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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우 기자 |
인간의 심리에는 특이한 구석이 있다. 69주년보다는 70주년이 되면 뭔가 더 들뜬다. 광복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인들의 심리는 어딘지 모르게 상기돼 있다. 그럼으로써 민족(民族)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보다 충실히 이행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순 없을지 모른다.
허나 광복절이 평소에 가지고 있던 반일(反日) 감정을 보다 떳떳하게 드러내놓는 날로 자리를 잡는다면 그건 좀 다른 문제가 된다. 우리에게 빛[光]을 앗아갔던 20세기 초반의 일본을 지금의 일본과 혼동하고 있는 국민들의 감정은 집권 3년차의 대통령이 아직까지 이웃나라 일본의 수상과 한 번도 정상회담을 하지 않는 결과로 이어졌다.
현재 일본의 정치라고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것 같지는 않다. 한국과 일본은 democracy를 민주주의(民主主義)라고 번역하고 있다는 기이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민주정’ 정도로 번역했어야 할 정치체제를 하나의 이념(ism)화 하는 순간 양국의 정치수준에 대해서도 큰 기대를 할 수 없어진 건지 모른다. 결국엔 양국 국민들 개개인에 기대를 걸어볼 수밖에 없지만, 어떨까. 일본을 이성적으로 바라보기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일본 문제에 대한 참신한 시각을 던져보려는 학자들의 시도에는 늘 눈길이 간다. ‘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교수의 용기 있는 걸음걸음에는 이제 용사(勇士)의 아우라마저 풍겨 나온다.
오늘은 또 다른 학자의 이름을 거명해 보고자 한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김시덕 교수다. 1975년 출생의 소장 학자인 그가 2012년 펴낸 책 ‘그들이 본 임진왜란’에서 ‘그들’이란 근세의 일본을 의미한다. 근세의 일본에는 이미 서점이 있었고 ‘베스트셀러’도 있었다는 점부터가 일단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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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본 임진왜란' 표지 |
이 책은 근세의 일본인들이 주로 읽었던 책들에서 드러난 임진왜란의 정황을 일본인들의 기준에서 재구성해보는 참신한 시도로 진행된다. 에도 시대의 베스트셀러 오제 호안의 ‘다이코기’, 하야시 라잔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보’, 호리 교안의 ‘조선정벌기’, 18~19세기의 베스트셀러 장편소설 ‘에혼 다이코기’ 등이 참고자료로 쓰였다.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발상의 전환은 임진왜란이 단순한 조-일간 전쟁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한국인은 대체로 임진왜란을 '왜구라는 도적 집단이 일으킨 한때의 난리'라고 이해한다. 하지만 나라 밖으로 눈을 돌리면 임진왜란은 동북아시아 역사의 한 시기에 여러 국가들이 한반도에서 대규모로 충돌한 국제 전쟁이었다." (머리말)
한반도에서 일어난 국제전이었다는 점에서 임진왜란은 ‘16세기판 6·25 한국전쟁’이었다는 가설이 성립된다. 6·25가 그랬듯 임진왜란은 관련된 국가들의 정치상황을 불가역적으로 바꿔놓는 나비효과를 발생시키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가해자’라는 건 이미 하나의 항등식이 돼버렸지만 근세에는 오히려 상황이 반대였다는 점도 재미있다.
“우리는 사무라이, 가미카제 등 일본의 전통적 문화와 제국주의 침략 과정에서 보인 호전적 풍토에 대해 강렬한 인상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전근대 일본인들의 기억 속에는 한국·중국으로부터의 침략에 대한 피해의식과 이에 대한 저항의식이 깊숙이 존재한다. 그리고 일본인의 이러한 피해의식·저항의식을 만들어낸 계기가 바로 13세기 원·고려의 일본 침공이다.” (p.25)
일련의 ‘색다른’ 사실을 전달해주는 저자 김시덕 교수의 스토리텔링은 매우 훌륭하다. 작가는 책이 하나의 유기체라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는 듯 섬세한 톤으로 임진왜란을 이야기한다. 중언부언이 없고 핵심을 찌르되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 있어선 세심하다는 게 책의 가장 큰 장점.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토 기요마사 등의 이름들이 보다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경험 또한 매력적이다.
"한국인의 눈으로 근세 일본인들이 향유한 임진왜란 이야기를 살펴보는 일은 필수적이다. 임진왜란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일본 사회를 바라볼 중요한 도구를 손에 쥘 수 있기 때문이다." (p.224)
광복절인 동시에 연휴인 이번 주말, 일본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의 와중에 이 책 한 권을 끼워 넣어보는 건 어떨까. 저자의 자존심을 걸고 집필된 이 책 한 권은 독자의 호흡에 어렵지 않게 감겨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에 대한 아쉬운 점 한 가지만 코멘트 하고 글을 맺도록 하겠다. 본 기자는 저자인 김시덕 교수의 강연을 들은 일이 있는바 배우 감우성을 닮은 것을 알게 되었으므로 다음부터는 저자 소개란에 사진을 첨부하는 것이 옳은 줄로 아뢴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