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최인혁 기자]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협력이 한반도에 중대한 안보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국군 정신전력 강화를 추진하며 무형전력 증강에 매진하는 중이다. 하지만 국군 정신전력을 담당하고 있는 국방정신전력원이 최근까지 '유람' 성격이 짙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으로 확인돼 정부의 정신전력 강화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근 국군은 신원식 국방부장관 취임 후 군 정신전력을 담당하는 정훈병과 역량 강화에 힘을 싣고 있다. 국방부에 정신전력과를 만들고 현역 대령을 과장으로 보직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정신전력 조직 확대 개편이 대표적 사례다.
또 문재인 정부에서 ‘공보정훈’(公報正訓)으로 변경됐던 병과명을 정훈(政訓)으로 환원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진다. 거듭되는 안보 위협에 군의 정신전력 강화로 대응하겠다는 의도다.
|
|
|
▲ 국방정신전력원이 '유람' 성격이 짙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교육 예산을 성산일출봉과 같은 제주도 주요 관광지 입장료로 사용한 것이 확인돼 교육 프로그램에 전반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자료사진)/사진=미디어펜 |
그러나 미디어펜 취재에 따르면 무형전력 강화에 앞장서야 할 국방정신전력원이 정부의 방침과 어긋난 유람성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방정신전력원(원장 윤원식)은 1977년 국군 정신전력 강화를 목적으로 창설된 '국군정신전력학교'를 모체로 한다. 주요 임무는 군 장병 정신 교육을 담당하는 정훈장교 및 부사관 양성이며, 정신전력 강화를 위한 교육자료 개발과 연구 등을 수행한다. 2016년부터 국방부 직할 부대로 개편돼 국군 무형전력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국회 국방위원회·경기 화성시갑)을 통해 확보한 ‘국방정신전력원 고군반 교육 운영 프로그램 현황’에 따르면 국방정신전력원은 최근 3년간 4박 5일 일정으로 제주도 안보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으로 확인된다.
매년 2회 진행된 제주도 안보견학에는 회당 평균 25명의 정훈장교들이 참여했으며, 항공료를 제외하고 700여만원의 예산이 집행된 것으로 파악된다.
|
|
|
▲ 송옥주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국방정신전력원 고군반 교육 운영 프로그램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제주도 안보 견학에 편성된 국방정신전력원의 교육 예산 일부가 관광지 입장료 등 유람 성격으로 사용된 것으로 확인된다./사진=미디어펜 |
문제는 안보견학이라는 취지와 달리 교육 목적으로 편성된 예산이 '유람'의 성격으로 사용됐다는 것이다.
국방정신전력원이 올해 국정감사 기간 송옥주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제주도 안보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유에 대해 항일 유적지 등 안보현장을 방문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주 교육 콘텐츠는 병과학과 일반학으로 구분해 국가안보, 전술, 현장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안보견학 시 사용된 예산 내역을 분석해 보면 이들은 안보견학 일정 동안 제주도 내 아르떼뮤지엄, 자연휴양림, 성산일출봉, 제주곶자왈도립공원, 제주돌문화공원, 천제연폭포, 마라도, 우도 등 안보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유명 관광지 방문에 예산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된다.
국방정신전력원이 명시한 안보현장 방문이라는 목적과 달리 출장비와 예산으로 제주도 유람을 병행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국방정신전력원이 안보관 교육을 명분으로 예산을 편성해 사실상 제주도 여행을 즐겼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야전 출장비 실지급률 66.2%인데…상대적 ‘박탈감’ 유발에 군 내부에서도 쓴소리
군 관계자에 따르면 군 고군반 교육과정에서 제주도 견학이 이뤄지는 사례는 이례적인 것으로 알려진다. 출장비용과 안보견학이라는 취지를 고려할 때 관광지인 제주도가 선택지에 포함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최근 4년 내 고군반 교육을 수료한 군 관계자 A 씨에 따르면 “(우리 병과에서는) 제주도로 안보견학을 간다는 것을 상상도 못해봤지만, 아르떼뮤지엄 같은 관광지가 안보와 무슨 상관이 있어 방문했는지는 더 납득이 안 간다”면서 “안보현장 방문을 핑계로 여행을 간 것으로 생각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안보의식을 고취하려면 주적이 있는 최전방을 찾아야지 왜 최후방이자 관광지로 유명한 제주도를, 또 관광명소를 가느냐”면서 “제주도 관광비를 예산으로 보존해 준 격”이라고 덧붙였다.
더불어 군 무형전력을 강화해야 할 정훈장교들이 부적절한 예산 사용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야기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전방 부대에서 복무 중인 군 관계자 B 씨는 “현재 야전에는 출장비가 부족한 상황으로 업무를 위해 사비를 사용하는 경우도 잦다”면서 “아무리 교육기관이라지만 업무에 사비를 쓰는 판국에, 출장비와 예산으로 제주도를 간다는 말에 박탈감이 들 수밖에 없다. 군 생활에 회의감이 들 정도”라고 비판했다.
실제 올해 5월 한기호 국회 국방위원장실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초급간부들의 군수여비 실지급률은 66.2%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야전부대에서는 출장비를 지급할 예산이 부족해 임무 수행에 상당 부분 사비가 지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군 무형전력의 중추인 국방정신전력원이 매년 1400여만원의 예산을 편성해 제주도를 방문하고, 일부 예산을 관광에 사용하고 있는 것이 적절한지 교육 프로그램의 전반적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국방정신전력원 관계자는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교육 프로그램이 유람의 성격을 갖추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제주도라는 장소가 관광지라는 인식이 있어 그런 우려가 있을 수 있다”면서 “제주도는 6·25 전적지, 일제강점기 저항의 역사 등 안보견학지로서 가치가 있는 곳”이라며 “교육목적에 따라 안보현장 견학 간 항일 유적지, 항몽 유적지 등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를 방문 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안보와 무관한 유명 관광지를 방문한 이유에 대해서는 “당시 담당자가 문화 탐방을 포함시켜보자는 의미로 방문하게 된 것 같다”면서 “올해는 안보현장이라고 하기 어려운 장소는 방문하지 않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미디어펜=최인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