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준희 기자]“가끔 내 손이 쓸모없게 느껴지는 날, 나는 원고를 쓰기도 하고 청소를 하기도 한다. 걸레질하고 설거지하면서 나의 쓸모를 찾는다. 가족이 먹을 음식을 하면서도 내 손을 쓸모 있게 쓴다. 그러다 전화를 걸기도 한다. 나의 쓸모를 기다리는 누군가에게. 보고 싶었어, 잘 있는 거야, 라고 묻는다. 맞다. 외로우니까, 사랑한다. 그렇다. 신은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다. 사랑받고, 사랑하도록.” (본문 149쪽 중에서)
여러 방송 프로그램과 저서를 통해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를 전달해온 방송작가 정화영이 신작 에세이 ‘그런 날, 어떤 하루’(사유와 공감 출판)로 돌아왔다.
책은 ‘바보 같은 날’, ‘그만두고 싶은 날’, ‘오지랖이 터지는 날’ 등과 같이 어떠한 ‘날’들로 구성됐다. 흘러가는 일상에서 심장을 ‘쿵’ 내려앉게 만드는 ‘날’들에 관한 에피소드와 단상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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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작가 정화영 씨가 쓴 에세이 '그런 날, 어떤 하루'가 독자들을 만난다./사진=사유와 공감 |
저자는 거울에 비친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마다 담담히 내면을 살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서로를 돕고 지킬 수 있기에 기적이 될 수 있다’는 저자의 신념이 담긴 문장들은 책이 덮인 후에도 독자의 곁에 머무르며 잔잔한 위안을 줄 것이다.
‘그런 날, 어떤 하루’에서 직장인으로서 정체성을 떼어놓고는 이야기하기 힘들다. 직장에서 갈등이나 고민으로부터 촉발된 ‘어느 날’이 지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친구에게 ‘너는 왜 먼저 전화하지 않느냐’며 타박을 받은 뒤 어쩌다 전화를 힘들어하게 됐는지 되짚어보는 부분이 그렇다.
그는 업무 특성상 과도한 통화량을 소화해내야 했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는 휴가를 낸 날에도 업무 전화를 걸고 또 받아야 하는 게 그의 일이었다. 전화에서 벗어날 방법은 일을 그만두는 것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업무 외에는 전화하는 것을 피하게 됐고 먼저 전화를 거는 일이 힘들어진 것이다.
이외에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삭제하게 된 계기나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된 사연, 늦은 밤 하염없이 시간 여행을 하게 된 이유 등에서도 볼 수 있는 저자의 ‘현실 직장인’ 면모는 현시대의 초상을 선명하게 그려낸다.
삶을 꾸려나가는 일의 고단함을 알고 있는 독자라면 자신의 것과 닮아있는 그의 이야기 속에서 깊은 공감대를 형성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너도나도 다를 것 없는 이 현실에 씁쓸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자신의 초라하고 주눅 든 내면을 담담히 살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저자의 태도를 발견하고 그가 다짐하듯 새겨둔 문장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매회 서두에 배치된 짧은 글들이 유난히 긴 여운을 남기고 곱씹을수록 위안을 주는 것은 바로 이런 까닭이다.
이 책이 단지 삶의 고난에 대한 서술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줄곧 위로와 공감을 전하기 위한 작품 활동을 해왔다. ‘그런 날, 어떤 하루’ 역시 그러한 주제 의식의 연장선상에 놓인 작품이다.
화려하거나 거창하지는 않지만 사소하면서도 유의미한 변화로의 추동, 앞서 언급한 바 있는 단정한 자기 돌봄의 의미가 독자에게 닿을 때 비로소 이 책은 완성될 것이다.
저자는 방송작가로 여러 방송국에서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활동했다. 2018년과 2020년 휴스턴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백금상을 상했다. 저서로는 ‘서툴지만, 결국엔 위로’, ‘아이티 나의 민들레가 되어줘’, ‘제주에 살어리랏다(공저)’ 등이 있다.
[미디어펜=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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