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판 하루앞...‘가해자 인권’ 매몰돼 피해자 눈물 놓쳐선 안돼
   
▲ 이원우 기자

그날, 딸에게선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중학생 시절부터 유학생활을 해온 큰딸이었지만 5월 8일 어버이날을 거른 적은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의아한 마음이 일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아버지 김 씨는 큰 의심을 하지 않았다. 바로 전날(7일) 딸과 카카오톡 대화를 나눴던 터였기 때문이다. 언제 만날 수 있겠느냐는 아빠의 말에 딸은 “일정이 바빠 좀 힘들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냈었다.

아버지는 몰랐다. 이 무렵 딸은 이미 세상에 없었다는 사실을. 5월 7일, 큰딸 김선정 씨는 이미 충북 제천의 어느 야산 시멘트 무덤에 무참하게 묻혀버린 상태였다. ‘시멘트 암매장 살인사건’이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리기까지는 아직 열흘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딸이 죽었다는 걸 알고 난 뒤부터 전남 장성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52세 동갑내기 부부의 시간은 멈춰버렸다. 선정 씨가 하늘로 떠난 5월 2일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려 다시 아이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상상해 보는 것마저 이제 부부에게는 사치였다.

장성에서 직접 만난 유족들의 삶은 한눈에 봐도 무너져 있었다.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우고 있다는 어머니 조 씨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인터뷰조차 불가능한 상태였다.

데이트 폭력에서 데이트 살인으로

세칭 ‘여자친구 시멘트 암매장 살인사건’으로 지칭되는 이 충격적인 사건에는 2015년의 대한민국이 처해있는 병리적 현실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국면들이 몇 가지나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의 뇌리에서 이 사건은 빠르게 지워지고 있다. 이제 갓 두 달이 지났을 뿐이지만 사건의 경과를 짚어보는 과정이 우선 필요할 것 같다.

   
▲ 故 김선정 씨 유족이 운영하던 식당은 현재 사실상 폐업상태다. /사진=이원우 기자

가해자 이 씨와 피해자 선정 씨가 처음으로 만난 것은 2014년 초로 추정된다. 부산의 한 외국어학원에서 강사(선정 씨)와 수강생(이 씨)으로 만난 그들의 관계는 연인으로 발전한다. 시작이야 여느 커플과 다르지 않았겠지만 이 씨에게는 가려진 얼굴이 하나 더 있었다.

선정 씨의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질 때 깍듯한 태도를 보이던 이 씨의 본모습은 둘만 있을 때 드러나곤 했다. 상습적으로 폭행을 일삼는 이른바 ‘데이트 폭행범’이 그의 본모습이었던 것이다.

9월 17일경 이 씨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고 있던 선정 씨의 집으로까지 찾아가 발로 선정 씨의 머리부터 전신을 밟는 식으로 폭행을 가했다. 물론 이 날은 수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이었다.

온몸이 상처로 뒤덮인 선정 씨는 친구와의 통화에서 “너무 폭력적이고 무섭다” “한국에 있으면 계속 해코지를 당할 것 같다” “외국으로 나가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등의 호소를 했다. 여간해선 폭력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녀도 직감했던 걸까.

어마어마한 폭행을 당하고도 쉽게 관계를 끊지 못하는 건 데이트 폭력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패턴이다.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거리를 두려고 노력할 때마다 더 심한 폭력을 일삼는 이 씨의 태도가 이어지자 선정 씨도 2014년 연말쯤엔 ‘투항’을 하게 된다. 한국에 있는 한 이 씨의 폭력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2015년 2월 무렵엔 두 사람이 군복무 중인 선정 씨의 동생을 면회한 일도 있었다. 이때 이 씨는 선정 씨의 동생에게 “누나와 좋은 사이로 지낸 게 한두 달쯤 돼간다”고 엄밀한 사실과는 조금 다른 진술을 했다.

