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과 성찰 없이 6월을 그대로 보낼 순 없다. 신문-종편-대형포털-좌파언론이 합작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과잉보도’가 사회혼란과 정부 흔들기로 이어지는 한 달을 우리는 더없이 갑갑한 마음으로 지켜봤기 때문이다. 미디어펜은 ‘선동언론, 이대로 좋은가?’시리즈를 상-중-하로 나눠 실어왔는데, 오늘 하 편이 던지는 질문은 이렇다. 한국사회는 각 부분이 모두 멀쩡한데, 언론만이 유독 문제일까? 그래서 언론만 바로 잡으면 세상은 만사 오케이일까? 그건 절반만 맞는 얘기다. 언론이 사회를 혼탁하게 만드는 요인이지만, 지난 20여 년 헌법적 가치를 제대로 수호하지 못해온 한국사회의 구조적 한계가 선동언론을 키웠다는 점도 규명돼야 한다. 오늘은 체제수호 세력이 없는 한국사회의 비극적 측면과 선동언론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려 한다. <편집자 주> |
-선동언론, 이대로 좋은가?’시리즈 <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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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우석 문화평론가 |
언론 생태계는 김대중-노무현 좌파정부 등장 직후 당파적 저널리즘으로 송두리째 바뀌었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의 불편부당(不偏不黨)을 앞세워 자기들이 정론지(正論紙)라고 포장하기를 즐기지만, 실제론 진영논리의 목소리만을 경쟁적으로 내지르는 중이다.
이런 변화를 이념분화에 따른 흐름이라고 하는 건 본질을 꿰뚫지 못하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보라. 현실적으로 한국사회의 매일 매일은 너무도 정신 사납다. 공론(公論)을 위한 멍석으로서의 언론은 병든 지 오래다. 그리고 이런 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해 좌파정부가 얼마나 공 들이고, 집요한 장난을 쳤는지를 생각해보라. 이때 훈련을 받고 성장한 기자들이 지금 득시글거린다.
이렇게 분화했던 매체들이 약속이나 한 듯 집단적으로 타락한 게 바로 선동언론이다. 그래서 ‘전매체의 선동언론화’인데, 선동언론이란 호들갑을 떠는 경마장 식 보도행태의 신문-방송을 비꼬는 한가한 말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심각한데, 정의컨대 이러하다.
선동언론이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무시한 운동권 식 언론, 반(反)체체적 언론행위를 말하고, 그걸 통해 사회불안과 정치 위기를 증폭시키는 기형적 저널리즘을 총칭한다. 놀랍게도 그런 성격은 조중동(조선-중앙-동아)와 한경오(한겨레-경향-오마이뉴스)가 오십보백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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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4일 방영된 KBS-2TV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코너는 ‘무늬만 공영방송’임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메르스를 주제로 정부를 때리고, 반국가를 외치는 건 방송 아닌 선동이고, 풍자가 아닌 탈선이다. /사진=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 영상캡처 |
한국사회, 지난 20여년 헌법가치 수호에 실패해왔다
팩트 확인 정신이 부족하고 특정 도그마에 사로 잡힌 것이 특징이라고 지난 번 글에서 나는 밝혔다. 그래서 각종 사건 사고 때마다 대통령-총리 등 헌법기관 흔들기, 국정원 무력화, 군(軍)이나 경찰 등 국가기관 불신을 조성하는 뚜렷한 성향을 지니고 있다. 친중 친북 반일 반미 정서 때문에 반(反)대한민국-반 국가로 치닫기 일쑤다.
그래서 ‘언론 망국(亡國)’이자, 시민의식을 황폐화시키는 주범인데, 오늘 던지는 질문은 이렇다. 한국사회는 각 부분이 모두 멀쩡한데, 언론만이 문제인가? 그건 아니다. 언론의 정상화란 지난 20여 년 헌법적 가치에서 멀어져왔던 한국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한‘비정상의 정상화’노력 없이는 결코 쉽지 않다.
그게 포인트다. 즉 선동언론은 체제를 수호하려는 세력이 없어진 위기의 한국사회 구조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큰 덩어리의 사안이다. 일테면 웰빙주의 이념을 섬길 뿐이 허깨비 집권여당 새누리와, 자기의 족보를 잊어버린 채 급진화된 제1야당 새민련을 포함한 한국사회의 어지러운 구조와 완전 닮은꼴이다.
