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은행 판매 과정서 적합성 여부 점검
[미디어펜=백지현 기자] 홍콩H지수와 연계 주가연계지수 상품(ELS)의 대규모 원금손실 가능성이 커지면서 금융당국이 판매사인 은행들의 ELS 판매 과정에서 적합성 여부에 대한 점검에 나섰다. 은행들은 관련 상품 판매를 잇따라 중단하고 불완전판매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에 대비해 관련 대책을 검토중이다.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28일 기자들과 만나 “최근 일부 은행에서 ELS 관련해 소비자 피해 예방 조치를 마련했다고 말하는 건 자기면피로 들린다”며 은행권의 ELS 무분별 판매를 비판했다./사진=금융감독원 제공.


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국내 5대 시중은행에서 판매한 홍콩H지수 연계 ELS 중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돌아오는 판매 잔액은 8조4100억원으로 추정된다. H지수가 지금보다 20~30% 오르지 않으면 만기 도래 시 3~4조원 대의 원금손실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ELS는 주가지수 등의 등락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파생상품이다. 2021년 이후 홍콩H지수는 50%가량 급락했다. 2021년 2월 1만2000선을 넘었던 홍콩H지수는 최근 6000대에서 등락하고 있다. ELS 만기가 통상 3년임을 고려하면 2021년 판매된 홍콩H지수 연계 ELS의 만기가 돌아오는 내년부터 대규모 손실이 예상된다.

이를 판매한 시중은행들은 상품판매 중단과 함께 불완전판매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에 대비해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관련 대책을 검토 중이다. 농협은행은 지난달 ELS 상품판매를 전면 중단했다. 주가연계 파생상품 중에는 원금 보장이 가능한 주가연계 파생결합사채(ELB)만 판매 중이다. 은행권에서 ELS 판매 중단 조치를 내린 것은 농협은행이 처음이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지난달 전국 각 지점에 손실 발생 우려가 커지고 있는 ELS 상품과 관련해 판매를 중단하라는 공문을 내려 보냈다”면서 “현재 주가연계 파생상품 중에는 원금이 보장되는 주가연계 ELB만 판매하고 있으며, 지수가 회복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관련 TF를 구성해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은행도 지난달 30일부터 H지수 ELS 상품판매를 중단했으며, 하나은행은 오는 4일부터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펀드(ELF)와 주가연계신탁(ELT) 상품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중국을 포함한 금융시장 전망과 타 금융기관 동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현재 상황을 점검하고 있고, 향후 판매 방향을 정하고자 판매를 잠정적으로 중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우리‧신한은행은 지난해부터 홍콩H지수 편입 ELS 판매를 중단했다.

금융당국은 판매사인 은행을 상대로 현장조사에 나선 가운데 은행들이 ELS 판매 과정에서 적합성이 지켜졌는지 살펴보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지난 달 20일부터 KB국민은행을 대상으로 현장 점검에 나서는 한편 나머지 시중은행에 대해서도 서면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28일 기자들과 만나 “최근 일부 은행에서 ELS 관련해 소비자 피해 예방 조치를 마련했다고 말하는 건 자기면피로 들린다”며 “ELS라는 고위험·고난도 상품이 다른 곳도 아닌 은행 창구에서 고령자들에게 특정 시기에 고액이 몰려 판매됐다는 것만으로 적합성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ELS의 상품구조를 노령소비자, 금융투자 상품 경험이 없는 소비자에게 짧은 시간 이해시키는 것이 가능한지 자체도 고민해볼 지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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