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이균용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그간 재판 경험을 통해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원칙과 정의, 상식에 기반해서 사법부를 이끌어나갈 대법원장으로 적임자라고 판단한다."
지난 8월 22일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이 밝힌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지명 이유다. 현재의 여소야대 국면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고심 끝에 내놓은 이균용 후보자의 임명동의 여부가 불투명하다.
국회 과반으로 대법원장 임명 거부권을 손에 쥔 더불어민주당의 비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오는 6일 국회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를 갖고 그 자리에서 이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에 대해 부결 당론을 정할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이를 당론으로 채택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여야와 대통령실이 내세운 키워드는 '국민'과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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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9월 26일 건군 75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밝히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5일 국회에서 당 정책조정회의를 갖고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후보자가 아닌 국민 눈높이에 맞는 좋은 후보를 보내달라"며 "부결된다면 이는 오롯이 부적격 인사를 추천하고 인사 검증에 실패한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이라고 윤 대통령에게 책임을 돌렸다.
대통령이 지명한 대법원장 후보자를 국회 표결로 거부하는건 민주당이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홍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부결 움직임에 대한 여당의 비판에 대해서도 이날 회의에서 "정부 여당과 일부 언론이 사법부의 공백을 언급하며 대법원장 임명동의 표결에 연일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며 "명백한 삼권분립 침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날 SBS 라디오에 출연해 "당론으로 정하지 않아도 부결될 가능성, 거의 뭐 부결될 것 같다"면서 "(민주당) 의원들 대부분의 생각이 굳이 당론으로 정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전날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적격 의견을 얘기한 의원이 한 분도 없었다"고 당내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맞선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대법원장 공백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라며 가결 처리를 촉구하고 나섰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당 최고위원회의를 갖고 "이전의 대법원장 후보에 비해 결격 사유가 특별히 더 크지도 않은데 민주당이 이 후보자의 임명에 한사코 반대하는 것은 어떻게든 정부·여당의 발목을 잡으려는 것"이라며 "대한민국 75년 헌정사에서 대법원장 임명만큼은 여야가 대승적으로 협력해왔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단 한 차례 뿐이었다. 노태우 정권 당시 1988년 정기승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됐다.
국회에서 168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이번에 부결시킨다면, 대한민국 헌정사에 또다른 역사를 새기게 된다. 어떤 해명을 내놓더라도 사법부 수장 공백 사태를 초래한 '당사자'가 된다.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은 국회법에 따른다.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내년 4월 총선에서 국회 과반을 차지하는 다수당이 바뀌지 않는한, 민주당의 계속해서 윤 대통령의 대법원장 후보자 지명을 비토할 수 있는 여건이다.
다만 이번과 같은 부결 움직임이 민주당에서 계속 있을 경우, 사법수장 공백 사태에 대한 책임은 물론이고 최소 3개월 이상 대법원장이 부재해 사법부 혼란을 초래하면서 신속히 재판을 받을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게 될 전망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한지 벌써 1년 5개월이 지났다. 정권 임기가 3년 반 남은 현 상황에서, 이번 대법원장 부결을 통해 여야와 정부간 대치 국면이 심화되는 것 또한 총선을 앞둔 민주당이 극한대립을 자초했다는 국민적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 최대 6개월 넘는 사법부 공백을 초래한 민주당 후보들을 엎어버려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
이 후보자는 1990년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부산, 광주, 인천 등 전국 각급 법원에서 판사와 부장판사로 재직했고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두 번 역임하는 등 32년간 재판과 연구에만 매진해 온 정통 법관이다.
이 후보자는 5일 기자단에 입장문을 보내 "사법부 공백이 길어질수록 전원합의체 재판, 대법관 제청, 헌법재판관 지명, 각종 사법행정과 법관인사 등 중요한 국가 기능의 마비 사태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사법부는 재판 지연 등으로 인한 신뢰 상실의 문제를 비롯하여 사법의 본질적 기능이 저하되고 있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며 "상고심 역시 대법관을 8명 이상 증원하는 방식 등으로 충실하면서도 신속한 심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적인 제도 개선을 약속드린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 이 후보자가 민주당의 비토로 결국 낙마하게 되면, 다음 대법원장 후보자 고심에 들어가야 한다. 여러모로 시간이 속절없이 흐를 전망이다. 민주당의 비토가 현실이 될 경우, 윤 대통령이 차기 후보자로 어떤 인사를 내세울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