사실과 다른 것들은 이외에도 많았다. 어머니보다 아버지에게 터놓고 속마음을 얘기하곤 했던 큰 딸은 이 씨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도 건넨 적이 없었다. 남자친구는 물론 주변 친구들에 대해서까지 아버지와 터놓고 얘기하던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모든 게 달랐다.

선정 씨에게 이 씨는 숨기고 싶은 비밀이었을까, 아니면 어서 탈출하고픈 지옥이었을까.

폭행, 살인, 유기… 과연 우발적 범행이었나

2015년 5월 2일 선정 씨는 다시 이 씨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허나 근 1년째 이어지고 있는 폭력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지막 시도는 결국 더 큰 폭력으로 돌아오고 만다.

이 씨는 결국 이날 밤 11시 30분경 자고 있는 선정 씨를 덮쳐 목 졸라 살해했다. 부검 결과에서 큰 저항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체내에서 수면제 등의 약물이 발견된 것도 아니었다.

즉, 이 씨는 선정 씨를 상당히 ‘능숙하게’ 살해한 것이다.

사건을 벌인 이 씨는 시체 옆에서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시신을 이불과 비닐 등으로 싼 뒤 여행용 가방에 구겨 넣었다. 사망 이후 7~8시간이 흐른 이때쯤엔 사체가 경직되는 시강현상(屍剛現象)도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을 것이다. 사망한 선정 씨의 신장은 164센티미터 정도. 결국 작은 트렁크에 시신을 넣는 과정에서 시체가 심하게 훼손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는 범인이 앞으로 시도할 훼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 故 김선정 씨의 유골함 /사진=이원우 기자

선정 씨가 사망한 날짜는 5월 2일. 그리고 이 씨가 그녀의 시신을 충북 제천의 한 야산에 유기한 시점은 5일 뒤인 5월 7일이다. 이 사이에 범인은 시신유기를 위한 치밀한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시멘트 유기’라는 방법을 생각해낸 데에는 건설현장에서의 경험이 작용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 씨는 일용직 노동자로 일을 한 경험이 있고, 학원에서 선정 씨를 만났던 시점에도 직업이 없는 상태였다.

유기장소를 제천으로 고른 이유에 대해 이 씨는 ‘명당’이었기 때문이었다고 진술했다. 그는 이곳의 한 돌산을 약 이틀간 판 뒤 선정 씨의 시신을 유기하고 시멘트로 매설했다. 고인을 위해 소주잔을 흩뿌리기도 했다는 이 씨는 그 순간 자기 자신을 속이는 데 성공했을까. 하지만 범행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이 씨에게는 선정 씨의 가족들과 온 세상을 속이는 순서가 아직 남아 있었다.

어딘가 미심쩍은 자살소동, 그리고 자수

선정 씨를 죽인 이 씨가 조사한 것은 비단 시신유기 방법만이 아니었다. 그는 선정 씨의 ‘카카오톡 말투’를 연구해 모방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이로 인해 선정 씨의 친구들은 물론 딸과 자주 연락을 나누던 아버지까지도 선정 씨가 죽었다는 사실을 한동안 알지 못했다.

10대 중반 미국 유학길에 올라 뉴욕주 올바니 뉴욕주립대(SUNY)를 조기 졸업하기까지 제 앞가림을 훌륭하게 해온 큰딸이었기에 가족들은 작은 일로는 걱정하지 않아왔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이제 와선 유족들의 한으로 남아 있다. 한시라도 빨리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확인하려고 시도했다면 이 씨가 자수하기 전에 그를 잡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미련 때문이다.

유족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이 씨가 절대로 죄에 대한 반성 때문에 자수를 한 게 아니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수사망이 좁혀 들어온다는 생각이 들자 자살소동과 함께 자수를 함으로써 감형(減刑)을 노렸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씨측은 선정 씨에 대한 살해를 ‘우발적’으로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이 씨에 대한 정상참작 여부는 재판부가 판단할 일이지만 시간 순서대로 이 씨의 행각을 살펴보면 미심쩍은 부분은 분명히 있다. 선정 씨를 가장해 지속적으로 카카오톡 메시지를 전송하던 이 씨는 15일 무렵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직면했다. 선정 씨가 새롭게 취업해 일하려고 했던 업체가 ‘일방적 계약해지에 대한 내용증명’을 발송한 것이다.

