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사태가 진정국면으로 접어들지 못하고, 11일 신동빈 회장의 지주회사체제 전환 선언 및 17일 일본롯데홀딩스의 주주총회 등 굵직한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되풀이되는 경영권 분쟁에 대해 일각에서는 반(反)기업정서가 일어나고 있으며 도를 넘은 국적시비와 불매운동이 일어나는 실정이다. 재벌 소유주인 오너 일가의 개인적인 갈등에 관하여 언론과 정부 정치인 모두가 나서서 기업에 대한 정부의 시장규제 범위를 늘리려고 한다.
이에 바른사회시민회의(이하 바른사회)는 롯데사태가 우리 사회에 가져올 파장을 진단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바른사회는 12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롯데사태 어떻게 봐야하나’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의 사회로 시작한 바른사회 정책토론회에서 패널로 참석한 전삼현 숭실대 법과대학 교수,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 한상일 한국기술교육대 산업경영학부 교수, 오정근 건국대 정보통신대학원 교수는 롯데사태를 빌미로 한 반(反)기업정서 확산과 반(反)시장적 규제강화는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래 글은 오정근 건국대 정보통신대학원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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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
롯데사태 과잉 반응, 한국경제 성장동력 훼손으로 일자리만 앗아간다
롯데그룹 경영권분쟁 여파가 심상찮다. 롯데그룹을 넘어 재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모습이다. 여당은 재벌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당정회의를 열고 야당은 순환출자금지 등 대선 때의 재벌개혁 주장을 재점화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롯데 해외계열기업의 경영정보 제출을 요구하고 부실공시 땐 총수를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한다.
금융감독원은 상장 롯데 계열기업들의 2분기 결산보고 때 한국롯데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일본법인들의 경영정보 공개를 요구하고 있고 국세청은 계열회사에 대한 세무조사에 들어간데 이어 일본 국세청에 일본 롯데 그룹 관련 자료를 요구하고, 관세청은 12월말로 만료되는 면세점 재허가를 원점부터 재검토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일본기업 운운하며 불매운동도 벌이고 있다. 전방위적인 압박이다. 그렇지 않아도 빈사상태로 추락하고 있는 한국경제에 백해무익한 과잉반응들이다.
한편 기획재정부는 '국제조세조정법'을 다음달 열릴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법안에 의하면 우리나라 밖에 일정 규모 이상 내부거래가 있는 법인을 둔 한국기업과 한국에 법인이 있는 외국기업은 국외 법인과 사무소의 지배구조와 거래내역, 인수·합병(M&A) 내용을 2017년부터 해마다 국세청에 보고해야 한다. 이에 따라 한국 국세청이 롯데그룹의 일본 내 계열사 지배구조를 낱낱이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삼성, 현대차 등 국내 대기업들은 중국이나 일본 현지 국세청에 상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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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데 그룹에 대한 ‘국민적인 공분(公憤)’은 이해하기 어렵다. 롯데 그룹이 국민기업 또는 공기업이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그 같은 이전투구에 그저 ‘실망’했을 뿐이다. 한국적 현실에서 재벌에 대해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제왕적 경영 행태’ 운운하는 용어 사용은 정확한 의미에 대한 천착(穿鑿) 없이 반재벌 정서를 부추기는 관행적 어귀로 자리 잡았다./사진=미디어펜 |
이는 지난해 11월 G20 정상회의에서 한국이 다국적 기업 조세회피 방지를 위한 문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권고안에 합의함에 따라 올해 세법개정안 가운데 하나로 반영하는 것이다. OECD 권고안은 일부 다국적 기업들이 국가 간 상이한 조세체계를 활용해 무과세 또는 과소과세 혜택을 받아온 관행(BEPS·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을 막자는 취지로 만들어졌지만 시행되는 경우 보고서에 담을 내용이 광범위해 기업들에 큰 부담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지적이다. 현재까지는 스페인 싱가포르가 보고서 제출을 의무화했고, 미국은 국세청 요청이 있을 때만 기업이 관련 자료를 내도록 하고 있다.
