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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
공은 미국법원에게 돌아가다…조현아 전 부사장의 미국 소송
공은 미국 뉴욕법원 재판부에게 돌아갔다.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을 둘러싼 미국 소송의 진행 여부 말이다.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 측은 “승무원 김도희 씨가 제기한 민사소송을 각하해 달라”는 내용의 서면을 미국 뉴욕법원에 제출했다.
승무원 김도희 씨는 당시 마카다미아를 조현아 전 부사장에게 서비스했던 직원이다. 일명 ‘땅콩회항’ 사건이 일어난 곳은 미국 뉴욕의 JFK 공항이다. 비행기가 이륙을 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미국과 한국 모두에게 관할권이 적용된다.
대한민국 국적기 기내이며 이해당사자가 모두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한국법원의 관할권이 적용된다. 이와 동시에 미국 영토에서 일어난 분쟁이기에 미국법원의 관할권 또한 인정된다. 관할권 각하 여부를 둘러싼 이번 사안은, 여러 나라들이 속인주의 및 속지주의를 병용한 결과, 적용하여야 할 법의 충동과 저촉이 발생한 사례다. 1)
‘불편한 법정의 원칙’, ‘포럼쇼핑’…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전락한 법
조현아 전 부사장 측은 뉴욕법원에 제출한 서면에서 “사건 당사자와 증인 모두 한국인이며 수사·조사가 한국에서 이뤄져 관련 자료 또한 모두 한국어로 작성됐다”고 밝히며 “한국 법원에서 민사·노동법상 김도희 씨가 배상받는데 아무런 제한이 없기에 재판도 한국에서 하는 게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조현아 전 부사장 측이 제기한 근거는 ‘불편한 법정의 원칙’이다. ‘불편한 법정의 원칙’은 “법관 재량에 의해 타지역 법원의 재판관할권 행사를 자제할 수 있다”는 법의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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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콩회항'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1년형을 받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로써 조 전 부사장은 지난해 12월 30일 구속된 이후 143일 만에 풀려났다. 왼쪽은 지난해 12월 30일 구속된 조현아 전 부사장이 남부구치소로 향하는 모습, 오른쪽은 5월 22일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서울고등법원을 나서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
조현아 전 부사장 측은 재판 관련자 한국인들이 미국 법정에 오가며 8000쪽에 달하는 수사·재판 기록자료 모두를 영어로 번역해야 하는 등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점 또한 강조하면서, 김도희 씨의 소송 제기는 상대적으로 많은 배상금과 유리한 판결을 노려 법원을 고르는 ‘포럼쇼핑(forum shopping)’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규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김도희 씨는 정신적인 충격과 이로 인한 피해를 이유로 소송을 냈다. 이와 더불어 ‘징벌적 손해배상’도 청구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더 많은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배상제도다. 2)
‘포럼쇼핑’이라는 지적은 타당하다.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지만, 누구나 정신적 피해보상을 더 많이 쳐주는 법원에서 송사를 진행하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한국 법원에서보다 미국 법원이 ‘정신적 피해’에 더 많은 보상을 해왔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도희 씨 개인은 스스로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하지만 이는 사건 관할권을 두고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전락한’ 법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법의 목적…개인의 권리 보호, 반성과 낙인
개인의 권리와 자유는 응당 보호되어야 한다. 하지만 개인에 대한 낙인과 그에 대한 상대적 비교는 가치판단의 영역이기에 단정 지을 수 없는 사안이다. 해당 승무원은 회사상사에 대한 두려움 속에 보냈던 14시간의 기억을 떠올리지만, 조현아 전 부사장은 우리나라 국민들 수백만 명이 손가락질을 했던 몇 달간의 시간을 겪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분명 잘못을 저질렀다. 하지만 그 대가로 그런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는지 반문해 본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저지른 행위에 대해 지나친 죗값을 치렀다. 한순간에 온 국민이 다 아는 공공의 적으로 전락했고, 수사 받으러 가던 중 이해당사자도 아닌 일반인에게 공격을 당하기도 하며, 5개월 감옥형을 살았다. 피해 입은 당사자는 승무원 2인이며 승객들은 비행시간을 약간 지체했을 뿐이지만, 조현아 부사장이 치른 죗값은 그 궤를 달리 한다.
국민정서법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았던 조현아 전 부사장이다. 한국법원에서 열린 1심에서 항로변경죄 유죄를 받아 143일 간 수감되었다가 석방됐다. 지난 5월 22일 서울고법은 징역 1년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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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아 전 대항항공 부사장이 서울고등법원 항소심 공판에서 "역지사지의 교훈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며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했다. /사진=YTN 캡처 |
조현아 전 부사장은 수감 143일 만에 석방됐다. 자사 직원들에게 소위 ‘갑질’을 한 대가로 말이다. 하지만 서울고법은 판결문을 통해 “피고인(조현아 전 부사장)이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과거의 일상, 사랑하는 가족들과 격리된 채 5개월간 구금돼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행위와 피해자의 상처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반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이 여러 차례 재판부에 탄원한 글에서 이런 진정성을 의심할 수 없다고 봤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피고인은 두 살 쌍둥이 자녀의 엄마이고 범행 전력이 없는 초범이며 대한한공 부사장 지위에서도 물러났다. 엄중한 사회적 비난과 낙인을 앞으로도 인식하면서 살아갈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삶을 살아갈 한 차례의 기회를 더 주는 것을 외면할 정도의 범죄행위가 아니라면 이런 처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당시 김도희 씨는 조현아 전 부사장의 엄벌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서울고등법원에 제출했었다. 김도희 씨는 탄원서에서 “조현아 전 부사장을 모신 14시간의 비행은 두려움과 공포 속에 갇혔던 기억”이라고 언급하면서 “조현아 전 부사장 일가가 두려워 회사에 돌아갈 생각을 못하고 있고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소송천국 미국…역갑질의 시작
승무원 김도희 씨가 소송천국 미국에서 송사를 제기한 것은 개인의 입장에서 합리적이며 정당하지만, 소위 ‘역갑질’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공수가 역전된 상황에서 승무원의 반격이 시작된 셈이다. 가장 큰 논란을 일으켰던 박창진 사무장 또한 미국에서의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 또한 잇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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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의 피해자인 박창진 대한항공 사무장(44)이 산업재해 인정을 받은 것과 관련해 대한항공은 “이의제기는 없을 것”이라며 사실상 산재를 인정했다. /사진=YTN 캡처 |
공은 미국 뉴욕법원에게 돌아가 있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금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전락한’ 법의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향후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개인에게 쏟아졌던 다수의 증오심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분노를 금치 못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5년이나 10년 뒤, 갑질을 넘어선 역갑질의 결말이 궁금하다.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아갈까.
1) 사람에 대한 효력범위를 결정하는 법의 태도에는 속인주의와 속지주의가 있다. 속지주의(屬地王義)는 법의 적용 범위에 관한 입법주의 하나로 자국 영역 내에 위치하게 제한하는 것을 말한다. 형법에서는 국내에서 행해진 범죄에 대해서는 행위자의 국적을 불문하고 자국의 형법을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속인주의(屬人主義)는 국민을 중심으로 하여 법을 적용하자는 주의이다. 속지주의와는 반대어이다.
2) 징벌적 손해배상(懲罰的 損害賠償)은 민사상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악의를 가지고" 또는 "무분별하게" 재산 또는 신체상의 피해를 입힐 목적으로 불법행위를 행한 경우에, 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시, 가해자에게 손해 원금과 이자만이 아니라 형벌적인 요소로서의 금액을 추가적으로 포함시켜서 배상받을 수 있게 한 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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