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태동·발전 함께 해 온 한류전사이자 뿌리 깊은 종가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얼마 전 한류기획단이란 민관 합동조직 출범식에서 이런 공방이 있었다 한다.
“한류의 최대 수혜자는 아모레퍼시픽이에요. 서경배 회장님 그렇지 않나요?”
돌아오는 말,
“그렇지 않습니다. 화장품 연구개발에 전력투구해온 노력의 결실입니다”
썰렁하고 멋쩍기도 한 이 대화를 접하면서 문득 이런 한류 논공행상 속내를 파헤쳐 봐야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도 아니지만 이윽고 한류와 아모레퍼시픽 상관관계를 논해야 할 때가 왔나 보다. 진실게임부터 해보자.

아모레퍼시픽이 한류 팬덤으로부터 큰 덕을 본 건 사실이다. 명동 롯데면세점이 연 매출 1조원을 돌파하고 롯데백화점 본점매출액을 넘어선 뒷배에는 중화권 방문객 유커들이 있었다. 한국을 찾고 면세점을 누비게 만든 흡인력을 우리는 K 뷰티라 칭한다. 세계 최고 로레알같은 서양 브랜드들이 도저히 커버할 수 없었던 동양인들의 섬세한 미모 수요를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등 한국 화장품들이 충당했다. 언론도 K POP, K 드라마에 맞춰 K 뷰티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 K 뷰티라는 용어는 당연히 한류 후광효과를 의식한 작명이다.

베트남에서 LG 드봉 판매가 대박을 쳤던 건 김남주 효과였고 동아시아 전역에서 아모레퍼시픽 인기가 치솟은 것은 한류 킬러콘텐츠 <대장금> 이영애 덕택이라 본다. 중남미에서 한류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어마어마한 충성도를 지키고 있는 여성 팬들이 슈퍼스타 이민호를 떠올리며 토니몰리 비비크림을 최고의 감동 선물로 여긴다는 것도 모두 한류 역작이라 풀이한다. 그 뿐이랴, 장동건 최지우 장근석이나 소녀시대 빅뱅 씨스타 등등 한류스타들이 닦아놓은 주작대로가 먼저 열린 그 위에 삼성, LG의 디지털한류도 가능했고 K 뷰티도 출현할 수 있었다고들 말한다.

상식처럼 의심 한 푼 없이 품어온 한류 선봉론이라 할 만하다. 이는 곧장 한류 지분이나 한류 은혜라는 오지랖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삼성 LG나 아모레퍼시픽에 자꾸만 반대급부를 독촉하는 행태다. 정부도 때로는 점잖지 못하게 한류 재산 싸움에 가세하곤 한다. 많이 받았으니 그 만큼 더 내놓으라는 은근한 압박도 눈에 자주 띈다. 서경배회장만 해도 거의 본업에 전념하기 힘들 정도로 불려 다니고 비자발적 협찬과 투자, 기부를 종용받고 있는 듯하다. 한류기획단도 그렇고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와 같은 국가시책 행사 자리에도 어김없이 출동해 눈도장을 찍고 있다.

   
▲ 박근혜 대통령과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그룹 회장 등이 26일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아모레퍼시픽이 지원하는 제주 바이탈 프로젝트에 대해 대화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그러니 표면적으로는 한류선봉론, 국가혜택론이 맞는다고 모두들 수긍하는 듯 보인다. 그렇지만 옥석은 가려야 하는 법. ‘한류 덕이 아니라고요’라고 받아친 서경배회장 항변에 담긴 담백한 주장을 귀 기울여야 할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아모레퍼시픽이라는 기업은 한류 전사부터 서식해왔다. 한류 이전에 이미 토대를 닦고 단초를 제공한 기업의 역사가 있었다. 가장 독보적인 한류 선구자는 아모레퍼시픽 전사인 태평양의 차문화 사업이었다. 1970년대 중반 창업자 서성환회장이 그야말로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설록차 사업을 감행했던 그 때는 아무도 먼 훗날 2015년 아모레퍼시픽을 성공을 그려보지 못했을 터이다.

국내 시가총액은 24조4649억 원(올 상반기말 기준)으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한국전력에 이어 당당하게 5위에 올라 서 있다. 제일모직, SK텔레콤, 네이버 같은 강자들을 앞질러 버렸다. 개인 주식부자순위 에서도 1위 이건희회장 11조9068억 원에 육박한 11조3781억 원으로 서경배회장이 2위를 차지해 이재용, 최태원, 정몽구 이름들을 따돌렸다. 지금 당장에는 메르스 불황으로 고전하고 있지만 이러한 아모레퍼시픽의 대약진은 앞으로 미래에도 상당 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때문에 최근 10년, 5년 상황만 보고 아모레퍼시픽을 신데렐라로 분칠하는 분위기가 고조되었었고 덩달아 한류 논공행상 같은 불온한 간섭이 쑥 들어왔다는 평가다. 창업자 장원 서성환회장 설록차 사업부터 본격화된 문화마케팅 개척, 한국 전승문화 계승, 국학 비즈니스 창안 등을 다시금 조명해봐야 할 적절한 시점이 되었다는 얘기다.