재계 전반으로 확산될 우려마저 있는 롯데 때리기는 물론 롯데의 전근대적인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총수중심의 독단적인 황제경영,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형제간 경영권 분쟁으로 롯데 스스로가 자초한 측면이 큼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번 롯데사태를 계기로 다시 대두되고 있는 반재벌 반기업 여론에 편성한 과잉 규제로 한국경제 성장에 마지막 남은 성장동력 마저 훼손해서는 안된다. 매년 기업투자 140~50조 원 중 90% 이상을 대기업그룹들이 해 왔다. 투자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대기업들의 투자환경을 개선해 주기는 커녕 자꾸만 옭죄기만 하면 그렇지 않아도 추락하고 있는 한국경제는 다시 일어서기 힘들다.
그간 한국 대기업그룹들은 이사 1/2이상 사외이사 선임, 외부감사 선임 등 지배구조를 개선해 왔고 특히 지난 대선 이후 경제민주화 열풍 속에서 신규순환출자금지, 내부거래축소 등 많은 개혁도 추진해 왔다. 너무 많은 규제 때문에 오히려 투자가 줄고 외국으로 나가고 있는 점이 우려되고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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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제의 난’으로 압축되는 롯데 사태를 보면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창업 1세인 9순의 총괄회장과 6순을 넘긴 아들들 간의 가장 ‘원숙한 나이 대’에서의 갈등이기 때문이다. 후계 구도를 짜지 못했다는 면에서 롯데는 경영에 실패했지만, 이런 사태가 ‘반(反)기업 정서’로 연결될 이유는 없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지는 정치권의 반(反)시장적 발언은 ‘인기영합의 저급한 행태’다. |
기존 순환출자는 해소에만 수십조 원이 필요해 빈사상태인 투자에 미치게 될 악영향을 고려, 기업자율에 맡기기로 이미 결론 난 사안이다. 작년 7월부터 시행된 신규 순환출자금지. 기존 순환출자 자율해소와 내부거래축소 정책으로 대기업그룹은 신규투자 보다는 계열사 간 인수합병 등 계열재편에 치중하고 있고 이 틈을 이용해 최근 삼성물산 엘리어트 분쟁처럼 외국투기자본 공격이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롯데사태를 기회로 다시 기존 순환출자까지 해소하게 하는 경우 이미 빈사상태인 투자는 빙하기로 들어 갈 것이다.
해외계열사 경영정보공개 요구는 실효성은 적으면서 역풍이 우려된다. 일본의 광윤사, 롯데홀딩스, L투자회사는 한국롯데그룹에 투자한 회사이지 한국롯데그룹이 투자한 해외계열회사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점이 문제될 수 있다. 이들 회사는 일본에서 경영정보 공개의무가 없는 비상장회사인데 한국이 요청한다고 공개하겠는가 하는 점도 문제다. 반면 한국에 투자하고 있는 외국인투자회사들의 모회사 경영정보를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 외국인들이 한국투자를 꺼리게 하는 부작용 우려가 있다. 외국인투자를 저해해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타격을 줄 우려가 있는 정책도입은 신중해야 한다.
롯데의 국적논쟁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클린턴 행정부 노동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라이시 버클리대 교수는 "우리가 누구인가"(Who is us?)(1990)라는 논문을 통해 미국에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기업이 우리라고 주장해 클린턴 행정부 정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한국기업도 나가고 외국기업도 들어오는 글로벌 시대에는 일자리 창출이 중요한 기준이다.
위기의 롯데, 뼈를 깍는 각오로 뉴롯데로 재탄생하라
한국롯데는 자산 85조 원, 연매출 55조 원, 직간접 고용 35만 명의 제계 5위 대기업 그룹이다. 차분히 문제의 본질을 따져 한국경제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개선책을 모색해야 한다. 문제는 불투명한 지배구조, 총수 독단적인 황제경영, 형제간 경영권분쟁 세 가지다.
