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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우석 문화평론가 |
바람 잘 날 없다더니 우리가 꼭 그렇다. 일부 언론이 국가정보원을 다시 도마에 올려놓고 있다. 이탈리아 업체로부터 컴퓨터·휴대폰용 해킹 프로그램을 사들인 사실이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를 통해 최근 밝혀지자, 상당수 언론이 이를 민간인 사찰의혹으로 내몰고 있다.
북한의 사이버테러를 막기 위한 대공(對共)-대외용이라는 국정원 해명에도 야당의 정치공세까지 가세하며 상황은 복잡해 보인다. 이런 국면에서 일반인들은 국정원에 큰 문제가 있기는 있겠거니 하고 가늠할 수도 있다. 그럴까? 이 명쾌하고 심플한 사안을 엉뚱하게 떠벌리는 한국사회의 ‘내출혈 구조’자체가 혹시 문제는 아닐까?
컴퓨터·휴대폰에 대한 도·감청은 전 세계 수사·첩보기관이 예외 없이 하는 일인데, 왜 한국만 난리인가? 똑같은 해킹 프로그램을 미국 국방부와 FBI 등 35개국 정보·수사기관 97곳에서 구입했다는데, 그곳에선 논란이 없는가? 평론가 조우석이 이 사안을 문답형태로 정리해봤다.
-상당수 보안업체 전문가들은 해킹 프로그램을 해외에서 구입했다는 사실 사체를 시인한 국정원의 대응이 썩 잘한 건 아니라고 지적한다.
“맞는 말이다.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했다는 세계 35개국은 모두 조용하지 않은가? 왜 그럴까를 생각해보라. 혹시 언론에서 이를 물어오면 ‘확인해줄 수 없다’고 잘라 말하는 걸로 끝이다. 그게 FBI 등 해외정보기관의 공식적인 대응방식이다. 14일 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해킹 프로그램을 대북용이거나 연구용으로 20세트 구입했다고 밝힌 것은 아마도 국정원을 고약하고 음험한 기관으로 몰아가는 한국적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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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킹 프로그램은 북한의 사이버테러를 막기 위한 대공(對共)-대외용이라는 국정원 해명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정치공세로 몰아가고 있다. 사진은 국정원 불법사찰의혹진상조사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은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 /사진=연합뉴스 |
-야당 의원 안철수가 당내 설치된 국정원 불법사찰의혹진상조사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나섰다.
“기회에 한 건 하려는 행위가 아닐까? 컴퓨터 보안프로그램 개발 경험도 있으니 그간의 무력한 이미지를 떨쳐낼 기회라고 판단했을 거다. 그래서 국회 특위 구성을 제의하고 국정조사 실시도 검토하자고 했지만, 내 눈에는 가소롭다. 외려 사이버안보 시스템 구축을 위해 어떻게 국정원을 강화할 것인가를 말하는 게 책임있는 정치인의 모습이 아닐까? ”
-야당의 못된 체질을 몰라서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닐까?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특수성을 여야 구분없이 엄숙하고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그게 정상이다. 북한은 지난해 말 악성 코드를 퍼뜨려 고리와 월성 원전(原電) PC 5대를 파괴한 후 원전 가동을 중단하라고 협박하기도 했잖은가? 저들의 사이버 테러 위협이 심각한 상황이지만 정보수집에 대한 법적 규제는 미국 등보다 더 엄격한 게 우리의 딱한 현실이다.”
-야당과 일부 신문은 기회는 찬스라고 물고 뜯고 난리다.
“저들은 이번 일을 부풀려 제2의 국정원 댓글사건, 제3의 국정원 문서위조 사건으로 몰고 가려는 충동을 또 한 번 느낄 것이다. 댓글사건으로 무려 2년을 끌면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기소하고, 문서위조 사건을 부풀려 남재준 전 원장과 대통령이 사과하는 식의 그림을 다시 연출해내고 싶은 것이다. 그게 안보의 최전선 국정원을 무력화하는 바보짓이라는 생각을 저들은 미처 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 말도 그럴 듯한데, 만일 국정원이 정치적 목적 등으로 민간인을 불법 도·감청했다면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이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했다는 방대한 유출내용 중에 국정원에게 불리한 내용이 일부 있을 수 있다. 한겨레가 그걸 분석하는데 도움을 달라고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그럴싸한 보도태도를 취했지만, 뭔가가 나올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렇게 장담하는 건 내가 아는 현 국정원에 그런 걸 할 만큼 간 큰 사람, 시대착오적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침소봉대한 일로 전 국정원장이 기소되고, 또 다른 일로 사과하고 대통령까지 사과했는데…. 지금 호들갑은 정치공세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
- 그럼 우린 지금 무얼 해야 할까?
“지금이야말로 간첩의 휴대전화를 포함해 제대로 된 합법적 감청을 정보기관이 할 수 있도록 된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하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 선진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가 휴대폰 감청뿐이 아니라 PC 해킹을 통한 범죄증거 확보를 합법화한다. 전세계 정보기관 중에서 합법적인 도-감청을 하지 않는 곳은 없다. 우리만 그게 없으니 간첩을 눈뜨고도 못 잡는 것 아니냐?”
-그 얘기 좀 더 해보자.
“잠시 기다려달라. 야당과 일부 좌파 시민단체의 반발로 개정을 꿈도 못꾸는 통비법 개정을 포함해 국정원 강화방안을 따로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언론인 조갑제 대표가 이번 일과 관련해 한 말씀을 했던데.
“지금 한국은 해킹 강자인 북한에 의하여 원전(原電) 자료와 심지어 대통령의 통화 내용까지 해킹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정원이 사이버전의 무기인 해킹 장비나 기술을 도입하는 것은 공군이 전투기를 도입하는 것처럼 당연한 일 아닌가? 지금 국회 정보위원회는 비밀에 붙여야 할 정보를 언론에 흘리는 곳으로 변하였다. 한국정치의 현주소가 그렇게 황량하다는 개탄인데, 나는 100% 공감한다.”
-국정원 사건을 보는 시각엔 세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중장년 층은 옛 중앙정보부의 어두운 이미지를 떠올리겠지만, 젊은 층은 그렇지 않다.
“맞다. 젊은층에게 국정원은 외려 매력적인 엘리트 직장이다. 그들은 지금 미국의 국가안보국(NSA)이나 영국의 비밀정보국(MI6) 등 해외 정보기관들은 해킹 프로그램을 자체 제작해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왜 IT강국 한국에서 외국의 것을 구입하는 지를 묻고 있다. 이런 반응이 새로운 애국세대, 연평해전 세대 그리고 국제시장 세대의 희망이다.”
-더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시민의 자유와 안전을 지키기 위해 정작 자신들 손에는 피를 묻히는 소위 ‘더러운 일(dirty business)’을 하는 국정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한 때가 지금이다. 그건 ‘더러운 일’ 아니라 ‘고귀한 일’이 아닐까? 옛날 1970~80년대 낡은 기억으로부터 빨리 벗어나길 나는 바란다. KGB의 고급 정보요원으로 맹활약하다가, 1995년 미국으로 전향한 올렉 칼루진은 이렇게 말했다. “국가정보에 투자하는 수백만 달러는, 전쟁으로 인한 수백억 달러의 손실을 막아준다.” 훌륭한 단행본 <대한민국 국가정보원>(백년동안)에 나오는 말이나 참조 바란다.” /조우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