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미디어시장만큼 급변하는 분야는 드물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누가 흐름을 간파해 기회로 연결시키느냐가 초유의 관심사로 자리 잡았다.
'공익'이라는 단어는 이러한 미디어에 대한 '가장 흔한 수식어'다. 으레 미디어는 공익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명제가 상식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이 '공익'을 미디어산업에 낀 '거품'으로 바라보며 "걷어내자"고 주장하는 칼럼을 자유경제원에 발표해 시선을 끌었다. 황 교수는 "지금 한국 방송영역에서 공익 이념을 보면, 마치 중국의 유교가 한국에 들어와 이념은 온 데 간 데 없고 제사형식만 남아 정파간 갈등만 야기했던 것이 연상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미디어산업이 공익의 이름 안에서 '정쟁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참신한 문제의식이다.
아래는 황근 교수의 칼럼 전문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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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근 선문대 교수 |
지금 우리 미디어 산업은 심각한 동맥경화 상태다. 디지털 인터넷 시대에 들어서면서 매체는 급격히 늘어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해야할 상·하류 시장들은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매체에도 불구하고 전체 수용자 숫자나 이들이 지불하고자 하는 비용은 거기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급증하는 매체들에게 공급할 수 있는 콘텐츠는 여전히 크게 부족한 상태라는 점이다. 물론 미디어 콘텐츠 특성상 단기간에 늘어날 가능성도 별로 없다. 정부가 한류니 창조니 하는 거창한 구호들을 내걸고 마치 미래 한국경제의 중심 먹거리가 될 것처럼 콘텐츠 생산을 독려하고 있지만, 이게 정부가 밀어붙인다고 졸지에 확 늘어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지금 대한민국의 미디어업계는 미디어 특히 방송 콘텐츠를 주도하고 있는 지상파방송 프로그램들을 공급받기 위한 갈등이 매우 뜨겁다. 이미 오래된 지상파방송 동시재송신 문제를 넘어 최근에는 콘텐츠 대가를 놓고 유료방송업계와 지상파방송 간에 사활을 건 전면전이 벌어지고 있다.
턱없이 엄청난 사용료 인상을 요구하는 지상파방송과 오랜 기간 공짜 사업에 익숙해져 온 유료방송 플랫폼사업자들 간의 갈등은 쉽게 해결되기 어려울 것 같다. 급기야 최근에는 협상이 결렬되면서 모바일 IPTV의 지상파 VOD 콘텐츠 제공이 중단되었다.
우리 정부가 방송 콘텐츠 활성화 정책을 추진한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등장하기 시작된 방송 산업 육성 슬로건은 20년 넘게 한국 방송정책의 한 축을 차지해 왔다. 특히 새로운 매체들을 도입할 때마다 정부는 거창한 방송영상산업 활성화 논리들을 제기하였고 또 기대감으로 포장해왔다.
1990년 SBS 출범을 시작으로 지역민방, 케이블TV, 위성방송, DMB 그리고 IPTV에 이르기까지 항상 똑같은 육성방안들이 반복되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방송시장에서는 여전히 콘텐츠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이고, 쓸 만한 콘텐츠들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때문에 솔직히 어떤 방송사업자들도 또 시청자들도 이제 정부의 콘텐츠 활성화정책을 믿지도 기대하지도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처럼 '흘러간 옛 노래’ 같은 콘텐츠 활성화 정책은 매 정권 때마다 다시 나오고 있다. 마치 'oldies but goodies’ 같다. 굳이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앞에 붙어있는 '거룩한 접두사 즉, 슬로건’들이다. 물론 '전가의 보도’처럼 빠지지 않는 '공익성’ '시청자 주권’ '다양성’ 같은 슬로건들은 여전히 위력적이다.
효과가 위력적이라는 말이 아니라 정책을 추진하는 동력이 위력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최근에는 '창조’니 '한류’니 하는 파생된 슬로건들까지 내걸고 정부는 콘텐츠 육성정책을 추진하고 또 사업자들은 지원해달라고 아우성이다.
실제로 지상파방송사들은 이러한 추상적 슬로건들을 내걸고 수신료인상, 광고총량제, 중간광고, 700Mhz 주파수, 다채널 플랫폼 등 숙원이었던 민원들을 모두 해결하려 하고 있다. 아니 해결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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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미디어 판에서 공익성은 이제 정치인들의 추악한 정쟁거리로 변질된 듯한 느낌이다. /사진=연합뉴스TV 캡쳐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자들이나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이 같은 추상적 슬로건을 내걸고 추진된 콘텐츠 육성정책 치고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처럼 정치적인 슬로건들을 내걸고 추진한 정책들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한마디로 이 슬로건들이 방송이 아닌 다른 정치적·사회적 목적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슬로건들은 정책 합리성을 저해하고 방송시장도 왜곡시키게 된다. 물론 미디어에 대한 정부의 개입여지도 높여 미디어의 정치적 독립성도 침해하게 되고, 결국 방송정책을 정쟁화 시키게 된다. 실제 이런 거룩한 슬로건을 내걸었던 미디어정책들이 추진되었던 시절에 미디어 정치적 독립성 문제가 더 크게 제기되고는 했다.
