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이다. 기자 정신을 위배한 것이다”

이번 KBS 도청의혹 사건은 그 해당 기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KBS를 포함한 모든 언론사 기자들이 국민이 부여한 기자정신에 부합해서 양심적으로 하고 있는지 각자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기를 바라는 차원에서 미디어펜은 국회출입기자들의 목소리를 가감없이 싣는다. (편집자 주)




지난 달 26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의 ‘KBS 도청의혹’과 관련된 자체적 설문조사 결과 발표는 지난 1달여간 국회출입기자들 사이에서 퍼졌던 소문들과 맥락을 같이했다. 국회 출입기자들 대부분은 “KBS 기자가 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이다. 기자 정신을 위배한 것이다”는 분위기였다.

미디어펜은 국회에 출입하는 기자들과 몇 명의 방송기자들에게 “지금 현재 KBS 도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진솔한 입장을 물었다. 대부분 기자들은 “해서는 안되는 일을 했다. 기자가 기자인 것은 국민을 위한 독립성인데,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은 직장이라는 것이다. 기자이길 포기한 것이다. ”고 냉혹한 잣대로 평가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 노보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 노보


시켰다고 시키는 대로 하면 안돼죠.

A기자는 “국회 출입기자들은 대부분 KBS 기자가 했다고 알고 있었다”면서 “위에서 시킨다고 무조건 충성맹세를 하면서 하는 것은 기자이길 포기한 것이고, 직원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사익을 위해서 그 일을 성사시키고, 직장 간부의 마음에 들까만 생각한 것이다”고 비판했다.

또한 “위에서 시킨다고 해도 해야 될 일이 있고, 양심적으로 그 일을 거부해야하는 일이 있다”면서 “기자는 명령에 복종하는 검찰도 아니고, 경찰도 아니다. 국민을 위해서 의식을 가지고 판단하는 독립적 기자이다. 시키는대로 하면 그것은 기자가 아닌 것이다”고 말했다.

도덕 불감증이 문제죠. 그렇게 입수한 자료를 넘겨서는 안될 사람에 넘긴 것이 기자정신을 배신한 행위죠. 그 기자는 기자가 아닙니다. 일 잘하는 직장인이죠.

B기자는 “사건이 터진 초기에 KBS에서 했다는 소문이 국회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파다하게 퍼졌다”고 국회출입기자들사이의 분위기를 전했다.

“취재원칙에 있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지요. 벽치기와 쓰레기통 뒤지기는 기본 원칙입니다. 그런 취재기법을 들어보면 기자로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취재기법이 아니라, 그렇게 수집한 정보를 한선교 의원에게 넘겼다는 것이지요.

취재기법까지는 기자들끼리는 용납할 수 있어도 그렇게 얻은 정보를 가지고 회사를 위해서 했다면 국민을 위한 취재가 아니라, 회사를 위한 도청에 해당한 것이지요.”

그는 속에 있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놨다. 그는 “KBS 자체적으로도 막내 기자를 죽여라는 내부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고 들었다”면서 “막내 기자의 문제라기 보다는 KBS 경영진에서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고,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면서 사건이 전체 언론으로 확대됐고, 기자들 사이에서 KBS 기자들에 대한 기자정신을 비판하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애초에 진실을 밝혔어야 하는데 사태를 키운 게 문제였습니다. 수수방관하면 끝날 것이라고 KBS 경영진이 판단한 게 문제의 화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빨리 오랫동안 기자들이 기사를 쓸 줄은 몰랐겠죠."라고경영진의 대응을 비판했다.

그는 또 "KBS는 수신료를 인상해달라고 국민에게 요구하기전에 국민을 위한 기자정신부터 갖추고 있는 지 그것이 순서상 합당한 절차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이 요구하는 도덕성도 갖추지 않고, 국민에게 수신료를 요구하는 것은 국민을 향한 언론적 직무유기"라고 주장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 노보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 노보


정연욱 KBS 기자의 입장 발표

정연욱 KBS 보도국 기자(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소속)는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 노보 제46호를 통해 실명으로 ‘머리만 땅에 묻는 타조가 되라하네’라는 제목으로 ‘KBS 도청에 대한 글’을 게재했다. 그 중 핵심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KBS 윤리강령은 그 전문에서 공사의 사회 환경에 대한 비판과 감시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다른 언론인보다 더 엄격한 직업윤리와 도덕적 청렴까지 요구하고 있다. KBS의 많은 구성원들은 회사가 이처럼 사원들에게 요구한 높은 수준의 사명감을 지키기 어려워진 상황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공영방송에 몸담은 언론인이 딛고 있어야할 윤리적 기반이 흔들린데 대해 경영진보다 먼저 슬퍼했다. 이 상황을 심각한 위기로 받아들였고 명확한 해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KBS 경영진은 결국 이 정당한 의구심에 단 한마디의 대답도 내놓지 못했다. 이쯤 되면 정작 위기를 부추기고 있는 것은 어느 쪽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위기에 맞서려는 사람들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있다. 맹렬히 달려오는 맹수를 발견하고 목 놓아 소리치는 쪽을 향해, 우습게도 머리를 땅속에 파묻는 타조가 될 것을 설득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타조보다 현명한 우리는 머리를 파묻은 타조의 말로末路를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이 참담한 자화상을 어찌 받아들여야할까. ‘슬픔도 노여움도 없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19세기 러시아 시인 네크라소프의 절망이 21세기 대한민국의 KBS 안에서 다시 한번 메아리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