달리 고전하던 TV용 LCD 시장에서 2005년 20%를 기록하며 샤프(18%)를 제치고 2위에 올랐다. 2008년에는 LG를 꺾고 세계 1위를 차지했다.

2005년 11월 수요처도 없는 상황에서 4700억 원을 투자해 1만3800평 규모의 OLED 전용라인, A1(4.5세대) 라인 건설에 나섰던 삼성은 이후 2007년 안정적인 수율을 확보하며 세계 최초로 OLED 양산에 성공해 OLED 산업화를 주도했다.

이후 삼성디스플에이는 10조 원이 넘은 천문학적인 투자비를 들여 6세대 플렉시블 OLED 라인 'A3'을 구축해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생산량을 큰 폭으로 확대하며 스마트폰의 기준을 'LCD'에서 'OLED'로 바꿔놓았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이제 8.6세대 IT용 OLED 투자를 통해 LCD가 장악하고 있는 태블릿, 노트북 시장의 중심 기술을 OLED로 빠르게 전환, 한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OLED 기술로 중국으로 넘어간 한국 디스플레이의 영토를 탈환할 계획이다.

삼성디스플레이 관계자는 "신규 라인이 완성되는 2026년이면 IT용 OLED를 연간 천만 대 정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IT용 매출이 전체 매출의 약 20% 수준으로, 현재 대비 5배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