우선 '공익’과 같은 추상적인 구호는 내건 방송 사업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사업이라는 이유로 정부의 보호와 지원을 정당화한다. 제도적으로 독점을 부여받거나 정부의 직·간접적 지원과 혜택을 받게 된다. 방송영역에서 오랜 기간 위력을 발휘해 온 '공공독점(public monopoly)’이나 '공적 소유론’등이 활개 쳐 온 이유다.
물론 사업자들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목적을 구현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정부의 직·간접적 지원들을 끊임없이 요구하게 된다. 그 결과 방송시장에서의 경쟁을 소멸되고 보호받은 사업자들의 독과점구조가 형성되게 되는 것이다.
실제 지금 우리 방송시장에는 공익적 목적을 내걸고 정부 혹은 공공기관들이 소유하고 있거나 직간접적으로 운영하는 방송사들이 수십여 개에 이른다. 심지어 가장 상업적이고 시장적이어야 할 홈쇼핑 채널까지 '공영 홈쇼핑’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사회주의식 홈쇼핑채널 출범을 눈앞에 두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슬로건아래 독과점을 형성하고 있는 방송사들이 전체 방송시장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KBS를 비롯한 이른바 '공영적 지상파방송사’들이 유료방송시장까지 지배한 것은 이미 오래되었다.
실제 지상파방송사 계열PP들이 유료방송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고, 지상파방송 프로그램들이 없다면 유료방송 자체가 고사할 정도다. 물론 지상파방송의 경쟁력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경쟁력은 정부의 제도적 보호와 재원(특히 수신료)를 가지고 만들어진 것들이다. 즉, 공적 재원으로 확보된 지대를 상업적 방송시장으로 전이해 이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유료방송뿐 아니라 인터넷, 모바일 그리고 다채널 플랫폼까지 지배력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반대로 지상파방송 재송신대가나 VOD가격을 대폭 인상해 경쟁 사업자들의 경쟁력을 위축시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최근 통신사업자들에게 턱없는 지상파VOD대가를 요구해 서비스를 중단시키고, 자신들이 직접 운영하는 모바일 플랫폼 유료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전략에서 볼 수 있다. 이는 공공 독점 사업자들이 어떻게 전체 방송시장을 지배해가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이러한 공익 이념과 추상적 슬로건들이 새로 진입하는 후발사업자들이 아니라 기존 사업자들의 방어논리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정부가 신규 매체들을 허용할 때 이런 거창한 이념이나 목표들을 제시하였지만, 지금은 독점을 누려왔던 기존 방송사업자들이 기득권을 보전하기 위한 방어논리로 사용하고 있다.
때문에 공익이념은 한국 미디어시장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진입장벽이 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지상파방송사들이 내세우고 있는 한류 콘텐츠니 방송 공익성이니 하는 논리들은 50년 가까이 독점을 구가해왔던 지상파방송사들이 여러 정책적 요구들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사용되고 있다.
결국 이러한 방어논리로서 공익적 이념들은 미디어 정책을 정쟁거리로 만들어 버린다. 실제로 공익과 같은 추상적 이념들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혀 상반된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상반된 해석 간에 접점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1927년 미국에서 Radio Act 제정 때도 '방송 공익’ 개념을 포함시키는 것에 대해 '방송규제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물론 탄력적인 규제수단이 될 것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물론 이러한 공익이념 유용성 논쟁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더구나 디지털미디어 시대에 들어서면서 '傳家의 寶刀 식’의 공익논리는 사라지고 정책결정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통해 공익을 구현하는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처럼 방송 공익에도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도리어 미디어정책을 정쟁화 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공익논리가 이역만리 태평양 건너 한국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공익논리는 방송 문외한들이 모여 있는 국회와 정치권의 갈등으로 변질되어 방송정책을 정치논리가 지배하는 불행한 현상을 만연시키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황당한 700Mhz 주파수 논쟁을 비롯해 공영홈쇼핑 등은 이러한 방송정책의 정치화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금 미디어세계는 초음속으로 질주하고 있는 디지털 기술발달에 힘입어 하루 앞을 예상할 수 없다. 때문에 모든 나라들이 복잡해진 미디어시장을 어떻게 교통 정리할 것인가를 놓고 심각한 고민과 갈등에 빠져 있다. 특히 방송시장을 복잡하게 만드는 공익성 같은 추상적 거품들을 제거하는데 골몰하고 있다.
콘텐츠/플랫폼/네트워크를 층위별로 구분해 동일 층위 사업자들을 방송/통신 할 것 없이 동등하게 규제하자는 수평적 규제체계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쟁만이 미디어시장에서 합리적 경쟁을 촉진하고 산업적 활성화와 시청자들의 후생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논리다. 그렇지만 수평적 규제체계 도입이 쉽지 않은 이유는 '특정 사업자의 특별한 존재의 이유’가 되고 있는 공익성 같은 추상적 이념들 때문이다.
미디어시장에서 추상적이고 정치적인 '공익’이라는 거품이 제거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한국 방송영역에서 공익 이념을 보면, 마치 중국의 유교가 한국에 들어와 이념은 온 데 간 데 없고 제사형식만 남아 정파간 갈등만 야기했던 것이 연상된다.
한국 미디어 판에서 공익성은 이제 정치인들의 추악한 정쟁거리로 변질된 듯한 느낌이다. 물론 이른 정치판으로 밀어 넣은 사업자들의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태도도 문제다. 맥주거품은 적당해야지 거품만 많으면 마실게 별로 없는 법이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