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전 회장이 세상을 떠난 지 만 5년 만이자 창립 76주년이 되는 해에 LG그룹 역사상 처음으로 상속 분쟁이 발생했다.

구 전 회장 별세 후 LG가는 가문의 전통이자 대대로 이어온 기업가 정신인 ‘인화’를 바탕으로, 구광모 회장을 후계자로 추대했다. 역사가 말해주듯 깔끔한 후계 구도가 이어지는 듯 했으나 현재 LG그룹은 구광모 회장의 어머니 김영식 씨와 여동생 구연경, 구연수 씨가 제기한 상속회복청구 소송으로 뒤늦은 상속 분쟁에 휘말리게 됐다.

100년 기업을 앞둔 LG그룹의 역사상 첫 상속 분쟁을 보면, 최근 연예가 핫이슈로 떠오른 중소 아이돌 피프티피프티의 사례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기적의 아이돌에서 기적의 통수돌로 전락해버린 피프티피프티는 이제까지 일반적으로 불거진 연예계 기획사 계약 문제와는 다르다. 보통 대중들은 기획사보다 아이돌을 옹호하지만, 이번 사건은 전 국민적으로 소속사 대표를 응원하는 기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문제의 핵심으로 떠오른 ‘탬퍼링(tampering)’과 ‘가스라이팅’ 문제나 법원의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기각 결정 등을 보면 LG그룹의 상속 문제와 어딘가 오버랩되는 기분이 든다.

탬퍼링이란 원래 프로 스포츠계 용어로, 계약기간이 남은 다른 팀 선수를 빼가려는 목적으로 사전 접촉하는 행위를 지칭한다. 연예계에서는 전속계약이 남은 연예인을 빼가기 위해 몰래 접촉하는 행위를 지칭하는데, 피프티피프티의 경우 외부 세력이 개입해 가스라이팅을 통한 탬퍼링이 강력히 의심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LG그룹의 상속 분쟁 역시 세간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외척 세력에 의한 가문 내 탬퍼링과 가스라이팅이 문제의 발단인 것으로 거론되고 있다. 다만 두 사건의 비슷한 점은 이러한 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피프티피프티의 경우 국민의 일방적 응원이 소속사 어트랙트에 치우쳐 있고 법원 역시 소속사에 손을 들어줬는데, LG그룹의 상속 분쟁 역시 비슷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LG그룹의 인화 정신에 따른 가문의 승계 역사는 재계 내에서도 자랑스러워할 만한 부분이고, 다른 기업들이 부러워한 점이었다. 이는 LG그룹 내 임직원들과 제 3자들조차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이번 소송이 법원에서 결과가 크게 달라질 부분이 없다는 점도 비슷한 부분이다. 물론 소송 결과는 마지막까지 알기 힘들다.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이미 완료된 재산의 상속분할이 당사자들 간 협의가 이뤄진 부분인 만큼 결과가 뒤바뀌기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원고들이 기존 협의가 ‘기망’에 의해서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확실한 증거를 제출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가족 간 녹취 파일을 증거로 내기로 했지만, 부분 녹취 제출은 의도가 왜곡될 수 있고, 녹취 내용에 원하는 답을 유도하는 유도 신문에 대한 정황이 있다면 이또한 기망 행위이기 때문이다. 

다만 피프티피프티 사건과 다른 부분은 녹취파일을 피고가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원고가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있을 부작용이 우려된다. 어트랙트 대표인 전홍준 대표는 녹취 파일을 억울한 점을 상세히 소명하는 증거로 활용했다. 하지만 이번 LG 가문의 녹취 파일이 공개될 경우 가문의 치부가 드러날 수 있다는 점에서 구광모 회장이 생각지 못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이번 LG그룹의 상속 분쟁은 LG그룹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도 있는 만큼 사안이 중요하다. 구광모 회장은 승계의 원칙 중 엄중하게 고려돼야 할 자질 부분에서 이미 검증이 끝났다. 구광모 회장은 어린 나이에 회장 자리를 승계 받은 이후, 드러나진 않지만 조용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LG그룹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 올해 한국 경제는 IMF 때와 비견될 만큼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지만, LG그룹은 흔들리지 않고 준수한 실적을 거두며 순항하고 있다. 

특히 안정적인 가전 사업을 필두로 십년지계로 내세운 배터리 사업은 이제 절정의 단계를 바라보고 있고, 뒤를 이을 바이오, AI 사업도 착실히 내실을 다지고 있다. 이러한 안정적 오너십을 보여준 구광모 회장 흔들기는 그룹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야당 대표의 사례를 보면 알겠지만, 가족 간 대화 녹취 파일이 공개되며 곤혹을 치른 바 있다. 어찌 보면 개인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이미지가 생명인 정치인이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음을 간과할 수 없다.

구광모 회장 역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의 수장이기에 가족 간 대화 내용이 공개된다면 뜻하지 않게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가장 비밀스러운 공간이자 사생활이 보호 받아야 할 가족 간이기에 내뱉을 수 있던 말들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 그러한 치부가 만약 있고, 공개가 된다면 그것은 76년 전통을 이어온 LG가문의 위상을 먹칠하는 일이다. 이는 원고가 일부러 상대 위상과 체면을 깎으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면 일어나서 안 되는 일이고, 그런 의도가 있다면 사전에 차단되어야 할 일이다.

오너 경영의 최대 장점 중 하나로 미래 사업에 대한 추진력을 꼽을 수 있다. 과거 국내 대기업들이 초고속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 또한 오너 경영 체제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부작용과 단점도 있지만, 긍정적 부분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줄여가고 있는 것이 현 재계 내 3~4세대 오너들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다.

재계 서열 1위 삼성은 이재용 회장이 자녀에게 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사실 강력한 오너십을 바탕으로 성장한 삼성에게 이는 득이 될지 실이 될지 모르는 리스크에 가깝다. 기업의 영속성 측면에서 단기성과에 집중하는 전문 경영인 체제는 다소 불리할 수 있다. 100년 기업으로 가기 위한 지속 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변화는 이재용 회장에게 남겨진 숙제이기도 하다.

사실 이런 면에서 아무런 문제없이 승계가 이뤄진 LG그룹에게 첫 위기가 찾아온 것은 무척이나 아쉬운 점이다. LG그룹의 승계 원칙은 GS그룹이나 LX그룹으로 분리될 때도 이어지면서 아무런 잡음이 없었고, 범 LG가 기업들에게 여전히 존중되고 있는 전통이기 때문이다.

100년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혁신, 창조나 도전정신도 중요하지만, 어느 기업이든 ‘인화’라는 기업가 정신없이 오래가긴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을 존중하지 않고, 내부 결속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어느 단체든 지속 가능성이 떨어질 것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현재의 상속 분쟁은 LG그룹의 백년지계를 결정할 문제일 지도 모른다. 분쟁이 길어지면 감정이 쌓이기 마련이다. 특히 녹취 파일 공개가 재판과 상관없는 상대방 깎아내리기 의도로 이뤄지면 가족 간 신뢰는 다시 회복하기 힘들 수도 있다. 이는 모든 이들이 기억하는 LG가문의 모습이 아니다. 76년 간 구축해온 이미지가 한순간에 추락하는 것은 찰나일 수 있다. 다만 다시 회복이 힘들 뿐이다.

문제가 커지고 감정이 쌓이기 전에 하루빨리 분쟁을 마무리 하는 것이 서로에게 최선의 결과일 수 있다. 
[미디어펜=문수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