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靑 정무수석 비서관 “개인청구권까지 해결 아니란 동일 견해”
[미디어펜=김소정 기자]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결을 주도한 양국 협상 대표는 이 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일치된 인식을 갖고 있었던 사실이 외교문서를 통해 공개됐다.

외교부가 6일 공개한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를 보면 1991년 8월 3~4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지역 전후 보상 국제포럼’에 참석한 민충식 전 수석의 관련 발언이 수록됐다. 민 전 수석은 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 비서관이었다.  

당시 주일대사관이 정리한 민 전 수석의 포럼 참석 발언에 따르면, 그는 “1965년 소위 ‘청구권’ 협정에 대해 한일 양국 정부간 및 국민간 인식의 차가 크다”면서 “또한 개인의 청구권이 정부간에 해결될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고 했다.
 
   
▲ 1991년 8월 주일대사관이 작성한 문서. 2023.4.6./외교부 제공

그는 이어 “당시 교섭대표간에도 동 협정은 정부간 해결을 의미하며, 개인의 권리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암묵적인 인식의 일치가 있었다. 당시 시이나 외상도 동일한 견해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국제법이 바뀌고 있는 바, 어떻게 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생각해야 할 단계라고 본다”고 말했다.  

민 전 수석의 발언을 보면 한일 간 청구권협정을 체결할 당시 한국정부는 물론 일본정부측에서도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까지 완전히 소멸됐다는 인식을 갖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외교문서엔 ‘아시아·태평양지역 전후 보상 국제포럼’에서 백충현 서울대 법대 교수와 타나카히로시 일본측 교수의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개인권리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발언도 있다.
  
   
▲ 1991년 8월 주일대사관이 작성한 문서. 2023.4.6./외교부 제공

백 교수는 “65년 협정은 당시 국내의 미묘하고도 급박한 상황 속에서 체결된 바, 일응 법적·외교적 형식을 갖추기는 하였으나 36년간의 식민지배에 대한 역사적 청산이 최종적이고 완전히 해결되었느냐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인식이 일치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타나카 교수는 “일본정부는 1956년 일·소 공동선언 시 배상·보상이 포기된 것이지 개인의 권리는 동 선언에 의해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입장”이라며 “일본기업 또한 과거 행위에 대해 사죄를 하면서도 정부간에 종결되었으므로 보상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해당 포럼에선 일본정부가 식민지배를 한 아시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전후 처리를 하면서 국적에 따라 차별한 문제, 정부간 협정이 있었다고 기업의 보상책임까지 해결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 1991년 8월 주일대사관이 작성한 문서. 2023.4.6./외교부 제공

이는 지난달 6일 윤석열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정부 해법을 발표하고, 지난달 16일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한국 및 일본 정부가 주장해온 내용과 차이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국무회의에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은 한국정부가 개인의 청구권을 일괄 대리해 일본의 지원금을 수령한다고 돼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이후 수십년이 흘렀어도 한국과 일본 모두 정부간 협정 체결이 개인의 피해배상 청구권까지 해결할 수 있을지 여부에 문제의식이 강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 시대와 같은 극우세력을 등에 업은 통치 시절을 거치면서 입장이 뒤바뀐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외교부는 이번에 생산 후 30년이 경과한 1992년도 문서 등 외교문서 총 2361권(약 36만여 쪽)을 국민에게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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