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7조원 규모 내년도 정부 예산안 21일 국회 본회의 통과
민주당, 尹 정부 ‘건전재정’ 일갈했지만…‘실리’ 챙기기 급급
처리 시한 넘기며 이재명 표 예산 지켰지만 이마저도 삭감
[미디어펜=최인혁 기자]여야가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656조 6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합의 처리했다. 여야는 예산안 협의 과정에서 각각 4조2000억원 규모를 감액하고 3조9000억원을 증액해 기존 정부안 656조9000억원 대비 3000억원을 삭감했다. 이에 정부여당은 예산안 협상에서 건전재정 기조를 지켜낸 반면, 민주당은 예산안 법정처리 시한을 넘겨서까지 증액을 이끌어내지 못한 채 최소한의 실리만 챙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야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 합의를 도출하기까지 장시간 진통을 겪었다. 정부여당은 건전재정 기조를 앞세워 예산을 보수적으로 편성했고, 민주당은 민생예산 증액을 요구하며 첨예하게 대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한 내년도 정부 예산안은 올해 예산안 대비 지출액이 2.8% 증액되는 것에 그쳤다.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 비판에 힘을 쏟아왔음에도 끝내 이를 수용한 것이다.

   
▲ 12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2024년도 예산안이 통과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앞서 민주당은 민생경제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취약계층 등을 지원하는 민생예산 약 10조원 증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거대 의석 수를 앞세워 증액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 감액 중심의 수정안을 단독 처리할 수 있다며 정부여당을 압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의 고유 권한인 예산 증액을 이끌어내는데 실패했다.

민주당은 예산안 총액을 증액하지 못했지만, 민주당이 요구한 핵심 예산인 R&D(연구개발), 새만금,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예산을 일부 복원하면서 최소한 실리는 챙긴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기존 정부 예산안 또는 올해 예산안 대비 증액 폭이 낮아 사실상 협상력이 부재했다는 지적도 받는다.

실제 민주당은 연구개발 예산을 기존 정부안 대비 6000억원 순증 해 26조5000억원으로 합의했다. 그러나 올해 연구개발 예산은 31조1000억원 규모로 올해 대비 4조6000억원이 삭감됐다.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 삭감을 사실상 방어하지 못한 셈이다. 

아울러 민주당과 전남이 사활을 걸었던 새만금 예산과 이재명 표 예산으로 알려진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지원 예산을 각각 3000억원 씩 증액했지만, 이마저도 성과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평가된다.

새만금 예산의 경우 기존 정부부처 요구 예산은 6600억원이었다. 기재부가 이를 5100억원 삭감했으나 민주당은 이에 절반가량인 3000억원만 복구해 최종적으로 4500억원을 확보하는데 그쳤다. 지역화폐 예산 또한 당초 민주당의 요구액인 7053억원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3000억원만 확보했다. 이는 올해 편성된 예산인 3500억원보다도 줄어든 액수다.

반면 민주당이 감액을 강조했던 정부여당의 예산인 원자력, 대통령 순방, 특수활동비에 관한 예산은 유지 또는 소폭 감소하는 것에 그쳐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확인된다.

민주당은 그간 윤 대통령의 외교참사와, 김건희 여사의 명품 쇼핑 논란 등을 지적하며 정상외교의 성과과 부실하다는 이유로 정상 및 총리 외교 지원예산 삭감을 예고했다. 하지만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올해 248억 6800만원보다 22억4500만원 증액된 271억1300만원이 편성된 것으로 확인된다.

또 민주당은 특수활동비에 대해 ‘쌈짓돈’이라고 비판하고 전액 삭감 가능성까지 언급했음에도 법무부에서 8억원, 국세청에서 1억원 수준으로 소폭 감액하는 것에 그쳤다. 민주당이 단독으로 전액 삭감했던 혁신형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 개발 사업 등 원전과 관련된 예산도 기존 정부안대로 1813억7300만원이 전액 복원됐다.

민주당이 정부여당과 예산안 협상에서 사실상 이재명 표 예산 등 최소한의 실리만 얻은 채 패배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이 예산안 협상에서 힘을 쓰지 못한 이유에는 총선에서 심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감액 중심의 수정안을 단독 처리할 경우 거대 야당이 정부를 발목 잡았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어 최소한 명분과 실리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민주당이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증액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에 “민주당이 예산안 협상에서 완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예산의 액수보다 항목과 그 메시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예산안 협상에서 보다 강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에 공감하면서도 “(이는) 오는 총선에서 정부여당의 발목을 잡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함”이라며 “(그나마) 민주당이 요구한 예산을 일부 복원했으니 최소한 명분과 실리는 챙긴 셈”이라며 증액 권한이 없는 야당의 입장에서 총선을 염두에 두고 최대한 역량을 발휘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여야는 이날 예산안을 합의 처리함으로써 야당의 감액 중심 수정안이 단독 처리되는 불상사와,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예산안 최장 지각(12월 24일)처리라는 지적을 피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법정시한(12월 2일)을 약 3주 넘김으로써 예산안을 3년 연속 지각 처리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펜=최인혁 기자] ▶다른기사보기