먼저 문화마케팅을 보면 태평양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문화가 흐르는 광고를 개시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기업이다. 1955년 업계 내에서 최초로 신문광고를 시작했고 최초의 컬러 잡지 광고(1967년), 티저 광고(teaser : 궁금증을 유발하는 방식, 1977), 전면 컬러 신문관고(1977), 컬러 TV광고(1981) 등을 선구적으로 도입했다.
 
   
 
1970년대부터는 그 유명한 전속 광고 모델 발굴을 통해 외판 화장품 판매 성공 신화를 만들어나갔다. 금보라, 황신혜, 옥소리, 이영애, 이나영 등 신인을 새 화장품 모델로 발탁해 주로 새 브랜드 참신한 이미지를 창출하는 놀라운 솜씨를 보여 왔다. 마몽드 신인 모델 이영애는 태평양 광고 출연 이후 카피였던 ‘산소 같은 여자’ 이미지로 승승장구하였다.

그 즈음 이나영을 명동 길거리 캐스팅해서 일약 스타로 만든 일화는 아직도 유명하다. ‘향장’이라는 사외보 잡지도 만들어 광고 효과를 극대화했고 라네즈는 단일 브랜드 하나로 매해 1천억 원을 돌파했었고 이니스프리는 자연의 휴식이라는 컨셉트로 문화마케팅을 집중해 출시 2년만에 2백억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런 노력으로 태평양은 1997년부터 수입 화장품 아성을 깨고 국내시장 1위로 발돋움했다.

한국 전승문화 계승과 국학 비즈니스 창안이라는 측면에서는 가히 ‘아모레퍼시픽이 먼저 존재하고 그 다음 한류가 나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고 귀중한 내력이 있었다. 기업 연혁 홈페이지를 보면 “우리나라 차문화가 쇠퇴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불모지를 다원으로 개간하여 전통녹차의 대중화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한다.

이 때 뿌린 씨앗이 오늘날 오설록 브랜드가 되어 전통 녹차와 녹차 음료, 아이스크림과 케이크, 녹차 클렌징과 비누 등 녹차 화장품들과 같은 한류 열매를 맺게 되었다는 스토리다. 한류라는 말이 나오기 20년도 더 이전에 어느 화장품 회사가 손댄 녹차 문화 사업은 정부도 대학도 인간문화재 장인도 결코 꿈꿔보지도 못했던 전승문화이자 전통지식 산업이었다.

게다가 장원 서성환회장은 개성상인의 후예로서 국학대학을 다녔고 1970년대 국학을 대중화한 명품 미디어 월간 <뿌리깊은나무>가 알린 우리 문화 기사를 탐독한 애독자였다. 그가 품었던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창조하겠다’는 사상이 이어져 오설록 브랜드같이 뿌리 깊고 글로벌화한 국학비즈니스로 꽃피울 수 있었다. 아들 서경배회장이 프랑스를 공략한 명품 향수 로리타 렘피카(1997~)도 마침 한류가 중국에서 태동할 무렵에 맞춰 글로벌 시장에 들어간 자동차, 철강, 전자 이외 제 3의 대안 수출품이었다.

이렇게 보면 더 이상 한류 지분이나 한류 혜택 운운할 것조차 없다. 살펴본 대로 아모레퍼시픽은 한류 전사부터 한류 태동, 한류 발전이라는 전 과정을 함께 해온 주역이지 않은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린 신데렐라라고 불러 대는 휩쓸림이 너무 커진다면 정작 아모레퍼시픽 같은 한류 종가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정부와 언론, 한류 선봉장 문화콘텐츠 종사자들은 조금 더 자제하면 좋겠다. 적어도 10년 전 시점까지는 우리 사회가 아모레퍼시픽의 지난하고 외로운 문화 지킴이 과업에 별로 보탬이 된 적이 없었으니까.

서로를 잘 이해해야만 부질없는 한류 논공행상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다. 뭔가 반대급부를 요구하며 추근거리고 지분대는 한류 장사도 그만 둬야 옳다.

물론 아모레퍼시픽도 한류 역사의 일부에 불과하다. 한류라는 옥동자도 It Takes A Village(온 동네가 필요하다)라는 말처럼 수많은 숨은 공신들이 희생하고 헌신하고 노력해온 결실이다. 아모레퍼시픽도 늘 해왔지만 이제 더 많은 애정을 갖고 <뿌리깊은나무>와 같은 위대한 미디어로부터 받았던 문화콘텐츠 빚을 갚아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류기획단 같은 이벤트 말고 출판, 잡지, 교육, 예술, 학술 치열한 현장에 태평양 문화마케팅과 전승문화·지식사업, 국학비즈니스라는 상큼한 단비가 듬뿍 내렸으면 좋겠다. 진정한 미래 한류 백년대계를 위해서.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