때문에 한국사회의 정상화 없이 언론 정상화는 없다는 입체적 인식도 필요한 시점인데, 그걸 새삼 보여주는 게 이념집단에서 한참 먼 새누리당이다. 그들이 공유하는 집단정서란 출세주의 혹은 웰빙의 철학이다.
그래서 그들이 지배해온 여의도정치에선 대한민국 선진화라는 목표 그리고 북한 핵 제거를 통한 한반도 평화 등의 진짜 이슈는 언제가 가려져왔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고 하는 헌법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나선 것은 ‘의병’쪽이다. 아스팔트 우파를 포함한 우파 지식인 집단은 요즘 새누리를 향해 심각하게 묻고 있다.
“이념의 시대가 갔으니 그에 맞선 이념도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당신들이야말로 철학의 빈곤을 상징한다. 장차 벌어질 한국정치의 창조적 파괴 과정에서 당신들은 현실정치에서 바로 탈락될 대상에 불과하다.”
웰빙을 꿈꿔온 새누리당, 박 대통령으로부터 제대로 터졌다
이런 지적은 최근 국회법 거부권을 행사하며 박근혜 대통령이 지적했던 이른바‘배신의 정치’와 일맥상통한다. 아니 그보다 훨씬 포괄적인 문제의식이다. 당연히 새누리당의 구성원들은 종북좌파의 전략과 본질에 대한 인식이 안이하기 짝이 없다. 간단하게 야당의 선동과 억지에 끌려 다니는 것도 그런 배경이다.
헌법정신과 애국심으로 무장된 이념결사체가 아니라 마치 일반 회사나, 사교(社交)를 위한 단체 같이 행동하다가 대통령으로부터 한 방 제대로 얻어터진 것이 이번 국회법 거부 파동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이 거품정당이 그럼 이번 일을 계기로 바로 소멸할 것인가? 그건 아니다. 선동언론 그리고 허깨비당 새민련과 기이한 공생을 하며 오래 살아남는 뜻밖의 생활력을 보일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 앞에 꼬리를 내리기 보다는 외려 대들면서 끝내 웰빙당으로 분화해 나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새누리가 그렇다면 새민련은 어떠한가? 그들도 한심하기 그지 없다. 아직도 철지난 계급투쟁적 가치관을 가진 세력이 주도권을 잡고 반(反)국가적, 반 헌법적 행태를 보이면서 법치주의와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선동적 노선에 집착하고 있다. 걸핏하면 장외 투쟁을 통하여 종북 좌파 세력과도 공조한다.
북한정권의 대남 도발이나 핵개발에 대하여는 침묵하든지 비호하는 입장을 취한다. 미사일방어망 건설과 북한인권법 제정을 반대하는 것도 능사로 한다. 새누리당과 체제수호세력(대한민국 정통우파)이 갈등관계라면, 새민련과 체제수호세력은 적대관계다.
두 당은 체제수호 세력이 없어진 한국사회의 아찔한 위기상황을 정확하게 상징한다. 중요한 건 그 허술한 틈새에서 선동언론은 세력을 확장하며 눈먼 여론을 유포시키고 국민의 에너지를 파괴한다는 점이다. 어이없다. 권력에 손가락질하는 걸 비판정신이라고 여기고, 그걸 언론인의 독립성이라고 보는 철 지난 논리로 그들은 오래 전부터 무장했다.
그게 1970년대 언론자유운동으로 번져갔고, 1987년 체제 이후 지금가지 언론노조운동으로 치달았다. 지금도 언론사는 권력 감시와 자본 견제를 무슨 금과옥조처럼 되새기며 386세대 식의 정의를 부르짖고, 사회적 약자를 편들겠다고 설친다. 그게 얼마 전 검토한대로 고약한 풍토의 KBS였고, 대통령과 청와대까지 감히 겁박하는 국민일보 등의 탈선으로 이어진다.
3회에 걸친 시리즈를 마무리한 지금 선동언론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언론이 사회를 혼탁하게 만드는 요인이지만, 지난 20여 년 헌법적 가치를 제대로 수호하지 못해온 한국사회의 구조적 한계가 선동언론을 키웠다. 그게 사실이라면 선동언론은 실로 다대한 노력과 정화작업 속에서 치유될 수 있는 병이란 뜻이다. 그만큼 언론망국의 가능성은 여전히 상존하고 있고, 경계대상이라는 뜻이다. /조우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