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골목을 인수분해하라!!!

KBS의 ‘걸어서 세계속으로’ 여행 프로그램은 여행 매니아들이 즐겨보는 방송이다. 시청자 게시판을 확인하면 금방 알 수 있다. 매니아가 많은 관계로 ‘요구사항’도 많다. 나레이션 부분과 배경 음악에 대한 질문이 상당수다.

이은혜 시청자는 시청자 게시판에서 “매주 토요일 오전마다 늦은 아침을 먹으면서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시청한다”면서 “엄마와 함께 밥먹고, 커피한잔 하면서 즐기는 프로그램이다”고 적었다. 또 이은혜씨는 “가는 나라마다 독특한 문화와 아름다운 경치들을 안방에서 볼 수 있어 너무 행복하고, 나레이션도 마음에 든다. 너무 정신없이 설명하는 것보다 오히려 여행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고 평가했다.

◆ ‘걸어서 세계속으로’에 들어가다

말로만 듣던 ‘걸어서 세계속으로’ 프로그램을 직접 시청해봤다. 지난 8월 6일 ‘천사, 자유를 달다 로스앤젤레스’ 편이다. 촬영글연출은 현상윤 PD가 했고, 그는 “올해로 235번째 독립기념일을 맞은 미국. 미국 독립기념일은 7월 4일로 미국이 독립 선언을 한 날이다”고 담담하게 시작했다.

왜 매니아들이 생겼을까 그 물음의 해답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시청자들의 눈이 되어서 독특한 연출로 세계 속 문화, 인간, 생활, 모습들을 담아냈다. 촬영기법도 지루함이 없고, 나레이션이 중간 중간 개입하면서 착실한 표지판 역할을 했다. 꼭 옆에서 대화하는 식이다.



가령, 길을 가다가 영화 촬영장을 만나면, “나는 길을 가다가 우연히 영화 촬영장을 만났다. 길을 멈추고, 시선을 집중했다”는 멘트와 함께, 영화 촬영 현장이 5~6 장면이 보여진다. 그런 후에 그곳 현지인의 목소리가 담긴 장면도 나온다. 그 옆에 맛좋은 식당이 보이면, “맛이 있어 보인다. 먹어보기로 한다.”면서 식당속으로 앵글이 쑥 들어간다. 시청자로서 식당에 꼭 들어가서 앉아있는 느낌이 들게 했다.

역사적 박물관이 나타나면, 입구에서부터 그곳을 걸어가듯이 순차적으로 앵글이 움직이고, 내부 뿐만 아니라 그곳의 실제 방문객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객관성 뿐만 아니라 주관적인 입장에서 느낌도 빼놓지 않고 자세히 담아냈다. 표현기법은 ‘일기형식’으로 “했다. 한다”는 형식이다.

◆ 뒷골목을 인수분해하라!!!

이석진 CP와 통화를 했다. 이 CP는 “팩트 여행에서 자유 여행으로 전환”이라고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그는 “여행의 본질은 발길 닿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가는 것이다. 걸어서 세계속으로 프로그램은 담당 PD가 여행지 선정, 촬영, 편집, 원고작성 등 방송제작을 1인이 모두 하는 것이다”면서 “이 프로그램의 진짜 매력은 여행의 뒷골목을 담는 것이다”고 자랑했다.

‘골목의 인수분해’라는 독특한 명제가 나왔다. 이 CP는 “다른 여행 프로그램과 다르게 ‘걸어서 세계속으로’는 전면을 30% 담고, 뒷골목을 70% 담는다. 골목속에 들어가면 일반 여행자들이 못 본 곳이 나온다. 그곳에 사람냄새가 있다. LA에 다녀온 여행자들이 이 프로그램을 보는 목적은 여행할 때 못 본 장면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담당 PD가 발품을 팔아서 뒷골목 깊숙이 들어가서 촬영을 하고, 현지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곳의 삶과 풍습이 어떤지 담아내기 때문에 방송 매니아층이 두텁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 여백으로 여행하게 하라!!

‘걸어서 세계속으로’의 차별화된 전략은 ‘정보전달’에서 ‘여백의 미’로 전환한 데 있었다. 통상 여행 프로그램들이 현지의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편집된 경우가 많은데, 이 프로그램은 그러한 정보주입방식을 배제한다는 것이다. “될 수 있는 한 멘트를 간결체로 짧게, 팩트와 느낌을 적절하게, 시청자로 하여금 여행자로서 상상의 발길을 뻗을 수 있게”가 이 프로그램의 주 편집방향이었다.

이 CP가 말한다.

시청자들이 훨씬 명석합니다. 대부분 프로그램은 제작자가 아는 것을 강요하는 편집을 합니다. 제작자가 자신이 아는 방향으로 시청자를 움직이게 하려고 합니다. 토요일 오전 9시 40분에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서 담당 PD가 자신이 나는 정보로 이야기 하려고 한다면 시청자들은 금새 지루함을 느낍니다. 걸어서 세계속으로 기본 컨셉은 ‘여백의 미’입니다. 시청자에게 어떤 정보를 주입하려고 설명을 장황하게 하면 영상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음악이 살아나는 이유는 오미자 음악감독의 특별한 능력과 더불어 압축된 설명에 있습니다. 나레이션 없이 영상으로 쉬어가기 때문에 음악이 들리고, 영상이 보이고, 시청자는 편안하게 자유의 상상력을 뻗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과잉된 정보를 주입할 이유가 없습니다. 궁금한 부분이 있다면, 네이버 검색란에 입력하면 1분이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본질은 시청자로 하여금 꿈과 상상력의 날개를 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 시청자들의 반응, ‘애정’ ‘민감’

‘걸어서 세계속으로’의 시청자 게시판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프로그램이 정말 좋고 감사하는 의견, 또 하나는 배경음악이 무엇인지 꼭 알려달라는 의견, 마지막 하나는 나래이션을 교체해달라는 의견이다.

조은경 시청자는 “매주 토요일 오전에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애청하고 있는 시청자이다”면서 “분주한 일상속에서 5일을 지내고 난후 주말 아침 만나는 이 프로그램은 건조함 가득한 일상에 단비와 같은 존재이다. 한 시간 가량 프로를 시청하고 있노라면 어느샌가 걸어서 세계속의 여행지의 여행객이 되있곤 한다”고 프로그램을 칭찬했다.

또 김정훈 시청자는 “이 좋은 프로의 시간대가 이게 뭐냐”면서 “빨리 평일 좋은 시간대로 바꾸길 원한다. 다른 쓸데없는 다큐같은 건 주말에 버젓이 하는데 세계관이 넓어지는 좋은 프로그램을 이런 시간에 숨겨놓다니 말이 안된다”고 적었다.

김현숙 시청자는 “걸어서 세계속으로의 오랜 애청자다”면서 “정말 오랫동안 애청자로서 깊은 애정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요 근래는 나레이션 때문에 프로그램을 보는데 좀 방해가 되고 있다. 나레이션에 민감한 편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이야기한다. 이런 나레이션은 아름다운 영상을 살리지 못하는 나레이션이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