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한기호 기자]최근 ‘선물 가격 5만원 제한’ 조항과 관련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발언으로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 적용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졌다. 당초 공직자 비리 방지를 취지로 도입된 이 법의 존재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지만 정치권은 침묵 중이다.
또한 13일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박기춘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죄목은 전형적인 ‘공직자 비리’였음에도 여야가 표결 처리에 합의하기 전날까지 새민련은 박 의원을 비호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바 있다.
지난 3월 본회의에서 재석의원 92.3%의 찬성(247명 중 찬성 226명, 반대 4명, 기권 17명)으로 김영란법을 통과시킨 19대 국회의원들의 비리 척결 의지가 의심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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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는 13일 본회의를 열고 3억5000만원대의 금품수수 혐의(정치자금법 위반) 등으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새정치민주연합 박기춘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을 진행했다./사진=연합뉴스 |
특히 새민련은 전날 본회의 표결 일정 합의와 국가정보원 해킹 사찰 의혹 국정조사 등 다른 쟁점을 엮어 새누리당과 기싸움을 벌였다. 두 차례의 여야 원내수석부대표 회동을 거치고 나서야 야당은 마지못해 13일 표결에 합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 의원이 검찰조사에 성실하게 응한 점, 탈당과 함께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점을 들어 굳이 체포까지 할 필요가 없다는 동정론이 당내에 퍼졌기 때문이다. ‘욕을 먹더라도 의사일정 합의를 거부해 자동폐기로 가자’는 목소리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박수현 원내대변인은 이날 체포동의안 표결에 대해 "박 의원이 최선을 다해 수사에 협조하고 혐의 대부분을 인정했는데도 검찰이 무리하게 영장을 청구했다"며 "이번에는 본회의 일정이 없는데도 일방적으로 동의안을 보내 매우 무례했다"고 노골적으로 검찰에 불만을 드러내기까지 했다.
표결 결과에 대해서는 “가결될 가능성이 높겠지만 다른 어떤 체포동의안보다 부결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사실”이라며 부결 가능성에 힘을 싣기도 했다.
새민련은 특권 내려놓기가 또 공염불이 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의 시선을 의식해 합의한 것으로 보이지만 논의 과정에서 여타 현안 연계까지 시도하는 등 ‘비리 의원 지키기’ 행보를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무엇보다 박 의원의 3억5000만원 상당의 금품 수수 혐의에 대한 문제의식보다는 여론에 떠밀려 체포동의안 표결에 마지못해 응하는 모습을 미뤄 야당은 공직자 비리 척결이 안중에도 없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여당도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거나 “기타 현안과 연결해서는 안 된다”는 차원에서 야당의 반대 움직임을 규탄했으나 비리 행위 자체에 대한 심각성을 거론한 사례가 없다. 사실상 여야할 것 없이 의원 대다수가 공직자 비리 척결이라는 입법 취지에 찬성해놓고 가결 후 5개월여 지난 현재 아무도 이를 강조하지 않고 있다.
김영란법은 공무원이 직무 관련성이 없는 사람에게 1회 100만원 이상(연간 300만원)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추진, 2012년 8월16일 국회에 제출한지 929일만에 가결됐다. 국회가 이 과정에서 법 적용 대상을 당초 공무원에서 언론사 직원과 사립학교 교원으로까지 확대하고 공무원의 사적 이해와 충돌할 수 있는 직무수행·외부활동 등을 금하는 ‘이해충돌방지’ 조항을 제외시키자 이 법안을 낸 김 위원장마저 국회를 비판했다.
지난해 7월 국회 국토교통위원장이 된 후 분양대행업체 대표로부터 사업 관련 청탁 등의 이유로 현금 3억여원 및 명품시계 등 금품을 받은 것은 이해충돌방지에 위배되는 사항이다.
국회는 또한 ‘선출직 공무원 등이 공익적인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 민원을 전달하는 행위’를 예외조항으로 넣고 유예기간을 당초 1년에서 1년6개월로 늘려 시행 시점이 내년 9월로 미뤄졌다. 이처럼 19대 국회는 또다른 의원 특권의 여지를 남긴 채 법망을 피해갔다.
김영란법을 통해 보여준 정치권의 무책임함은 공직자가 아닌 농·축·수산업자들의 민원이 빗발치면서 가려지는 추세다. 김 대표가 지난 10일 농·축·수산물을 시행령 적용대상에서 제외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가 이내 12일 철회한 것이 계기가 됐다.
지난 5월 권익위가 내놓은 안에 의하면 선물 가격이 5만원 선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커 이대로 법이 시행될 경우 통상적으로 5만원을 훌쩍 넘는 한우 선물 세트, 승진 축하 난 등을 선물할 경우 처벌 대상이 된다. 농협과 수협은 시행 후 매출이 50% 감소한다고 가정할 때 한우는 4155억원, 수산물은 7300억원 규모로 매출이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