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2004년과 2011년 합헌 결정을 받은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가 또다시 재판대에 올랐다.
9일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 합헌 여부에 대한 공개변론을 열고 각계의 의견을 들었다.
이날 변론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권인지, 대체복무 기회를 주지 않고 형사처벌하는 것이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인지가 쟁점이었다.
종교적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김모씨 등 3명은 “병역을 면제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대체복무할 기회를 달라는 것”이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청구인 측 대리인 오두진 변호사는 "전세계에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된 젊은이의 90% 이상이 한국 감옥에 있다"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국제적 표준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주민 변호사는 "최근 현역에 필요한 자원이 남아 6천여명이 보충역으로 전환되기도 했다"며 "한해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600여명임을 고려할 때 대체복무제를 도입해도 병역자원 손실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수정 변호사는 "대만에서 대체복무제를 실시한 결과 병역회피 시도는 발생하지 않았고, 인권수준을 높였다는 국제사회 평가까지 받았다"며 "우리 국방부도 2007년 대체복무법안을 발의해 필요성을 인정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국방부안은 이듬해 백지화됐다.
참고인으로 나온 한인섭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형사 처벌은 양심의 자유를 절박하고 심각하게 해치는 것이라고 힘을 보탰다.
반면 국방부 측 대리인인 정부법무공단의 서규영 변호사는 우리나라의 특유한 안보 상황을 고려할 때 대체복무제 도입은 곤란하다는 주장을 폈다. 서 변호사는 "우리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라며 "병역 정의를 실현하려면 의무 부과가 평등하게 이뤄져야 하고, 회피하는 행위에는 강력한 제재를 가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형벌을 가하지 않으면 양심을 빙자한 병역 기피자가 급증할 것"이라며 "인간의 내면에 있는 신념을 객관적 기준으로 어떻게 가려낼 수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방부 측 참고인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도 양심적 병역거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병역 기피를 위한 수단으로 오남용 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각자의 양심결정을 존중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무제한 존중할 수는 없다며 대체복무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만큼, 이에 대한 논의는 헌재가 아닌 국회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일원·이정미 재판관은 진정한 양심적 병역기피자를 어떻게 구별해낼 수 있는지를 물었고, 김이수 재판관은 국제적으로 부끄러운 인권 현실로 지적되고 있고 병역법 개정안도 발의됐던 점을 고려하면 양심적 병역거부를 도입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현행 병역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병역 의무에 응하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고 있고, 대체복무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돼 법원에서 대부분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있다.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으면 제2국민역으로 편입돼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군에 가는 대신 교도소 생활을 하는 셈이다.
2004년 서울남부지법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처음으로 무죄를 선고했지만, 이후 대법원은 유죄를 선고했고 헌재도 앞서 두 차례 모두 합헌 결정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