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실로 믿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중세의 냄새가 물씬 나는 이야기 속 화가는 죽기 전 희대의 명작을 남기고자 한다. 주제는 ‘천사와 악마’다. 모델은 상상 속 인물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마주한 인간이어야 한다. 세상을 주유하며 천사의 이미지를 찾던 화가는 어느 마을에서 인간으로 분한 듯한 천사 같은 소년을 만났다. 천진한 미소와 선한 눈빛, 그리고 알 수 없는 천상의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천사를 그린 화가는 이제 악마를 찾아 나섰다. 오랜 시간 헤매던 끝에 그는 인간의 형상을 했으나 사람이라고 말하기 힘든 얼굴을 찾아냈다. 추악한 미소와 사악한 눈빛, 그리고 지옥을 경험한 듯한 분위기는, 악마가 존재한다면 바로 그 얼굴이었다. 화가가 돈주머니를 건네자 기꺼이 모델로 나선 이는 묻지 않은 대답을 했다. 자기가 오래전 모델을 한 경험이 있는데 그때는 천사였노라고. 몹시 놀란 화가가 행적을 추적하니 천사 모델과 악마 모델이 동일인이었다는 이야기다.
아마도 한 번씩은 들었을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것은 ‘뉴스제휴평가위원회’ 때문이다. 통상 ‘제평위’로 불리는 뉴스제휴평가위원회는 이름이 말하듯 포털의 절대 지배자인 네이버와 다음(카카오)와 뉴스 유통을 제휴한 언론사를 평가하는 공적 기능을 수행한다. 제평위 출범 이전 네이버와 다음의 독자적 제휴와 관리가 정치적, 이념적 편향성 시비에 휘말리자 오랜 진통 끝에 탄생했다. 크게는 검색제휴부터 스탠드 노출, 광고료를 지불하는 CP까지 3단계인 제휴를 기업이 아닌 위원회가 관리함으로써 공공성을 확보하겠다며 2015년 발족했다.
사전적으로 “국내 인터넷 생태계가 저널리즘의 가치를 바탕으로 건전하게 육성, 발전할 수 있도록 이바지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인터넷 노출에 사활이 걸린 국내 언론사의 제휴와 징계(벌점) 권한으로 제평위는 권력기관이 됐다. 언론사들은 “검찰이나 국세청보다 제평위 벌점이 더 무섭다”고 앓는 소리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언론 유관단체, 이용자단체, 학계, 언론 전문가단체 등 15개 단체가 추천한 30명의 결정은 언론사 생존에 결정적 영향을 행사해 왔다. 제평위는 1년에 한두 차례 부정기적으로 위원회를 가동해 신규 제휴 언론사를 선별하고 기존 제휴사와 계약 유지 등을 결정했다. 또 저널리즘을 해치는 광고성 기사와 선정적 기사의 판정 기준을 마련하고 벌점을 부과하는 역할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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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네이버와 다음은 포털사업은 지속하되 정치권의 압박은 피하려 대체제를 꾸준히 모색해 왔다. 오랜 시간 동안 인력과 자금을 투여했으나 게임체인저를 찾지 못했다. |
제평위의 심사를 거쳐 제휴 언론사로 선정이 되면 언론사는 축배를 든다. 언론 기업으로서 시장 접근이 가능해졌다는 공인(公認)이자 생존 가능의 축포다. 물론 제평위의 퇴출 판정은 그 언론사의 사망 판정으로 인식된다. 벌점 누적으로 포털 노출이 중단된 언론사 역시 광고영업의 황폐화로 이어져 경영은 위기를 맞는다.
이토록 무관의 제왕 위에 군림하는 제평위가 스스로 업무를 해제한 지 오래다. 지난 5월 정치권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제평위가 스스로 무장해제하고 권한을 내려놓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평위를 구동하는 에너지원이자 이해 당사자인 네이버와 다음 측이 정치권의 압박에 손을 든 것이지만. 하여튼 언론시장은 “선수는 경기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심판은 없는” 상황이다. 나름대로 기준을 갖고 재단하던 제평위가 사라지자 마치 무정부상태를 방불케 한다. 도로에 자동차들은 달리고 있지만 신호등도 교통경찰도 보이지 않는 현실이다.
