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리스크 노출 확대로 금융안정 저해, 주거이동성도 낮춰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1853조원을 돌파했다. 정부의 특례보금자리론과 민간 은행권의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등이 최근 가계부채 폭증의 주범으로 떠오른 가운데, 국민의힘과 정부, 대통령실 등 '당·정·대 고위 협의회'는 지난 29일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연내 도입하고, 장기·고정금리 대출 확대를 유도하기로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장기 고정금리 주담대가 통화정책의 전달을 약화하고, 금융시스템의 금리리스크 노출 확대로 금융안정을 저해한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1853조원을 돌파했다. 정부의 특례보금자리론과 민간 은행권의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등이 최근 가계부채 폭증의 주범으로 떠오른 가운데, 국민의힘과 정부, 대통령실 등 '당·정·대 고위 협의회'는 지난 29일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연내 도입하고, 장기·고정금리 대출 확대를 유도하기로 했다./사진=김상문 기자


30일 한국금융연구원이 펴낸 금융브리프 논단 '장기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고찰과 제언'에 따르면 최근 시장금리 상승으로 주담대 대출자의 상환 부담이 커지면서 정부와 민간 금융권은 장기 고정금리 주담대 공급을 늘리고 있다.

정책모기지는 만기 동안 고정금리를 유지하는 반면, 민간 금융사의 주담대는 5년 고정금리 후 변동금리로 전환하는 혼합형 상품이 대부분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금리형태별 주담대 잔액 비중은 변동금리가 56.0%, 순수 고정금리가 25.7%, 혼합형이 20.9% 순으로 나타났다. 

금리추이에 따라 부채관리가 취약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에 정부는 민간 금융사가 공급하는 장기 고정금리 주담대 비중을 높이겠다는 입장이다. 금융권과 정치권에 따르면 당정대 고위협의회는 지난 29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만나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논의하고 변동금리 대출 비중을 낮추기로 합의했다. 

협의회가 나눈 내용을 종합하면 △변동금리 대출비중 개선 △스트레스 DSR 연내 도입 △이중상환청구권부채권(커버드본드) 등 조달 수단 활용도 제고 △서민·저가 주택에 특례보금자리론 집중 지원 △개인채무자보호법 입법 추진 등으로 추려진다.

특히 정부는 커버드본드 등의 활용도를 높여 장기·고정금리 대출 확대를 유도하기로 했다. 앞서 금융위원회도 민간 은행이 고정금리 주담대 공급 유인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가계부채 질적구조 개선을 위한 고정금리 대출 확대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금융연구원은 장기 고정금리 주담대 확대가 궁극적인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논단을 집필한 권흥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오히려 장기(30년) 고정금리 주담대가 시장의 주를 이루는 미국에서는 장기 고정금리 주담대가 통화정책 전달을 약화하거나, 금융안정을 저해하거나, 주거이동성을 약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각종 문헌을 인용해 고정금리 주담대가 오히려 역효과를 유발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우선 통화정책 파급효과를 약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변동금리 주담대가 주를 이루는 국가에서는 통화정책에 따라 대출금리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반면, 고정금리 주담대가 대부분인 국가에서는 금리 변동에도 대출자의 현금흐름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 사실상 통화정책이 큰 효과를 보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더불어 금융시스템의 금리리스크 노출을 확대해 금융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간 은행은 예금 등 단기 자금을 주로 활용하고 있어 단기금리에 연동되는 변동금리 주담대를 공급해야 하는데, 고정금리 주담대를 대차대조표에 보유하면 금리리스크에 취약해지는 까닭이다. 

아울러 저금리 시대가 도래하면 변동금리가 유리해지는 점도 있다. 통상 불경기가 도래하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추게 되는데, 이때 변동금리 대출자의 상환부담이 줄어들어 오히려 소비여력은 크게 개선된다는 설명이다.

이 외에도 고정금리 주담대가 사회 전반의 주거이동성을 감소할 수 있다는 점도 단점으로 꼽혔다. 

이에 권 연구위원은 정부가 장기적 안목으로 정책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우선 주담대 금리구조가 소비자의 경험에 기초한 수요에 큰 영향을 받는 만큼, 은행 등이 30년 이상의 고정금리 주담대보다 10~15년 등 중기 고정금리 주담대부터 적극 취급하도록 유인할 것을 당부했다.

또 변동금리 주담대로 발생하는 대출자의 현금흐름 리스크는 제도와 관행 변화로 보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금리에 따라 현금흐름이 유동적인 만큼 소비에도 영향을 주는 게 당연한데, 최근의 부채 위험은 '빚투(빚내서 투자)·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족'의 무리한 대출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출자별 DSR 산정 예외 적용을 최소화하고, DSR 산정 시 금리 상승을 고려한 '스트레스 DSR'를 도입하라고 제언했다. 궁극적으로 대출자의 상환능력을 산정할 때 세금, 생활비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하도록 규제를 정비하고, 금융사의 영업 관행을 고쳐야 한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비전통적 주담대도 확대할 것을 제언했다. 가령 경기순환에 따라 만기를 조정하거나 고정금리를 변동금리로 바꿔 월별 상환금액을 조정하는 '약정'을 사전에 체결하는 식이다. 주택가격지수 등 시장 상황에 따라 상환조건을 변화시키는 주택가격지수 연계 모기지 등도 대안으로 꼽았다. 

비전통적 주담대가 기존 모델보다 복잡하지만, 지나친 빚투와 영끌 등 레버리지 투자를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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