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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근 선문대 교수 |
한국 경제의 위기를 진단하는 소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여러 전문기관들이 내 놓은 경제전망 수치들도 우울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나마 지난 몇 년간 한국경제를 지탱해 왔던 휴대폰, TV 같은 단말기 시장에서도 일방적 독주시대가 마감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미 ‘대륙의 실수’라고 하는 샤오밍을 필두로 한 중국 기업들이 턱밑에까지 와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정부는 IT 정확하게 말하면 IT 제조업 환상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현 정부는 집권초기부터 ICT 분야를 침체된 한국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구세주가 될 것이라고 장담해왔다. ‘창조경제’라는 거창한 슬로건과 함께 ICT산업이 오랫동안 침체되었던 경제성장의 불씨를 다시 살리고, 고질적인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신의 한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IMF 구제금융 직전 반도체 수출 호황에 기둥뿌리 섞는 것 몰랐던 것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집권 3년차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그렇게 공들여 온 ‘ICT 창조산업’들이 우리 경제를 회복시키고 많은 좋은 일자리를 창출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수치상으로 외형적 실업률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창조경제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일자리들이 제대로 된 ‘창조 일자리’인지 혹은 정말 ‘좋은 일자리(decent work)’인지도 여전히 의문이다. 혹시 수치에 매몰되어 정부와 공공기관들이 양산한 비정규직 임시직들만 늘어난 결과는 아닌지 면밀히 살펴볼 일이다.
여기서 ‘창조경제’의 중심에 있는 IT산업이 고용창출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IT산업이 처음 시작되었던 선진국들에서는 ‘IT가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잡아먹는다’는 이른바 냉소적인 ‘반기계주의(luddism)’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는 점이다.
마치 1970년대 정보사회 초기 제기되었던 컴퓨터 같은 정보기술들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해 실직자나 단순 육체노동자로 전락시키게 될 것이라는 ‘탈숙련(deskillng)’ 현상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더구나 ‘저비용-고효율’을 지향하는 신자유주의 경제패러다임에서는 더욱 그렇다. IT 기술은 기업의 경영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도구로서 인식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정부처럼 ‘성장’위주의 경제정책 패러다임 아래서 IT산업은 고용창출과 더욱더 대척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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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오전 창조경제혁신센터장 및 지원기업 대표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사진=청와대 홈페이지 |
실제로 2000년대 들어 영국을 비롯한 일부 선진국들이 추진했던 성장위주의 ‘창조산업’의 결과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때 미국의 창조산업은 전체 GDP의 11.9%를 차지하기도 했고, 디자인 창조산업 바람을 일으켰던 영국은 높은 부가가치 성장과 고용창출 효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때문에 창조산업은 경제성장의 핵심동력으로 생각되었고, 향후 경제구조를 본질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도화선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2008년 국제금융위기 이후 이 같은 기대는 거품처럼 무너져버렸다. 2007년에 200만명을 넘어섰던 영국의 창조산업 종사자는 2010년에 149만명으로 추락했고, 기업수도 15만7천개에서 10만개 수준으로 떨어졌다. 고용률 감소 역시 전체 고용율 5%보다 높은 7%나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 역시 비슷하였다. 이른바 ‘창조 장벽(creative block)’에 빠져 버린 것이다. 창조산업이 성장 주도산업으로서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여전히 창조산업은 전체 경제상황에 크게 영향 받는 종속적 산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창조 장벽에 빠지면서 가장 심한 충격을 받은 분야가 바로 방송과 프로그램 제작 그리고 광고같은 방송연관분야들이라는 점이다. 영국의 방송콘텐츠 제작 종사자는 창조 장벽에 빠지면서 불과 2년 사이 23%나 감소되었다.
같은 기간에 미국의 방송관련 제작산업 종사자 숫자도 8.65%나 감소했다. 이는 정부가 내세우는 ICT 즉, 창조산업들이 아직도 독립된 산업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때문에 창조산업 혹은 창조경제를 통해 전체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고용을 획기적으로 창출한다는 정책목표 자체가 근본적으로 틀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경제패러다임이 변화된다고 해도, 상당 기간 아니 어쩌면 영원히 ICT 콘텐츠 산업이 전체 산업을 주도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도리어 전반적인 경제 활성화가 이러한 창조산업을 견실하게 만드는 독립변수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처럼 전통적인 기간산업들의 성장 동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창조경제라는 이름으로 창조적 일자리를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것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창조적일 수도 없다. 청년들이 일하기 좋은 일자리는 특정 분야가 아닌 경제 전반에 걸친 동력이 활성화될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황근 선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