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간 사용된 부영빌딩 옆 보행통로, 일방적 폐쇄 통보
"손님 유입량 급감할 것…대피로 사라져 안전 문제 야기"
인근 상인 의견수렴 절차 無…중구의회 "졸속행정" 비판
[미디어펜=김준희 기자]“코로나도 간신히 견뎠는데 또다시 날벼락이네요. 50년 동안 아무 문제없이 사용한 길을 하루 아침에 폐쇄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 서울 중구청 부영빌딩 인근 공공보행통로 폐쇄 결정을 두고 상인들이 현수막을 걸어 항의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김준희 기자


서울 중구 부영빌딩 지하상가에서 8년째 음식점을 운영 중인 A씨는 연신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8일 찾은 부영빌딩 인근 도로 및 보행로에는 현수막이 즐비했다. ‘점포인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일방적인 통행로 폐쇄 결사반대’, ‘50년 넘게 사용한 통행로 폐쇄 결사반대’, ‘우리 빌딩 재난 재해 대피통로 확보하라’ 등의 내용이었다.

A씨의 한숨은 부영빌딩 후문 부출입구로 활용되는 공공보행통로가 느닷없이 폐쇄 통보를 받으면서 비롯됐다.

통보 주체는 서울 중구청이다. 중구청은 부영빌딩과 맞닿아 있는 서울시 공영주차장 부지에 11층 규모 소공동 행정복합청사를 건축하기로 했다. 서소문구역 제11·12지구 사업시행자가 해당 부지에 청사를 건립 후 기부채납하는 형태다. 그러면서 이달 착공과 함께 부지를 둘러싸고 있는 바로 옆 통로를 폐쇄한다고 밝혔다.

   
▲ 중구청은 소공동 행정복합청사 건립 추진과 함께 부영빌딩 인근 공공보행통로를 이달 폐쇄한다고 통보했다./사진=미디어펜 김준희 기자


부영빌딩 후문과 연결되는 이 통로는 건물 지하상가로 바로 이어져 오랫동안 외부 수요 유입 역할을 해온 상인들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이곳 일대는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인근 직장인들로 붐빈다. 지하상가에 들어선 식당 입장에선 이 길이 주통로인 셈이다.

그러나 급작스런 통로 폐쇄 결정으로 인해 지하상가 상인들은 사실상 가게 입구가 막힐 위기에 몰리게 됐다. 게다가 건물이 올라가게 되면 그나마 유일한 홍보 수단이었던 외부 간판마저도 가려지게 된다.

A씨는 “이 통로가 빌딩 후문 출입구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낙수효과로 인해 손님들이 지하 1층까지 찾아오는 것”이라며 “여기가 막히면 지하상가는 완전히 쓸모가 없어진다. 손님 유입량이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고 한탄했다.

이어 “손님들도 플래카드를 보고서는 ‘무슨 일이냐’고 물어본다”며 “‘통로가 막힐 것’이라고 얘기하니 ‘막히면 불편할 것 같다’고 많이 얘기한다”고 덧붙였다. 상인들은 이곳 일대 유동인구가 하루에 1만5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 길기영(가운데) 서울 중구의회 의장이 부영빌딩 인근 통로 폐쇄 현장을 방문해 점포 상인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김준희 기자


더 큰 문제는 안전이다. 해당 통로가 막힐 경우 부영빌딩 입주사 및 직원들은 화재 등 재난·재해 시 대피로를 잃게 된다. 소방차가 들어갈 길도 막히게 된다. 현재 부영빌딩에는 34개사가 입주해 있으며 직원들은 6000여명으로 추산된다.

뒤쪽 골목으로 이어지는 샛길이 있긴 하지만 폭이 좁아 대피로 및 소방차 진출입로로 활용하기에는 부적절하다. 실제 현장을 확인해 보니 샛길에는 주차된 차를 비롯해 인근 식당에서 활용하는 부자재 등이 놓여 있어 차량 통행은 어려워 보였다.

이렇듯 상인들에게는 생존과 직결될 수 있는 문제를 중구청과 시행사 측은 한 마디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해 통보했다.

A씨는 “(통로 폐쇄 사실을) 불과 20여일 전인 10월 말께 알게 됐다”며 “저희는 세입자이기 때문에 직접 내용을 전달받지도 못했다. 관련 사전 협의 및 의견수렴 절차도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 길기영(가운데) 서울 중구의회 의장을 비롯한 위원장들이 인근 점포 상인 및 부영빌딩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김준희 기자


중구청 고시에 따르면 해당 청사 건립과 관련해 지난해 12월 주민설명회 및 설문조사가 진행됐다. 그러나 이는 소공동 주민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정작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부지 인근 상인들과는 어떠한 의견 교환 절차도 없었다.

A씨는 “속상하다”며 “현장에 찾아와서 대화 시도라도 했으면 저희도 그쪽 입장을 듣고 절차대로 가려고 했을 거다.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불과 20여일 전에 통보하는 식의 밀실 행정에 화가 난다”고 토로했다.

이날 상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방문한 서울 중구의회 측도 ‘졸속행정’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길기영 서울 중구의회 의장은 “기부채납에 따른 예산 절감 효과만을 기대하고 주민 편의는 고려하지 않은 채 애로사항에 대해 귀담아 듣지 않았던 부분이 졸속행정의 교과서”라며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인근 점포 상인들과 건물 내 상주 중인 직원들의 보행권, 통행권, 생존권 등과 관련해 이러한 문제점이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사업자 측과 만남을 비롯해 다각도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미디어펜=김준희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