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효진 남북경제연구소 기획연구실장

이란 핵 타결은 북핵 문제 해결에 희망을 비추는가? 흔히들 묻는다. 북한은 핵을 포기할 것인지. 묻는 이들조차 답을 안다. 대답은 노(No).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북한의 존재를 인정하고 나면 하나의 질문만이 남게 된다. 우리의 대처방법은 무엇이냐고.

답은 엇갈린다. 16세기 조선의 주화론 대 주전론을 연상시키는 제언만이 정가를 떠돌 뿐이다. 한국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거나 북한과의 일방적 화해와 협력만을 강조하는 식이다.

미국이 갖고 있는 세계 최강의 핵 무기에는 별반 위협을 느끼지 않는데 조악한 북한의 핵에는 왜 민감해질까? 북한이니까 당연한 것 아니냐고? 이 '당연하다'는 직관을 파헤쳐 봐야 상황이 명료해진다.

북한이 원하는 대로만 해주는 것이 화해이고 협력?

핵 무기 자체가 갖고 있는 위험도는 사실 객관적인 것이다. 그것이 질 낮은 핵(dirty bomb)이든 고품질의 핵이든 치명적 위협이란 측면에서는 등가적이다. 고로, 핵 위험 자체는 상수와 다름없다. 그런데 그러한 위험을 위협으로 '인식'하는 것은 주관적이며 (상대방과의) '관계'에 종속적이다.

그러면 핵 위협에 대한 질문은 인식과 관계의 문제로 치환된다. 남북관계가 더없이 좋다면 북핵이란 객관적 위험에 대한 주관적 체감수준은 상대적으로 낮아질 것이다. 그럼 남북관계는 어떻게 해야 좋아질까? 북한이 원하는 대로만 해주는 것이 화해이고 협력 일리는 만무하다.

DJ정부시절에는 '형님론'으로 대국민 설득이 시도됐다. 좀 잘 사는 형님이 못 사는 동생네 형편 좀 들어주면 어떠냐는 것이 골자이다. 그러나 그 동생(북한)은 형(남한) 몰래 핵 무기를 개발했다는 원죄가 있다.

애초에 존재하지 말아야 할 무기를 만들어 생긴 위협을, 새삼 관계개선을 통해 그 위협이 완화될 수 있다는 1차원적 진단과 처방은 대증요법(對症療法)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과거의 잘잘못만을 따지는 것은 난세를 극복할 현명한 처세는 못되는 법.

▲ 북핵 6자회담 미국측 차석대표인 시드니 사일러 국무부 북핵 특사가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에서 김건 외교부 북핵외교기획단장과 면담을 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상황을 분석해 해결의 방향을 찾는 일은 그래서 포기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라는 원칙 제시는 발상의 전환인 셈이다. YS정부 이후, 실종됐던 통일정책의 복원이라는 함의도 있다. 시나브로 그 자리를 대신했던 대북정책을 제자리로 돌리겠다는 이해가 깔려 있다. 실상 공은 북한에 있다는 것이 딜레마다. 이편에선 한방에 문제를 풀 마땅한 묘책이 실은 없다는 것.

핵 위험이 상수로 남아있는 한 핵 위협은 결코 제로(0)가 될 수 없다. 전 세계 핵 비확산 규범은 평화적 핵 이용 이외 그 어떤 핵 개발도 용납하지 못한다. 비확산 체제 자체가 흠도 많고 완전한 레짐도 못되지만 말이다.

핵 위협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의 문제는 북한이 변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변하지 않는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명백해 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지도자의 '의지'만 있다면 충분할까?

북핵은 생각 이상으로 견고하다는 걸 알아야

역사적 제도주의라는 것이 있다. 간단히 말해 사건 자체 보다 그 사건이 발생한 역사적 맥락을 들여다 보고, 전후의 흐름을 '경로의존성'이라는 시간적 개념으로 풀어내고자 하는 일군의 지적 노력을 일컫는다. 북한의 제도와 정책도 아직까지는 경로의존적이다. 이념을 통해 북한의 경로의존 경향은 더욱 강화된다. 북한이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지배(지도)이념이야말로 북한의 삶과 정체성을 규정짓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개인적 의지도 이념에 종속된다. 이념을 뛰어넘는 (정치적)의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이런 체제가 기존의 제도(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를 탈피하는 계기는 전쟁이나 경제난 같은 제도 바깥의 변수가 경로를 이탈하는 유일한 동인이 된다는 것이 역사적 제도주의가 내리는 진단이다.

오늘날 북한은 핵을 추구하던 김정일 시대에서 사실상 핵을 보유한 김정은 정권으로 바뀌었다. 핵이 제도 안으로 내재화됐다. 김정은의 '핵-경제 병진노선'은 이 점을 공식화한 것이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란 더욱 요원한 일이다. 현재의 북한은 완전한 핵 확산, 곧 수직적 확산의 경로에 들어서 있다.

수직적 확산이란 핵탄두의 경량화, 소형화의 완성과 다름없다. 시간과 비용의 문제일 따름이다. 북핵 불용이라는 과제를 달성하기 위한 현실적 처방은 이 시간과 비용을 더디고, 크게 만드는 길 밖에 남아있지 않다.

▲ 북한은 "우리는 명실공히 핵보유국이며 핵보유국에는 핵보유국으로서의 이해관계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일방적으로 먼저 핵을 동결하거나 포기하는 것을 논하는 대화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특히 오는 10월 노동당 창건 70주년 앞두고 북한이 미사일 발사 등 전략적 도발을 감행할 거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사진=YTN 캡처

대북 핵 문제 정책의 딜레마

그러려면 북핵의 주관적 위험성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모순이 있다. 이는 관계에 반비례한 것이니 관계개선 노력과 상충한다. 이런 모순이야 말로 핵 문제의 역설을 생생히 보여주는 증거이다. 핵 문제는 제로-섬(zero-sum)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북핵 대응 전략의 곤란함은 바로 이런 점에 기인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하기 어려운 말 그대로 교착상태(stalemate).

북미 양자협상이건, 6자회담이건 최근 20년 간 북한 핵의 역사는 과감한 '당근'(유인책)을 통한 핵 포기 시도는 모두 실패였다 라는 교훈을 남겼다. 다시 이 실패한 협상경로로 들어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시도한다면 그건 진정성 없는, 다른 의도를 목표로 한 정치적 포장일 뿐이다. 북한이 걸어온 견고한 경로의존의 길은 어떤 종착지에 다다를 것인가?

선택지가 별로 없는 남한으로서는 모순임을 알지만 이 방법, 저 방도를 쓸 도리 밖에 없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그 고육지책의 산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적어도 MB정부의 대북정책의 기조였던 '비핵개방3000'이 갖는 조건적이고 단기적이며 결과중심적 가치(사고)관을 걷어냈다. '신뢰'라는 두리뭉실하며 쉽게 가늠하기 어렵지만 분명히 포착되는 개념을 전면에 내세운 한반도 통일정책으로 북한을 설득 내지 포섭하려는 몸부림이다.

애초의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북한은 핵을 포기할까? 아니다. 그러나 핵을 포기할 만한 역사적 조건과 현실적 맥락을 만들어주려는 시도는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북한의 공식적 이념에 가시화될 때에야 비로소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봐줄 수 있겠다.

적어도 북한과 한 번의 이례적 사건이나 한탕주의적 관계호전으로 상황을 낙관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는다면, 지난 20년간 북핵 '실패사'가 남긴 교훈을 통해 뭔가 '개선'이 있었다고 훗날의 역사는 기록해 줄 것이다. /김효진 남북경제연구소 기획연구실장·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