큰딸의 일처리가 평소 같지 않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며칠 동안 “꼭 할 말이 있다” “반드시 목소리를 듣고 통화를 해야겠다” “급한 일이니 빨리 전화를 달라”고 반복적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음성녹음을 했지만 답신은 없었다.

결국 압박을 느낀 이 씨는 5월 18일 범행 일체를 자백한 뒤 구속됐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담담하게 경찰서로 출두를 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구속 직전 이 씨는 한 차례 자살소동을 벌였다. 손목을 그은 상태에서 스스로 119에 전화를 걸어 신고를 했다. 출동이 늦어지자 “왜 안 오느냐”고 한 차례 더 전화를 걸기도 했던 이 씨의 출혈은 구속 시점엔 완전히 멈춰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처참하게 찢긴 ‘피해자 인권’

유족들이 이 씨에 대한 무관용적 처벌을 원하는 데에는 다른 엄청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이 씨에게 어떤 벌이 내려진다 해도 죽은 선정 씨가 돌아올 가능성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加害)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은 중요하다. 유족들은 언제까지나 남의 일 일줄 알았던 이 사건 이후 ‘대한민국의 피해자가 얼마나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지’를 절감하며 통곡하고 있다.

   
▲ 선정 씨의 여동생은 지난 2일 밤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더 건강해 보이는 살인범의 모습을 보니 정말 화가 치밀고 눈물이 흐르더군요. 저희 가족은 다시 한 번 가슴이 찢어지네요”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현재 가해자 이 씨에 대한 신원 정보는 전면적으로 차단돼 있다. 반면 피해자 측 정보는 선정 씨의 신원은 물론 가족들의 정보까지 공개돼 있다. 물론 피해자 측 신원공개는 동의를 구하고 진행된 것이기는 하다. 사건의 경위와 피해상황을 좀 더 자세하게 알리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한 뒷감당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익명성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대도시와는 달리 전남 장성의 작은 마을에 선정 씨의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한때 방송에까지 소개되며 ‘맛집’으로 이름을 알렸던 식당은 사건 이후 폐업상태. 이쯤 되면 죄를 지은 게 누구인지 혼란스러워진다.

선정 씨의 아버지 김 씨는 앞으로도 영업이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옆집 숟가락 숫자까지 아는 동네에서 이런 일 겪고 어떻게 서로 얼굴 보겠느냐”는 그 말을 반박하기는 어려워보였다.

피해자 측 신원공개의 여파는 인터넷에서도 만만치 않았다. 지역 비하, 고인 비하 등으로 점철된 익명의 악플들은 가족들의 가슴을 두 번 세 번 내리쳤다. 인생의 대부분을 공직에서 보낸 아버지 김 씨는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아닌, 한 가정이 죽어버린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이 말 또한 반박하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해자 이 씨와 그 가족들은 ‘가해자 인권보호’라는 명분의 혜택을 활용하며 감형의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국선변호사를 선임할 예정이었던 가해자 측은 법무법인 변호사를 새로 선임하며 유리한 판결을 위한 적극적인 행동에 돌입했다. 이로 인해 당초 7월 2일이었던 공판은 23일로 미뤄졌다.

2일 재판정에 참석해 범인의 얼굴을 본 선정 씨의 여동생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더 건강해 보이는 살인범의 모습을 보니 정말 화가 치밀고 눈물이 흐르더군요. 저희 가족은 다시 한 번 가슴이 찢어지네요”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동생의 이 목소리는 7월 23일 재판부에 얼마나 전달될 수 있을까. 공판 다음날인 7월 24일, 이제 이 세상에 없는 선정 씨는 하늘나라에서 첫 생일을 맞는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