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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우석 문화평론가 |
경제민주화는 우리시대 경제철학이자 국민정서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다. 포퓰리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정치권부터 그 점에 요지부동인데다가 대다수 국민도 그렇게 믿는 눈치다. 이런 상황에서 조만간 새 용어 하나가 추가될까 걱정이다.
경영민주화란 말이 그것인데, 언론이 요란하게 떠들어대는 롯데의 경영권 분쟁에 염증 난 나머지 그런 목표까지 가보자는 잘못된 여론이 등장하지 않을까? 경제민주화란 대기업 순환출자 규제나 골목상권 진출 금지 등을 뜻하는데, 경영민주화는 한 술 더 뜬다. 대기업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해 민주적 의사결정체계로 전환하자는 주장이다.
기업내부의 서열구조 타파, 노조의 기업경영 발언권 강화를 일부는 들먹이기도 하니 최악의 경우‘홍위병 식 기업’이 될 수도 있다. 경제학자 김종인, 장하준 등이 주창해온 이 말에 공감하는 이가 그리 많지 않았는데, 이번엔 사정이 또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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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 |
모두가 재벌 때릴 때 “아니올시다”외친 미디어펜
“돈 앞에서는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는 재벌의 민낯”을 까발리는 신문-방송 보도로 반(反)기업 정서가 한층 더 심해진 국민들 사이에 그게 올바른 해법이라고 덜컥 믿을 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 경영민주화에서 한걸음 더 나가 재벌-대기업 분할해체론으로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정도라면 자본주의 판을 엎자는 소리인데, 이런 뒤숭숭한 디스토피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지금 상황이다.
지금 모든 언론이 난리다. “국민 우롱하는 롯데 일가의 막장극”. 8월3일자 조선일보 1면 제목인데, 있는 사람들이 더한다는 한탄과 저주를 재촉할 뿐이다. ‘막장극’이란 냉소적인 용어는 이 신문에 지난주 이미 등장한 바 있다. “재벌가 피투성이 후계싸움 언제까지 인내해야 하나”(7월30일자 사설)가 대표적이다.
그럴까? 이런 게 과연 맞는 소리일까? 지금의 재벌 마녀사냥 속에 가장 균형 잡힌 목소리, 용기있는 소수의견은 미디어펜에서 나왔다. “롯데경영권 다툼, 언론이 호들갑을 떨 일 아냐”(김규태 기자)가 그것인데, 언론들의 롯데 때리기 논리란 케케묵은 조선조 성리학의 도덕적 잣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바탕엔 기업에 대한 몰이해가 깔려있다. 상식이지만, 기업이란 본래가 수직적 명령을 통해서 움직이는 게 고유한 생리가 아니던가? 때문에 “기업은 시장처럼 투명할 수 없으며, 민주화의 대상일 수 없다”는 게 경제학자 좌승희 박사의 논리다. (<경제발전의 철학적 기초> 96~97쪽)
주류경제학의 한계를 비판해온 대표적 학자인 그에 따르면, 경제를 모르니까 경제민주화를 떠들고, 기업의 메커니즘을 모르니까 경영민주화란 용어를 쉽게 들먹인다. 국내 언론도 그런 타성적 인식에 젖어 기업의 경영 분쟁 한복판에 뛰어들어 경마장식 보도를 일삼고, 기업에 대한 환멸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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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 신동주 전 부회장, 신동빈 회장 |
경제학자 좌승희“기업은 민주화의 대상 아니다”
하지만 기업 내부를 투명하게 만들고 내부구성원끼리 1인1표 식으로 민주화한다는 발상 자체가 기업가 정신에 대한 모독이라는 게 좌 박사의 확신이다. 생각해보라. 인적자원의 배분과 활용 그리고 보상 등 경영적 판단은 엄연히 CEO의 몫이다. 이익 창출이란 것도 바로 그런 불투명함 속에서 나온다.
위대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도 여기에서 갈라진다. 독재 스타일이니 뭐니 하지만,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도 그래서 위대한 기업을 일궈내지 않았던가? 그걸 몽땅 부정해서‘유리알 기업’을 만들겠다는 경영민주화란 자본주의를 하지 말자는 얘기와 뭐가 다를까?
국내 언론들은 삼성·현대·한진·한화·두산·금호아시아나·효성 등 거의 모든 재벌그룹에서 총수 일가와 형제들이 재산·경영권 다툼을 벌였다고 개탄한다. 스웨덴의 발렌베리그룹과 독일 BMW 등 선진국 가족 기업들은 오너의 경영권 참여를 제한한다는 말도 저들은 잊지 않고 전한다.
“롯데그룹 장남-차남 중 누가 더 경영을 잘할지는 누구도 예측 못합니다. 지금 경영권 다툼은 그걸 도출해내려는 노력인데, 실정법을 어기지 않는 이상 냉정하게 지켜보는 게 맞습니다. 삼성의 경우 3남인 이건희 회장이 예전 경영권을 이을 때 말이 많았지만 결과는 어떻게 됐죠? 발렌베리를 들먹이지만, 그들이 우리보다 더 뛰어난 모델인가는 또 따져봐야 하거든요.”
안철수의 유한양행 짝사랑은 왜 잘못인가?
지난 주말 좌승희 박사가 필자에게 해줬던 말인데, 경제문외한인 나도 쉽게 이해가 됐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이들이 경영민주화를 실천한 사례로 유한양행을 꼽곤 한다. 정치인 안철수도 한국사회를‘삼성동물원, LG동물원’이라고 비판하면서 유한양행을 대안으로 꼽은 바 있는데, 그 허접한 논리를 쥐 잡듯 한 게 한국경제 주필 정규재였다.
그는 3년 전 펴낸 단행본 <착한, 너무 착한 안철수>(기파랑)에서 일제하 창업해 지금껏 생존하고 있는 것만 해도 유한양향은 존경 받을 만하다고 밝혔다. 단 창업자가 사회공헌활동에 일찍 눈을 떴다는 것, 지금 그 회사가 오너 기업이 아니라는 것 외에는 기업의 탁월성을 인정할 수 없다.
자명한 얘기다. 40년 전만해도 당시 갓 출생신고를 한 삼성전자와, 일제 때 만들어진 유한양행은 유사한 사이즈의 기업이었다. 그러나 지금 삼성전자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 국내외에서 20만 명을 고용하며 사회적 기여를 한다. 현재 직원 1500명 수준에 연매출 1조 원에서 한참 미달하는 유한양행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다음은 정규재의 말이다.
“사회공헌이나 책임 부문에서는 (두 기업은) 더욱 비교가 안 된다. 삼성은 유한양행의 순이익보다 많은 연간 1400억 원 이상을 매년 사회공헌에 쓴다. 그런데도 한국의 얼치기 강단 좌파들은 그 반대를 가르친다. 오로지 소유주에 대한 적개심만을 선동해 왔다.”
걱정은 그 때문이다. 롯데 때리기에 매진한 끝에 경제민주화처럼 경영민주화도 헌법에 넣으라는 여론이 일면 어떻게 하지? 안철수 같은 삼류 정치인들이 유한양행을 경영민주화의 표본으로 제시하는 선동적 정치를 계속하면 어떻게 하지? 그나저나 세상을 어지럽히기만 하는 이 나라의 무책임한 언론을 대체 어떻게 하지? /조우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