무질서 속에는 항상 불법이 꽃을 피운다. 제평위가 작동하지 않자 음성적 기사형 광고에 이어 그동안 사라졌던 함정광고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다음이 검색제휴 언론사를 전수조사한 결과 22곳이 ‘백버튼 광고’를 재개했다. 다음과 제휴한 언론사는 고스란히 네이버와 겹침으로 사실상 제평위 가동중단 이후 언론시장에 대한 전수조사로 해석된다. ‘백버튼 광고’는 기사를 본 이후 언론사 사이트를 나가기 위해 ‘뒤로가기’를 누르면 포털로 되돌아가는 대신 광고화면이 뜨는 악성 광고로 소비자 불만이 가장 많은 광고 형태다. ‘백버튼 광고’는 전쟁터에서도 사용이 꺼려지는 비인도적 무기인 네이팜탄처럼 인터넷 광고시장에서 그동안 금기로 여겨졌다. 그러나 심판관인 제평위의 부재를 틈타 다시 등장했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기사형 광고도 기승이다. 기사인지 광고인지 헷갈리는 기사형 광고는 저널리즘의 본질과 상치된 ‘사이비 언론’의 기준처럼 여겨져 제평위가 규제하자 자취를 감췄으나 감시자가 사라지자 다시 활개를 치고 있다.
이 같은 불법행위는 곧바로 소비자 피해로 이어짐은 당연하다. 과장·허위 광고는 소비자의 판단을 흐리고 재산상 피해를 유발한다. 잘못된 의료 광고는 건강과 안전을 위협해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언론의 이름으로 살포된 불신 광고는 고스란히 언론에 대한 불신으로 다시 환원되기에 언론 위기를 자초한다.
그동안 네이버와 다음은 포털사업은 지속하되 정치권의 압박은 피하려 대체제를 꾸준히 모색해 왔다. 오랜 시간 동안 인력과 자금을 투여했으나 게임체인저를 찾지 못했다. 현재는 손을 놓은 채 정부의 움직임에 눈만 움직이고 있다. 정부는 공정 차원에서 언론을 제 궤도에 올리겠다는 의지가 충만하다. 최근 지명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의 주요 책무 중 하나라는 소문도 파다하다. 그러나 정부도 제평위를 대체하는 정부 기구 출범이 가져올 사회적 갈등과 위험성을 잘 알고 있다. 당장 언론에 대한 정부의 통제라는 반발이 불 보듯 훤하다. 또한 내년 4월로 다가온 총선을 앞둔 여야가 한 치도 밀리지 않는 격쟁을 불사할 때 배가 산으로 갈 가능성도 농후하다.
결국 정치권과 사회가 제평위의 대체제 구성을 놓고 핑퐁을 치다 보면 제평위와 이름만 다른 유사기능의 기구가 출범하고 구성원 역시 현재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독립적 제재 권한을 갖는 자율기구’를 추천한다. 그러나 과거 제평위를 놓고 쏟아졌던 이해 관계자들의 엄청난 갈등을 감안하면 ‘이상적이나 불가능’하다. 제재 권한은 포털의 주인인 네이버와 다음을 거스를 수 없고, 자율성은 정치권의 영향에서 무풍일 수 없다. 결국 제평위 기능의 부재라는 위험을 장기화하고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도 다시 그 자리를 맴돌 가능성이 높다.
악마의 얼굴로 보인다고 또 다른 천사의 얼굴을 찾느라 국력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시대의 기술에 힘입어 고쳐 쓰면 될 일이다. 천사와 악마의 모델이 동일인이라고 하지 않던가. 심판의 부재 시간이 너무 길다.
미디어펜=김진호 부시장 겸 주필
[미디어펜=김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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