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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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
방민준의 골프탐험(65)-스코어로부터의 자유
골프채를 잡은 지 10년이 넘은 C는 동반자들로부터 자주 이런 말을 들었다.
“한 3개월만 집중연습을 하면 쉽게 싱글로 들어가고 언더파 플레이도 가능할 텐데요.”
좋은 체격에 힘찬 스윙과 비거리를 갖춘 그와 라운드 해본 사람은 그가 왜 90대 스코어에 머물고 있는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잘 맞은 C의 드라이버 샷이나 아이언 샷은 프로골퍼를 방불케 할 정도인데도 점수가 고르지 않아 결국 스코어는 90대 중반에 머물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라운드를 끝낸 뒤 맥주잔을 부딪치며 털어놓는 그의 변을 들어보면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골프를 치다 보니 스코어보다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좋은 사람들과 라운드 하며 얘기를 나누고 라운드를 끝낸 뒤 클럽하우스에서 긴장을 털고 맥주잔을 부딪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고요. 저도 스코어를 줄여볼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많은 함께 라운드하신 분들이 스코어를 매달려 기분을 상하고 그 영향이 동반자에게까지 미치는 것을 자주 접하다 보니 괜히 스코어에 집착하다간 좋은 기분을 망치겠구나 싶어 그냥 내 방식대로 골프를 즐기기로 작정했어요.”
정보통신분야 사업을 하고 있는 그는 연습에 몰두할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스코어를 낮추기 위해 연습에 매달리다 보면 사업을 소홀히 해 이것도 저것도 놓치지 않을까도 걱정되었다고 한다.
사업이 비교적 성공적인 궤도를 가고 있는 것도 자기식대로 적당히 골프를 즐기며 일을 소홀히 하지 않은 탓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좋은 날씨에, 좋은 자연 환경 속에서, 좋은 사람들과 라운드 하는데 스코어 때문에 불쾌해질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물론 골프를 잘 치면 더 좋겠지만 자칫 지나치게 스코어에 집착하다 보면 스코어를 더 줄이려고 할 테고 그러면 필경 골프의 노예가 되지 않겠습니까. 골프가 좋으면 즐기면 되었지 노예가 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자기류의 골프를 고집하는 C의 일리 있는 변을 듣고 싱글 골퍼임을 과시하기 위해 스코어에 매달려 라운드 했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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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어의 스트레스를 극복할 만한 근면성과 인내심이 없다면 차라리 스코어의 그물을 찢어버리고 나름대로 골프를 즐기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 스코어로부터 자유로운 골퍼 또한 멋진 골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삽화=방민준 |
골퍼에게 낮은 스코어는 분명 추구해야 할 목표다. 골프에 부수되는 즐거움 또한 적지 않지만 골프 자체에 집중했을 때의 쾌감의 강도는 쉬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위에 만사 제쳐두고 골프광이 된 사람들이 적지 않은 이유도 이 쾌감 때문이다.
낮은 스코어는 골퍼가 추구해야 할 목표이기는 하지만 늘 즐거움만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신기록을 추구하는 골퍼는 자신도 모르게 스코어의 노예가 되어 그물 속에 갇혀 허우적거리며 또 다른 스트레스에 빠지게 된다.
스코어의 스트레스를 극복할 만한 근면성과 인내심이 없다면 차라리 스코어의 그물을 찢어버리고 나름대로 골프를 즐기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
스코어로부터 자유로운 골퍼 또한 멋진 골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스코어카드를 놓고 캐디와 실랑이를 벌이는 골퍼가 의외로 많다. 가능한 한 스코어를 낮게 기록해주면 좋아하며 멋쟁이 캐디라고 하는 칭찬하기도 한다. 트리플 보기나 더블 파를 했을 경우 스트로크 수를 제대로 적으면 공개적이든, 비공개적이든 캐디에게 압력이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캐디들은 스코어카드를 정확하게 기록하라는 특별한 주문이 없는 한 대개 더블 보기 이상을 적기를 꺼린다.
문제는 적지 않은 골퍼들이 라운드가 끝난 뒤 이처럼 상당히 조정된 엉터리 스코어를 갖고 그 날의 라운드를 평가한다는 것이다. 정확한 스코어를 외면한 채 단지 기록상으로만 좋으면 즐거워하는 모습은 참 우스꽝스럽다. 조작된 스코어가 아무리 좋아도 골프실력이 좋아질 리가 없고 아무도 실력을 인정해주지 않는데도 스코어에 매달리는 골퍼라면 차라리 골프를 포기하는 게 바람직하다.
무엇이 중요한가를 망각한 골퍼를 위한 우화가 있다.
한 기술자가 집 밖에서 벨을 고치고 있었다. 물라 나스루딘이 지나가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그게 뭐요?”
“화재경보기입니다.”
물라가 말했다.
“전에 그걸 본 적이 있는데 아무 쓸모도 없던데.”
“무슨 뜻이지요?”
“벨이 제대로 울리는데도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타고 있었단 말이요.” (이드리스 샤흐의 『삶의 사막을 가볍게 건너는 어떤 바보의 별난 지혜』중에서)
불이 났을 때 중요한 것은 벨이 아니라 불을 끄는 것이다. 골프에서도 중요한 것은 스코어카드가 아니라 좋은 플레이다. 스코어카드는 단지 플레이어의 발자취일 뿐이다.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