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성동규 기자]"감리사들의 권한을 강화하면 뭐합니까. 여전히 계약을 시공사·시행사 등 발주자와 맺고 있으니 과거의 '갑을관계'는 전혀 변한 게 없습니다. 이대로 라면 또 다른 현장에서 어딘가가 무너져 내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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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한 공사현장 전경./사진=김상문 기자 |
8일 서울 한 아파트 공사현장의 감리사는 이렇게 털어놨다.
인천 검단신도시에서 지난달 29일 시공 중인 A아파트 지하주차장 지붕이 붕괴된 데 이어 지난 6일 미추홀구 B아파트 옹벽이 입주 3일 만에 무너졌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정확한 사고원인은 조금 더 지켜봐야 알 수 있겠지만 사고가 잇따르자 감리 등 관리 감독 기능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실제 현장에서는 제도적인 한계에 부딪혀 감리사들이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021년 6월 발생한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철거 건물 붕괴 참사 당시에도 감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3월 시공품질과 처벌 강화, 감리 내실화를 골자로 하는 ‘부실시공 근절 방안’을 내놨다.
해당 방안에 따라 감리자의 공사중지 명령에 손해배상 면책 규정을 도입하고 부실 감리 시 감리비 지급을 보류하도록 했다. 공공기관인 국토안전관리원이 민간공사까지 감리 실태를 감독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했다.
같은 해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도 관련 문제성을 인지하고 감리를 포함한 ‘건설 주체의 안전 확보 책무 강화’를 국정과제에 포함시켰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후보자 시절 엄격한 감리가 필요하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 이후 1년여의 기간이 흘렀으나 달라진 건 별로 없어 보인다. 당국의 대처는 본질을 외면한 채 변죽만 울리고 있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빗나간 제도로 인해 감리 등 관리 감독 기능 사실상 무력화되고 발주자들이 자율적으로 높은 시공품질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비판이 터져 나온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감리 관련 법규는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강화돼 있다"면서도 "감리단은 현장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재시공 명령을 하거나 극단적으로 공사를 중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문제는 이런 조치가 실제로 이뤄진 것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사실상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없다. 발주자가 돈줄을 죄고 있으니 시공상의 문제가 있어도 감리단은 눈치만 볼 뿐"이라며 "종속관계를 확실하게 끊지 않는 한 부실시공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궤를 같이했다. 그는 "현행 제도상 아파트는 건축주를 대신해 지자체가 감리자를 선정하는 '허가권자 지정 감리'로 되어 있는데 정작 계약은 발주자와 맺는 이중구조"라며 "이런 탓에 감리가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고 꼬집었다.
[미디어펜=성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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