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보라 기자]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를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이 14년 만에 도입 초읽기에 들어가며 보험업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의료계 반대 등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상황이다. 

22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는 최근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는 실손보험 청구 절차를 전문 중개기관에 위탁해 청구 과정을 전산화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개정안은 향후 정무위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를 차례로 거쳐 본회의에 상정된다.

   
▲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를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이 14년 만에 도입 초읽기에 들어가며 보험업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사진=유튜브 캡처


실손보험은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급여 본인부담금과 비급여 의료비 등의 비용을 보장하는 민영의료보험 상품이다. 전체 국민의 75%인 3900만명 이상이 가입하면서 제2의 건강보험으로까지 불린다.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법안은 계약자가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 전송을 요청하면 의료기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도록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이다.

현재는 실손보험금 청구 시 가입자가 직접 의료기관에 방문해 진료비 영수증, 세부 내역서 등 종이 서류를 발급받아 보험사에 제출해야 한다. 개별적 불편함을 넘어 사회적 비용 낭비 문제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이처럼 번거로운 절차 때문에 실손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2021년 손해보험의 실손보험 청구량 총 7944만4000건 가운데 데이터 전송에 의한 전산 청구는 9만1000건으로 0.1%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종이 서류 전달, 서류 촬영 후 전송 등 ‘아날로그’ 청구에 해당한다.

같은해 금융소비자연맹 등 소비자단체가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절반에 가까운 47.2%가 ‘실손보험금 청구를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미청구 이유로는 △병원 방문 시간 부족(46.6%·복수응답) △번거로운 증빙서류 떼기 및 전송(23.5%) 등 절차상의 불편함을 꼽았다.

금융당국은 실손보험 가입자가 불편한 절차 때문에 청구하지 않은 실손보험금이 연간 2000억~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대한 논의는 지난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제도 개선을 권고하면서 본격화됐다. 이후 꾸준히 입법 시도가 있었으나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로 번번이 처리가 무산됐다. 의료계는 환자의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 병원 부담 가중 등을 이유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반대하고 있다.

보험사와 환자가 실손보험을 계약하는데 의료기관이 개입하지 않았는데 제3자에 해당하는 의료기관에게 의무를 강제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또 계약 당사자가 아닌 의료기관 등이 환자의 개인정보를 전송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정보 유출 시 책임 소재도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16일 대한개원의협의회와 산하 23개 개원의사회는 ‘실손 간소화법 추진 규탄 긴급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장은 “재벌 보험사의 횡포”라며 실손 간소화법 추진을 비판했다.

반면 보험업계는 비용 절감과 더불어 가입자의 편의와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도입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의료계는 보험금 청구가 전산화되면 비급여 항목 진료비가 노출돼 진료수가 인하 요구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데 무엇보다 환자 입장에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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