불투명한 지배구조는 국적논쟁까지 불러일으키며 기업이미지에 타격을 주고 전근대적인 황제경영과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형제간 경영권 싸움은 국민들의 마음을 떠나게 하고 있다. 주총 대결에 이어 소송전 까지 갈 경우 롯데는 반토막이 날 수도 있다. 당장 연말로 다가 온 연매출 4조원에 달하는 면세점 허가 연장시 민간평가위원들이 과연 국민은 안중에 없이 싸우기만 하는 롯데편을 들어 줄 수 있을 것인가. 만약 면세점 허가가 연장되지 않을 경우 롯데가 입을 직간접 타격은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한국롯데 창업 50년 만에 가장 어려운 위기다.
이런 사면초가 속에서 11일 신동빈 회장이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경영투명성과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지배구조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연말까지 순환출자를 80% 해소하고 중기적으로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겠으며 청년일자리와 사회공헌을 확대하겠다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했다. 지주회사체제로의 전환약속은 진일보한 내용이다. 그러나 한일통합경영을 주장하면서 일본롯데와 한국롯데의 통합방안이나 형과의 관계 개선 방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3부자가 계열분리를 포함해 상속문제에 대해 원할한 합의를 보고 그간의 분란에 대해 국민과 주주들에게 사과하는 것이 순리다. 모친의 중재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주총을 거쳐 소송까지 가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일 경우 멀어져가고 있는 국민들의 마음을 되돌리고 면세점 재허가를 받을 수 있을까. 이런 의미에서 3부자 합의 없이 주총도 거치지 않은 상태의 신동빈 회장 단독 사과는 의미가 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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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른사회시민회의는 롯데사태가 우리 사회에 가져올 파장을 진단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바른사회는 12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롯데사태 어떻게 봐야하나’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롯데사태와 관련하여 주제발표하고 있는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사진=미디어펜 |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지주회사체제로 이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룹내 태스크포스는 물론 그룹외 전문가를 포함한 지배구조개선위원회 설치도 바람직하다. 지배구조개선이 반드시 모든 계열사의 공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서구에서는 가족기업이면서도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유지해 국민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장수하는 기업들이 많다. 경영투명성 제고를 위해서는 의사결정구조가 적법한 절차와 기구에 의해 투명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의사결정체계를 개혁해야 한다. 사외이사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적논란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기업도 해외로 나가고 외국기업들도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는 글로벌시대에 국적논쟁이나 언어논쟁은 무의미하다. 일자리를 많이 창출해 주느냐가 중요하다. 그럼에도 롯데가 이런 논쟁을 불식하고 국민들에게 친근한 한국기업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이미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자선재단, 스포츠구단도 있지만, 면세점 민간평가위원들과 국민들이 납득할 정도의 새로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청년일자리와 사회공헌 확대 언급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치권, 정부, 시민단체들도 이번 롯데사태를 재벌때리기로 확대시켜서는 안된다. 차분히 롯데사태 해결책을 모색하면서 기업투자 환경 개선으로 일자리 창출에 전력할 때다.
불투명한 소유구조와 황제경영식 의사결정구조는 분명 개선돼야 할 과제다. 그러나 이사회 주주총회 등 의사결정이 투명하고 적법한 절차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며 무리한 순환출자해소나 해외모회사 정보공개 요구 등은 투자와 일자리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오너경영도 리스크도 있지만 장점도 많다. 후계자 양성프로그램을 통한 경영인 자질 함양, 사회적 공인으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쥬 책임감 배양으로 우수한 후계 경영인을 양성하고 있는 선진국의 장수기업 사례를 연구하고 배울 필요가 있다. 50%에 이르는 전 세계에서 유례 없는 높은 상속세로 상속을 어렵게 하는 상속세도 합리적으로 개선해 원할한 상속이 이루질 수 있도록 하고 상속 후에도 상속인이 완전히 소외되지 않도록 조건부 상속제도를 도입하는 등 상속제도를 개선해 가업승계와 경영권 분쟁을 최소화하는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